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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8.22 18:03 수정 : 2007.08.25 14:48

루브르 박물관 안에 한시적으로 전시 중인 아니쉬 카푸어의 시커브(C-Curve). 응시하는 관객의 상을 왜곡시킨다.

[매거진 Esc] 반이정의 유럽 미술여행 상

청순가련형 추억과 명작 순례의 망상을 제조하는 이탈리아

유럽 미술관 여행이 유행이다. 먼 길을 달려온 관람객들은 미술품 컬렉션의 거대한 규모에 압도당한다. 가이드는 관광객들을 줄 세우고 ‘미술 교과서에 실린 그림만 보고 2시간 만에 나오기’라는 식의 동선을 시험 족보인 양 알려준다고 한다.

이 흔해빠진 유럽 미술관 기행 시대에 미술평론가 반이정씨가 처음으로 한국을 떠나 자전거를 타고 유럽의 미술관을 두루 다녀왔다. 반씨가 써 온 글은 ‘유럽 미술관 기행문’을 넘어 ‘유럽 미술관 기행에 대한 기행문’으로 읽힐 만하다. 반씨의 독특한 시각과 성찰이 담긴 ‘비주류’ 유럽 미술관 기행을 두 차례 싣는다. 편집자

나는 키치 유령을 보았다

“이륙과 동시에 기체가 뒤로 살짝 기울자 내 긴장된 상체도 등받이로 밀려나 나른한 이완을 즐길 수 있었고, 비로소 그때까지 뭐라 한마디로 요약할 수 없이 복잡했던 속내는 그저 허망한 심정으로 간결하게 대체되었다.”

그날의 일지는 이륙 직후의 내 상태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국운이 달린 중차대한 협상 열쇠를 쥔 귀하신 어르신은 고사하고 그저 국제 미술행사 세 편을 관전하고 더불어 배낭여행까지 도모하려는 범상한 자연인의 머릿속이 뭐가 그리 복잡했던 걸까? 이륙을 앞두고 내 머릿속은 기체 결함으로 인한 불시착, 추락, 최악의 경우 테러 단체 소행의 항공기 폭파에 이르는 상상 가능한 고약한 가정들로 아노미 상태에 있었다. 그러던 것이 기체가 일단 이륙하자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기분이 되고 만 것이다.

이탈리아 유적들은 현재 대대적인 공사 중이다.


조상 은덕을 재탕 삼탕 우려먹는 나라

휴가철 하면 흔해빠진 게 이제 배낭여행일진대, 이 가당치 않은 상상력은 어디서 촉발된 걸까? 외국여행 자유화가 시행된 게 1989년이니 나는 자유화 1세대에 속한다. 89년 직후 현재까지 방학과 휴가를 틈타 외유 길에 오르는 일은 경비 부담에도 불구하고 호사로 간주되지 않는 분위기다. 하지만 선명한 목적이 없이 딴 나라의 고적을 답사한다는 이 별난 집단행동이 영 탐탁지 않았으며, 나는 이에 동요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본성적으로 여행을 즐기지 않는 탓도 한몫했다.(심지어 국내 여행도 즐기지 않는다.) 불과 올 6월까지는 그랬다.

18년의 버티기를 무너뜨린 명분은 명색이 미술평론가로 국제 미술계의 흐름을 파악하자는 것이었다. 올해는 세 개의 중요한 국제 미술축제가 10년에 한 번 겹치는 해다. 국내의 미술계에 갇혀 있는 개인적 갑갑함을 이참에 털어내고 싶었고, 아울러 전공자로서 미술사의 걸작 리스트를 인쇄본이 아닌 실물로 봐야한다는, 업계에서는 거의 신앙에 가까운 도그마로 통하는 과제도 해결하고 싶었던 거다. 10년 전 미술사 전공으로 대학원을 다니던 지인 하나는 논문 주제를 상의하러 지도교수를 찾아갔더니, “얼마 안 하는데 한번 나갔다 와서 쓰지 그래?”라는 조언을 들었단다. 얼마 안 든다니…! 내 여정의 첫 행선지는 불행히도 로마였다. 불볕더위와 불친절하고 경직된 상인들. 그럼에도 외지인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리얼리즘의 천국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길바닥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
배낭여행의 성지, 이탈리아에 대한 나의 단편적인 기억들은 호의적이지 못하다. 무더위와 불친절, 바가지요금과 소매치기에 관한 흉흉한 풍문으로 인해 이탈리아 최고 관광지라는 찬사에도 불구하고 로마는 여행 초짜인 내게 비싼 수업료에 비해 알맹이는 빈약한 강좌 같았다. 냉정하게 정리해서 관광특구 로마는 신화라는 관념과 대리석이라는 물질이 결합되어 지탱되는 도시다. 오늘날 로마는 2천여 년 과거의 육중한 제국의 폐허 위로 현재적 삶 일체를 저당 잡아놓은, 해서 외형이 불러일으키는 고고학적 매력으로 존립 근거를 찾는 무력한 과거완료형 도시처럼 보였다. 동일한 이유가 이탈리아의 또다른 관광 명승지 베네치아에도 적용되리라. 끊임없이 갈증을 유발하는 혹서와, 0.5ℓ 생수 한 병이 어디는 20센트, 어디는 그 10배에 달하는 2유로를 태연하게 받아 챙기는 곳이 이탈리아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관광대국에 대한 내 뒤틀린 인상은 그 무렵 작성된 일지에 다음과 같이 야박한 투정으로 적혀 있다. “조상의 은덕을 대대로 재탕 삼탕 우려먹는 나라.” 개발독재 위에 건립된 토건산업의 나라에서 자란 정서 탓일까, 모던한 건축 양식이 오늘날 주거문화의 능사일 순 없지만, 르네상스기 알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 같은 거장 건축가를 배출한 이탈리아 주거 문화의 현주소는 조상들이 활약했던 르네상스에서 딱 멈춰선 듯했다.

자전거를 밖에 매둘 때마다 불안하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 인근 노란 우체통과 색이 맞아서 ‘위장’ 정차를 해뒀다.

건축 문화, 르네상스에서 딱 멈추다

물론 그런 이국성이야말로 여행자 특유의 찬탄을 불러일으키는 요소지만, 내게는 부조리한 비현실성으로 느껴졌다. 요컨대 산 마르코를 정점으로 한 베네치아의 정형화된 풍광을 묘사한 19세기 이전의 기록화들과 오늘날 그곳 사이에는 유의미한 수준의 외형적 편차를 발견하기 어렵다. 어쨌건 이 도시들에 대한 외지인들의 열광은 나와는 정반대에 서 있다. 그들은 르네상스 무렵 시간이 정지하거나 혹은 역행한 이 도시들에 경배를 보낸다. 이럴진대 건축에서의 진화가 도리어 생존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는, 이상한 나라가 이탈리아다. 이탈리아의 발육 정지는 나라 전체에 산재한 키치 과잉과 이방인의 값싼 담합이 만든 결과다.

이탈리아를 여행 강국으로 키운 진정한 동력을 나는 키치라고 본다. 우산이나 깃발을 손에 든 관광 가이드를 줄지어 따라다니는 각국 패키지 관광객의 행렬이야 논의의 여지도 없는 키치지만, 산 마르코 광장에서 보낸 어느 날 저녁, 즐비한 노천카페 사이로 키치 유령이 출몰하는 걸 목격했다. 세계 각지에서 온 뜨내기손님을 맞아 밤낮없이 상설 무대 위로 값싼 콘서트를 개최하는 노천카페는 전 세계인 누구나 한번쯤 들었을 법한 ‘베사메 무초’ 같은 스탠더드만을 반복해서 선곡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앙코르와 또다른 준비된 스탠더드. 노천카페의 콘서트가 여행객의 싸구려 추억을 제조한다면, 거리는 명화 카피본과 ‘밥 로스 아저씨풍’으로 재현된 날조된 풍경화와 누드 좌판으로-한국에만 있는 줄 알았던 이발소 그림은 전 세계 키치 마니아의 공통어였다-접수됐다. 청순가련형 추억을 제조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키치의 천국. 해외여행의 추억이란 게 세계 어딜 가건 판에 박은 듯 대동소이한 까닭은 평균치의 입맛에 구색을 맞춘 기념품의 수준이 유사해서다. 유서 깊은 사실주의 전통을 고수하는 이탈리아는 추억을 제조 판매하는 거대한 키치 공장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정비가 잘된 오스트리아의 자전거 도로.
여행자의 공통된 추억 제조에 누락될 수 없는 코스가 미술관 순례다. 유수의 유럽 미술관 방문은 인쇄물로 봐 왔던 작품을 육안으로 실물 확인하는 것을 뜻하는데, 그것은 예술적 안목과 교양의 차원을 수직 상승시키는 것으로 풀이된다. 원작을 직접 대면하는 것의 가치는 전문가 입장에서도 이견의 여지가 없긴 하다. 도판으로 접하는 명화는 책에 표기된 가로·세로의 수치로 가늠할 따름이며 작품의 실제 크기는 전공 서적에나 표기된다. 설령 크기를 확인했다손 쳐도 감이 와 닿는 건 아니며 다만 단행본의 가로·세로 크기에 갇힌 도판으로만 인지된다. 루벤스의 <마리 드 메디시스의 생애> 연작과 다비드의 신고전주의 대형 그림들의 크기는 직접 확인하지 않고서는 가늠하기가 불가능하다. 그 거대한 크기를 통해 그림 의뢰인의 정치적 야심과 재정 능력까지 추정할 수 있으니 말이다.

작품을 보는가, 카메라 액정을 보는가

직접 감상의 장점은 크기 확인에 머물지 않는다. 실제 작품의 색감과 표면 질감은 도판이 전달해 주지 못하는 어떤 디테일을 관객에게 실현시켜 준다. 북유럽 바니타스 정물화의 정밀묘사와, 홀바인의 <대사들>에서 인물 주변의 사물 표현은 오늘날 현대미술의 하이퍼 리얼리즘의 수준을 넘어서는 수준이며, 그 보존 상태까지 고려하면 경이에 가깝다. 이런 장점들을 고려할 때 도판 감상은 원작 감상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빈에서 거리 공연을 감상하는 필자. 사진· 서민아
그렇지만 여기서 한 번쯤 정직한 성찰이 요구된다. 고비용이 투자된 현지 관람의 시각 체험은 우리의 한시적이고 불완전한 기억력에 의해 관리된다. 우리는 자신의 허접한 기억력을 인정해야 한다. 관람을 하는 와중에 어딘가 주객 전도가 발생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직접 감상의 미덕은 온데간데없이 작품을 보는 건 우리의 육안이 아니라 카메라 렌즈라는 것을 깨닫는다. 메모리카드가 가득 찰 때까지 주요 소장품 모두를 반영구적으로 저장하느라 분주하다. 정밀한 감상보다 정확한 촬영을 위해 우리의 육안은 오히려 작품을 찍고 있는 카메라 액정을 응시하고 있다. 인쇄물보다 오히려 못한 액정을 말이다. 그리고 귀국 직후 원작을 봤다는 자부심에 평생 뿌듯하리라. 하지만 우리는 찍혀 온 이미지를 통해 그 순간들을 가까스로 기억할 뿐이다. 이 역시 명작 순례를 둘러싼 지나친 과대망상이다.

독일 카셀에서 배낭을 멘 채로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사진· 전윤정
글·사진 반이정/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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