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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9.05 16:55 수정 : 2007.09.05 16:55

<달콤, 살벌한 연인>

[매거진 Esc]영화를 멈추다

<달콤, 살벌한 연인> 2006

두 여자가 깊은 산속에서 ‘삽질을 하고’ 있다. 한 여자가 너무 힘든다고 투덜거리자, “언니”라고 불리는 여자가 의젓하게 꾸짖는다. “여자라고 엄살부리면 안 돼. 나도 옛날에는 너처럼 요령부리고 나약한 척했지만 그래서는 여자들이 남자와 당당하게 맞설 수 없는 거라구.” 땅을 파면서 일목요연하게 여성의 권리와 의무를 말하는 언니 앞에서 동생이 삽질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언니 말 들으니까 힘이 나는 것 같아요” 손놀림이 빨라지고 이제 주체적인 여성으로 거듭나 힘차게 삽질하는 두 여자를 축복하듯 머리 위에 쏟아지는 햇살이 눈부시게 투명하다.

<달콤, 살벌한 여인>의 미나, 실은 미자(최강희)는 삽질하는 여자다. 한심한 행동을 한다는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삽질할 일이 미자에게는 자주 생긴다. 삽질이란 삽으로 땅을 파는 행위다. 삽질은 영화 속에서 어떻게 등장할까. 드물게는 집을 짓거나 더 드물게는 도로를 닦는 이야기 속에서 보이기도 하지만 주로는 주검을 묻거나 산사람을 매장하거나 때로는 생매장한다고 협박하느라 등장한다. 마땅히 섬뜩하거나 살벌하거나, 농담이 있더라도 거칠고 험악한 분위기다.

미자가 삽질을 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그는 전날 밤 실수로 알던 남자를 죽였다. 그 남자는 며칠 전에 미자를 산으로 끌고 와서 삽질을 시킨 장본인이다. 미자가 얼마 전 협박차 찾아온 옛애인을 ‘실수로’ 죽인 뒤 주검을 김치냉장고에 보관하는 것을 발견하고 여자들 일처리하는 방식의 안이함을 준엄하게 꾸짖으며 부지런히 무덤을 파던 삽질계의 선배다. 미자는 그의 말을 듣고 깨달은 바 있어 또 후배에게 여자들의 책임감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은 것이다. 그런데 험악하기는커녕 도란도란 나누는 대화가 마치 ‘마니또’ 놀이를 하는 여고생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한국식 코미디라는 말을 급조해 본다면 그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특징은 농담한 뒤 정색하기다. 싸가지거나 사고뭉치거나 찌질해서 웃겼던 캐릭터들은 영화의 결말지점에 이르면 ‘제가 사실은 그런 인물이 아니었어요’라고 알아서 속죄하고 알아서 진지해진다. <달콤, 살벌한 연인>의 미자는 동정 없는 세상의 속죄 없는 인생이다. 그에게는 주검을 묻고자 삽질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고,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돼라> 같은 책을 보기에 주체적인 여성이 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이루려고 정색하고 노력할 때 그 정색함 사이의 불협화음이 가공할 웃음의 폭발력을 끌어낸다. <달콤, 살벌한 연인>은 또는 미자는 한국 코미디가 버리지 못한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볍게 벗어나 유희의 신천지로 성큼 나아갔다.

속죄 없는 그의 결말은 이별이다. 그리고 연인 황대우(박용우)에게 여느 로맨틱 코미디의 여주인공도 남기지 못했던 첫사랑의 추억-살인의 추억?-을 남기고 떠난다. “어떤 사람은 첫키스를 한 장소에 갈 때면 헤어진 사람이 생각난다고 하는데 나는 야산에서 시체가 발견됐다는 뉴스만 들으면 잊었던 그녀가 생각난다”는 황대우의 토로처럼 말이다.

김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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