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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8.29 21:44 수정 : 2007.08.29 21:44

반려동물과 반려식물의 결정적인 차이는 먹을 수 있고 없고에 있다.

[매거진 Esc] 이명석의 반려식물 사귀기

집 안의 여러 방들이 정원을 가까이 두기 위한 유치 작전에 나선다. 침실이 말한다. “역시 제 옆이 최고죠. 찌뿌드드한 아침을 싱그러운 풀냄새로 이겨 보세요.” 욕실 겸 세탁실이 연합 유세에 나선다. “우리와 함께라면 값싸게 사치를 즐길 수 있습니다. 햇살 눈부신 오후에 라벤더를 끼워 빨래를 널고, 저녁 무렵 카모마일과 함께 욕조에 몸을 담그세요.” 서재의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힘 있다. “온갖 책 속에 등장하는 화초의 이름들을 당신 정원에서 확인하고 싶지 않으세요? 철마다 피어나는 꽃들을 책갈피에 끼워 두는 즐거움은 어떻고요?” 나는 모두를 물리친다. 정원은 부엌과 가장 친해야 한다.

인간이 식물과 친한 이유? 먹을 수 있으니까. 그 점이 반려 동물과 반려 식물의 결정적인 차이다. 꽃이 아름답네, 풀빛이 싱그럽네, 하는 건 모두 배가 부르고 나서의 이야기다. 말투가 좀 거칠어졌다. 사실 무더위와 폭우 때문에 장 보러 갈 엄두가 나지 않아 고픈 배를 움켜쥐고 있다. 어쩌겠나? 내 정원의 것들로 요기나 해보자.

냉장고 구석의 돌나물을 스티로폼 화분에 던져 버린 게 4개월 정도 되었나? 무지막지하게 자랐다. 노랑 주황 꽃을 피우며 군락을 이룬 한련 역시 놓칠 수 없다. 꽃도 풀도 쌉싸름하니 먹을 만하다. 어디선가 날아와 애기 능금나무 옆에 주택단지를 건설한 민들레 친구들. 자네들 잎이 그렇게 건강에 좋다며? 웃자란 로메인 상추까지 모으니 제법 그럴듯한 무규칙 이종 샐러드가 완성되었다.

이명석의 반려식물 사귀기
기운을 좀 차리니 귀농한 친구에게서 감자를 샀다가 덤으로 받은 토마토가 보인다. 그 최고의 궁합이 우리 정원에서 가장 잘 자라나는 바질이다. 그 둘을 톡톡 잘라 버무리고, 냉장고에서 죽어 가는 버섯과 치즈까지 끼워 준다. 허브를 넣은 생수로 살짝 입가심.

사상적으로는 전혀 채식주의자가 아니지만, 정원과 가까이 있다 보니 야채 맛에 푹 빠져 버렸다. 이제 부엌에서 정원으로 무언가 내보낼 차례다. 파, 양파, 부추를 먹으면 한두 줌은 화단에 심어 둔다. 살아 있는 채로 사랑해 주다, 필요할 때 댕강 잘라 먹으면 되니까. 식도락가가 되려면 훌륭한 요리사를 가까이 두고, 요리사가 되려면 좋은 정원사와 사귀어야 한다. 아니면 그 모두가 되든지.

이명석/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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