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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9.05 16:55 수정 : 2007.09.05 16:55

꽉 막힌 좌석의 공간만큼이나 비행기의 식탁에는 빈틈이 없다.

[매거진 Esc] 메뉴판 세상

비행기에서의 식사는 괴롭다. 비좁고,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작은 상 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릇들을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공간 구성을 기막히게 했다는 감탄이 들면서도, 앞뒤 좌석에 꽉 막혀 옴짝달싹 못하는 내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비행기에서의 식사는 이를테면 ‘연명’이다. 비행기에서 배고파 죽는 사람이 없도록 배려한 ‘끼니’다. 퍼스트 클래스나 비즈니스 클래스에서는 또 다른 문제겠지만 이코노미 클래스에서 밥을 먹다 보면 ‘실존의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 가끔은 ‘앗, 이런 곳에서 이런 맛을 만나다니’ 싶은 생각이 드는 음식도 있다. 선택을 잘해야 한다. 보통 두 메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갈등이 만만찮다. 달걀 요리냐 죽이냐, 쇠고기냐 생선이냐, 이만저만 고민되는 게 아니다. “오늘 어떤 재료가 좋은가요?”라고 물어보긴 뭣하고, “이 비행기에서 잘하는 요리가 뭔가요?”라고 물어보긴 겸연쩍어서 운에 맡기는 경우가 많다. 운이 좋으면 배부른 비행을 즐길 수 있다.(어떤 이는 아예 메인 요리를 포기하고 간식으로 주는 컵라면으로 식사를 대체하라는 비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외국으로 나가는 경우는 그렇다 쳐도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선택이 간단해진다. 사흘 이상 외국 음식을 먹다 보면 고추장이 그리워지니 당연히 비빔밥을 고르게 된다. 별미다. 고추장을 넣어 슥삭슥삭 비비고, 참기름을 뚝뚝 떨어뜨린 다음 한 숟가락 푹 떠먹으면 정말이지 ‘아, 고향의 맛’이다. 비빔밥을 발명해낸 사람이 고마울 따름이다. 수만 피트 상공에서 비빔밥을 먹다 보면 돌아가고 있는 고향으로 조금은 가까워진 듯한, 고도가 조금은 낮아진 듯한 기분이 든다.

김중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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