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7.08.29 18:05 수정 : 2007.08.29 18:05

솔솔~ 책에서 흘러나오는 요리의 향기

[매거진 Esc] 실용 정보에서 인문학적 사색까지,
심오한 맛의 세계를 활자로 옮긴 음식, 와인 관련 책들

책을 읽지 않는 시대다. 아니, 책을 읽긴 하지만 쉬운 책만 골라 읽는 시대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사방에서 흘러나온다. 어려운 책은 도통 팔리질 않으니 출판사들도 고충이 크다. 어려운 책도 쉬운 책인 척 포장을 해야 하고, 표지 그림은 최대한 알록달록, 책 낼 때마다 이벤트도 벌여야 한다. 그래야 겨우, 팔린다. 이런 ‘인문학 위기’ 시대에 요리 책, 와인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음식 관련 책은 우선 실용서로 분류된다. ‘실용’이라는 단어 속에 ‘쉽고 도움된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쉽기도 하고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음식 관련 책은 사실, 실용서가 아니다. 음식 관련 책들은 모두 인문서에 포함시켜야 한다.

눈 앞에 그려지는 요리의 풍경

맛은 추상적인 개념이다. 보이지 않고 전달할 수도 없으며 설명하기도 곤란하다. 그런 맛을 설명해야 한다. 음식 책을 쓴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음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일은 그래서 뜬구름 잡는 일이며 철학적인 작업이다.

최근 돌풍을 일으킨 음식 책이 있다. 빌 버포드의 <앗 뜨거워>(Heat, 강수정 옮김, 해냄 펴냄)는 1만5000권이나 팔렸다. 요리법이 담긴 것도 아닌데 반응이 뜨겁다. 그만큼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요리를 공부하는 사람에겐 필독서가 됐고 요리에 관심 있는 사람에겐 ‘우량 도서’로 알려졌다. 신문사를 때려치우고 요리의 세계로 뛰어든 <뉴요커>의 기자가 저자라는 일화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미국에서도 화제였다. 아마존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1위였고, 2006년 <뉴욕타임스>는 이 책을 ‘올해 최고의 책’으로 뽑았다. 오래전 <키친 컨피덴셜>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한 것에 비하면 그만큼 한국의 음식문화 수준이 업그레이드됐다는 얘기다.

<앗 뜨거워>를 읽다 보면 요리들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주방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낸 것도 이유겠지만 그 묘사가 뛰어나다. 그런 책들이 몇 권 더 있다. 피터 메일은 요리와 와인의 맛을 눈앞에다 정밀화로 그려내는 몇 안 되는 작가다. 한국에 여러 권 번역됐지만 최근에 출간된 <나의 프로방스>(강주헌 옮김, 효형출판 펴냄)가 가장 재미있다. 뤼베롱의 2백년 된 농가를 구입한 저자 부부가 점점 시골 사람처럼 변해 가는 모습을 읽는 것도 재미있지만 묘사된 프로방스 음식을 읽고 있노라면 프랑스가 저 멀리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피터 메일 역시 카피라이터 출신이니 문장이 좋기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뤼베롱이 아니라 알자스로 간 사람도 있다. 소설가 신이현이 펴낸 <알자스 - 프랑스 어느 작은 시골 마을 이야기>(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역시 음식의 향기로 가득한 책이다. 근처의 목장, 숲, 텃밭에서 준비한 재료들로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음식이란 무엇일까, 라는 궁극적인 질문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런 질문을 좀더 과학적으로 이끌어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요리의 과학>(피터 바햄 지음, 이충호 옮김, 한승 펴냄)을 읽으면 될 것이고, 좀더 예술적으로 접근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작가정신 펴냄)를 추천한다. 바햄의 책에는 은근한 웃음이 있다. 중간중간 들어 있는 요리에 대한 저자의 추억도 재미있다.


와인책에 비하면 음식 책은 그나마 만들기가 수월한 편일 것이다. 재료를 설명하고 조리법을 상세히 기록하면 아주 조금은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와인은 복잡하다. 책에 언급된 모든 와인을 사은품으로 제공할 수도 없고, 설명하기도 곤란하다. 그래서 국내에서 발간된 와인 책에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많다. 와인 잔을 어떻게 잡아야 한다느니, 에티켓이 어떻다느니 하는 하나 마나 한 소리가 종이를 낭비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과정이었다. 이제 조금씩 좋은 와인 책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하우 와인>(엔리코 베르나르도 지음, 고정아 옮김, 나비장책 펴냄)은 와인을 즐겁게 마시는 방법에 대한 책이다. 그간 출판된 와인 책과 다를 게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좀더 체계적이다. 책장에 꽂아 두고 오랫동안 보면 좋을 책이다. 와인경매사로 유명한 조정용 씨의 <올댓와인>(해냄 펴냄)은 와인을 여러 각도에서 보기에 좋은 책이다. 수필집 읽는 기분으로 조금씩 천천히 책을 읽고 나면 와인병을 360도 회전시킨 동영상을 본 듯 와인에 대한 3차원 이미지가 머릿속에 생겨난다. 그때부터 마신 와인은 머릿속에 좀더 명확하게 기억될 것이다.

책 한권으로 와인을 끝내버린다고?

<와인 스캔들>(박찬일 지음, 넥서스북스 펴냄)은 지금까지 나온 와인 책 중 가장 도발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의 부제는 ‘당신이 알고 있는 와인 상식을 뒤집는’이다. 이 책의 출발점은 다른 책들과 다르다. 기존의 초보자를 위한 와인 책들은 ‘한 권으로 모두 끝낸다’는 문구가 들어 있지만 이 책에는 그런 과도한 목표가 없다. 와인을 책 한 권으로 ‘끝내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저자는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정보와 상식, 잘못된 와인 문화를 꼼꼼하게 지적한다. 어쩌면 이 책은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와인 책일는지 모른다. 와인 책을 한두 권 읽고 ‘와인을 좀 안다’고 자부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탈리아에서 4년 동안 요리사와 소믈리에로 일했으며 여러 매체에 와인에 대한 글을 기고하고 있다.

음식 책과 와인 책을 쓴 모든 저자는 놀라운 사람들이다. 일단 그들은 맛을 표현하기 위해 시도했다. 그 결과가 어찌 됐건 간에 그들은 표현했다. 그들은 추상적인 철학의 세계에 있는 ‘맛’의 의미를 ‘실용’의 세계로 끌어내린 사람들이다. 모든 저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글 김중혁 기자 pen@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저주받은 걸작’ 요리책들

‘저주받은 걸작’ 요리책들
요리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교본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책이 있다. 바로 <키친 컨피덴셜>이다. <키친 컨피덴셜>의 내용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주방의 야사’다. 뉴욕의 레스토랑 주방에서 펼쳐지는 온갖 이야기들이 때론 소설처럼 때론 다큐멘터리 필름처럼 펼쳐진다. 주방에서 어떤 음탕한 일들이 펼쳐지는지, 요리사들은 어떤 이야기들을 주고받는지, 어째서 마초들만이 살아남는 곳이 됐는지, 왜 일요일에는 식당에 가면 안 되는지와 같은 주방에 대한 궁금증들을 모두 해결할 수 있다. 2000년에 출간된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지은이 앤서니 보뎅은 미국 요리학교(CIA: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를 졸업한 뒤 영국와 미국에서 20여 년 동안 다양한 식당에서 일을 했으며 <쿡스 투어>(A Cook’s Tour), <곤 뱀부>(Gone Bamboo) 등의 책을 펴냈다. 한국에서는 2002년에 번역 출간됐지만 큰 빛을 보지 못하고 현재는 절판된 상태다.

<키친 컨피덴셜>이 요리책 분야의 ‘저주받은 걸작’이라면 <문화를 포도주 병에 담은 나라 프랑스>는 와인책 분야의 저주받은 걸작이랄 수 있다. 책을 쓴 장홍씨는 사학과 출신의 해박한 역사인식으로 와인이라는 매개체를 다양하게 분석했다. 기존의 와인책이 초보자 수준에 맞춘 데 반해 이 책은 마치 역사책을 읽듯 프랑스의 이모저모를 세밀하게 헤집는다. 1998년에 출간된 이 책 역시 너무 시대를 앞서갔다. 지금처럼 와인 문화가 유행하기 이전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 담긴 내용은 여전히 유효하다. 헌책방을 뒤져야 하겠지만 <키친 컨피덴셜>과 <문화를 포도주병에 담은 나라 프랑스>는 충분히 발품의 보상을 하고도 남을 것이다.

김중혁 기자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