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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8.29 18:17 수정 : 2007.08.29 18:17

안티과의 중심은 아르마스 광장이다. 헌책을 구경하기도 하고 과테말라산 커피를 마시며 앉아있기도 했다.

[매거진 Esc] 나의 도시 이야기/여행작가 채지형의 안티과

새로움도 반복되면 물릴 때가 있다. 하루하루 일상을 살 때는 긴 여행에 목말라하더니, 7개월째 길을 헤매다 보니 청개구리처럼 반복적인 생활이 그리워졌다. 2~3일에 한번씩 가방을 싸고 새로운 숙소를 찾아다니며 ‘따뜻한 물 나와요? 아침은 포함되나요?’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힘겨워질 즈음, 한곳에 자리를 잡고 잠시 ‘여행 중 일탈’을 즐겨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자리 잡은 곳이 과테말라의 안티과. 안티과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었다. 오래된 도시가 주는 편안함과 안정감이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으며, 파스텔 색조의 앙증맞은 건물들과 어디에선가 흘러나오는 구수한 커피 향은 바쁘게 움직였던 마음을 한동안 내려놓아도 될 것 같았다.

도시의 풍경은 고즈넉하고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자그마한 이 도시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아르마스 광장에는 독특한 전통 복장의 마야족 후예들과 어설프게 스페인어를 말하는 여행자들이 한데 모여 무엇이 그렇게나 재미나는지 한바탕 웃음을 섞어가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다. 카페에 앉아 최고급 과테말라산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그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간다.

안티과에서의 생활 중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스페인어 수업을 들으러 가는 아침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했건 안 했건 경쾌한 자갈길의 감촉을 발바닥 전체로 느끼며 학원으로 향하는 기분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누가 시켜서 스페인어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굳이 100점을 맞아야 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스페인어 수업은 ‘공부’라기보다는 ‘놀이’에 가까웠다. 매일 네 시간 이상 얼굴을 마주하는 윌리는 스페인어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이기는 하지만, 수업 시간만 끝나면 본격적인 친구로 변신했다. 친구가 되면 누구나 나누는 사는 이야기부터 연애 이야기를 나누듯이 우리는 갖가지 이야기들이 ‘수다 테이블’ 위에 펼쳐 놓았다.


오래된 도시가 주는 편안함과 안정감이 안티과를 감싸고 있다. 고풍스러운 성당도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긴다.
밤이 되면 아침의 평화로움은 열정의 도가니 속으로 사라진다. 펍(pub)에 모인 사람들은 과테말라의 대표 맥주인 가요(gallo, ‘수탉’이라는 뜻)를 손에 들고 여행에 대해, 사는 것에 대해 한마디씩 하느라 목청을 높인다. 특히 매주 목요일에는 내로라하는 살사 선수들이 살사 바에 모여 현란한 실력을 뽐내는데, 그때가 되면 이 고풍스러운 도시는 세계의 그 어떤 도시보다도 뜨겁게 달아오르곤 한다. 살사의 황홀함이 어찌나 강렬하던지, 스페인어 수업에 이어 그 다음날 바로 살사 클래스를 등록하고 말았다. 덕분에 안티과에서의 즐거움이 하나 더 늘어났다. ‘운-도-트레’(하나, 둘, 셋) 스텝을 밟으며 살사의 맛에 조금씩 빠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주말에 떠나는 1박2일의 여행은 안티과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양념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라는 ‘라고 데 아티틀란’은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그리고 마야인들의 오색찬란한 색감과 생활을 만날 수 있는 치치카스테낭고는 가벼운 주머니를 더욱 홀쭉하게 만들 정도로 매혹적인 시장이었다.


서울에 돌아와 다시 일상을 살면서, 삶이 퍽퍽하다고 느껴질 때면 그때의 추억들을 슬그머니 꺼내본다. 아무런 욕심 없는 마음으로 종종걸음을 치며 스페인어 학원을 향하던 그 아침이 떠오르면 무뎌지려고 하던 가슴이 다시금 촉촉해진다.

글·사진 채지형 <지구별 워커홀릭> 저자 www.traveldesign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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