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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9.05 16:36 수정 : 2007.09.08 18:23

자동차 정글, 운전의 기술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자동차 정글, 운전의 기술

1769년 프랑스의 포병장교 니콜라 퀴뇨가 최초의 증기자동차를 발명했다. 그는 파리의 교외에서 처녀 주행을 하던 중 돌담을 들이받고 기소됐다. 1865년 영국 의회는 ‘붉은 기 조례’(red flag act)를 통과시켰다. 최고 속도를 시속 6.4㎞로 제한하고, 수행원이 자동차 60m 앞에서 붉은 기를 들고 달려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1882년 독일의 카를 벤츠는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를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차를 몰고 슈투트가르트 거리를 질주하다가 체포됐다. 1899년 영국자동차클럽이 말과 오토바이 시합을 주선했다. 말이 이겼다. 1917년 우드로 윌슨은 마차를 타고 취임식장에 간 마지막 미국 대통령이 됐고, 레닌은 차르의 롤스로이스를 타고 크렘린에 입성했다.

그리고 100년이 채 되지 않아 자동차와 사람은 하나가 됐다. 2007년 한국의 자동차 등록 대수는 1600만 대. 도시는 이미 자동차와 자동차가 얽히고설키는 정글이다. 뒤차를 약 올리며 끼어들기, 도심 갓길에 정차한 뒤 버티기, 레고 블록 맞추는 경지의 주차 기술… 한국에서 ‘운전 잘한다’는 찬사를 들을 때 시연되는, 자동차 정글에서 살아남는 ‘운전의 기술’이다.

카레이서 출신 박정룡 아주자동차대 교수는 처음 외국에서 운전 전문교육을 받을 때 ‘달릴 줄은 아는데 기본기가 없다’는 평을 들어서 놀랐다고 한다. 오너 드라이빙 시대가 20여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역사 때문이긴 하지만,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는 있으나 정글을 평화로운 초원으로 개간할 줄 모르는 게 한국의 운전문화다.

사람들은 운전 기술을 다른 사람과 나누지 않는다. 자동차 정글에서 운전 기술을 혼자 체득한다. 나만의 운전 기술은 있지만, 모두의 운전 기술은 없다. 고급 운전자의 미덕은 맷집과 철판이 아니다. 운전의 기술은 다른 데 있다. 〈Esc〉가 운전의 기술을 알아봤다.

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커브길 돌발상황에서의 브레이크 작동직전의 모습.
운전경력 15년차 기자가
스포츠카 드라이빙 스쿨 단기 속성반에서 배운 것


액셀을 밟는다. 깊이, 더 깊이, 더더 깊이!

50미터 단거리 출발 지점을 떠나자마자 시속 50㎞. 겁이 난다. 커브 지점에서 운전대를 꺾으며 급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데 …. 조수석의 교관이 말한다. “자, 표시된 지점에서 밟으세요.” 끼이익∼지지직. 가까스로 행동에 옮기자 자동차가 파열음을 내며 휘청거리다 섰다. 실패다. 첫째, 너무 일찍 액션에 들어갔다. 둘째, 브레이크를 끝까지 밟지 않아 차가 밀렸다.

코너길 돌발 상황에서 브레이크

커브길에서 장애물이 갑자기 튀어나올 땐 어떻게 해야 하나. 그 대처법은 한국 포르쉐 공식 수입사인 스투트가르트 스포츠카(주)가 주최한 ‘스포츠 드라이빙 스쿨’의 주요한 교육 내용 중 하나였다. 두번 세번 시도했지만 타이밍이 잘 맞지 않았다. 속도를 내다가 순식간에 주행 방향 쪽으로 운전대를 꺾으며 브레이크를 끝까지 깊게 밟아줘야 한다. 두려움에 자꾸만 운전대를 한 박자 먼저 돌렸다. 네번째 시도에서 비교적 안정된 자세로 급정차할 수 있었다. 물론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 차가 코스를 벗어날 경우엔 브레이크를 조금 풀면서 다시 안쪽으로 방향을 틀어줘야 한다.

인터넷에서 드라이빙 스쿨을 검색하다 포르쉐 주최의 9월2일 행사를 선택했다. 기사 마감일과 가장 가까워서였다. 굳이 내가 참석한 이유는 경력 15년이 넘은 운전자의 허점을 발견하자는 기사의 콘셉트 때문이었다. 본래는 하루치 행사였으나 1시간짜리 단기 속성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급격한 회전으로 인해 드라이빙 스쿨 참가자의 차량 타이어에서 연기가 났다.
오전 11시쯤 안산 자동차 경주장(서킷)에 도착하자 즐비한 외제 차들이 ‘원선회’를 하고 있었다. 지름 20m의 원을 뱅글뱅글 돌며 언더스티어(under steer)와 오버스티어(over steer)를 느껴보는 주행이었다. 두 가지 개념은 자동차 구조를 이해하는 데 기본이라고 한다. 원을 돌며 액셀을 계속 밟으면 스티어링 휠, 즉 운전대를 돌린 각도보다 회전 각도가 커지며 멀리 돈다. 이걸 언더스티어라고 하는데, 액셀에서 발을 떼면 그 각도는 작아진다. 오버스티어는 정반대의 현상이다. 차량이 코너를 돌 때 운전대보다 회전각도가 작아지는 것이다. 일정한 조향각도로 회전하다가 뒷바깥쪽으로 미끄러져 나가 접지력을 잃었을 때 일어난다. 행사에 참가한 외국산 스포츠카들은 이걸 이용해 드리프트를 하며 참가자들의 환호성을 받았다.

물론 내가 모는 아반떼XD로 드리프트를 하는 건 무리였다. 후륜구동이 아닌 전륜구동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나름대로 속도를 내다 액셀에서 발을 떼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올리면 뒷바퀴가 휙휙 미끄러져 나갔다. 적잖은 스릴이 느껴졌지만 ‘타이어 엄청 닳겠네’라는 걱정이 뒤따랐다.

트랙에서의 자유주행 모습.
급차선변경 어떻게 해야 하나

마지막 코스는 급차선변경이었다. 직선 도로상에서 갑자기 앞에 나타난 장애물을 피했는데 또 다른 상황이 나타났을 경우다. 역시 단거리 50m 코스에서 시속 45㎞의 속도로 달리다 표시된 지점에서 차선을 연거푸 두번 변경해 급정차했다. 쉽지 않았다. 차가 심하게 요동쳤다. 잘못하면 전복될 것 같았다. 하지만 교관의 지시를 잘 따르면 된다.

조수석에서 운전을 지도해 준 스포츠카 전문교관 이정헌(39)씨는 “핸들을 급작스럽게 꺾으면 언더스티어와 오버스티어가 동시에 일어나는 데 이를 요령있게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요령이란 먼저 무작정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부드럽고 빠르게 핸들을 조정하는 것이다. 이정헌씨는 이를 ‘하중 이동에 대한 이론’으로 설명했는데 여기에 적기엔 너무 복잡하다. 아무튼 차선 변경 때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액셀로부터 발을 떼면서 부드럽게 운전대를 꺾어 충돌을 피하는 게 중요하다. “급작스런 핸들 이동으로 앞 타이어의 접지력이 살아나지 못하면 오버스티어가 일어나고, 속도가 갑자기 떨어지면 접지력이 살아나서 뒤가 돌 수 있습니다.” 이정헌 교관의 말이다. 고속도로 같은 데서 앞에 갑자기 위기상황이 터졌을 때 당황해 무작정 브레이크를 밟지 말아야 하겠다.

이날 행사를 연 포르쉐 쪽에서는 “폼내기 위해 스포츠카를 타는 게 아니다. 안전운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이정헌 교관에게 운전자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위기 상황에선 부드럽고 여유 있게, 그러나 빠르게 빠져나와야 합니다.”

글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운전기술을 전수 받아보자

운전 실력을 경험만으로 늘릴 수 있을까. 다른 모범 사례를 끊임없이 벤치마킹해야 운전의 고수가 된다.

드라이빙 스쿨은 보통 레이싱 스쿨에서 레이싱 참가자들을 위한 교육 차원에서 운영한다. 하지만 교육 내용 중 상당수가 운전 습관 교정이기 때문에 일반인도 자주 찾는다. 안산, 용인, 태백 등의 자동차 경주장(서킷)에서 교육이 이뤄진다.

한국모터챔피언십(KMRC, kmrc.co.kr, 031-321-9537)은 일 년에 네 번 드라이빙 스쿨을 운영한다. 레이싱 교육을 강화한 스피드 과정과 드라이빙의 기초를 배울 수 있는 페스티벌 과정으로 나뉜다. 페스티벌 과정은 바른 운전자세, 운전대 조작법, 코너링, 고속 제동 등 ‘잘하는 운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무료지만, 개최 일정이 발표되자마자 즉시 마감되므로 홈페이지를 주시해야 한다.

레이싱 아카데미(racingschool.co.kr, 0505-612-0000)는 매달 한 번 초급 레이싱 스쿨을 운영한다. 이동훈 대표는 “자동차에 대한 기본 개념과 자세를 바로잡는 교육과 실습이 주된 과정이고 여기에 고급 레이싱이 추가된다”고 말했다. 이틀 종일반으로 99만원. 자동차 메이커나 수입업체 등에서 드라이빙 스쿨을 비정기적으로 개최한다. 참가비는 무료거나 저렴하므로 이때의 기회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자동차 운전에 대한 책을 한 권쯤 사두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백과사전처럼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내 차 요모조모 돌보기>(박태수 지음)는 베스트셀러다. 자동차 구입부터 기초적인 정비, 운전 기술 등을 망라했다. 운전 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책이다.

카레이서들은 질서 없이 달리는 폭주족들이 아니다. 레이싱의 기본은 안전하고 정확한 운전 기술이다. 그런 점에서 카레이서 출신인 박정룡 아주자동차대 교수가 지은 <톱레이서, 베스트 드라이버로 가는 길>(오토북스 펴냄)은 고급 운전 교본으로 읽힌다. 브레이킹 테크닉, 코너링, 방어 운전 등 초·중급자가 익힐 운전의 기술이 소개된다.

자동차 마니아 원형민씨가 지은 <내 차, 아는 만큼 잘 나간다>도 꾸준하게 팔리는 책 중 하나다. 장치 사용법, 정기 점검, 액세서리, 운전 기법 등이 나와 있다. 오준우씨가 지은 <날아라 병아리>는 이제 막 자동차를 구입한 초보 운전자에게 적합하다. 차선 변경, 끼어들기, 주차하기, 교통사고 대처하기 등 누구나 다 알지만,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기법들이 차분히 정리돼 있다.

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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