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9.05 18:08
수정 : 2007.09.0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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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41)씨가 빠르게 삽을 놀린다. 낙지 숨구멍을 찾은 것이다. 낙지와 숨바꼭질 한판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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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사진작가, 바다를 찍다 ⑩ 임종진의 서산 웅도리
하루에 두 번 뭍이 되었다가 다시 두 번 섬이 되는 곳.
충남 서산군 대산읍 웅도리. 웅크리고 있는 곰을 닮았다고 해서 곰섬으로 불리는 이곳은 바닷물의 들고남에 따라 번거로이 옷을 입고 벗길 반복합니다. 밤그늘이 짙게 드리운 시간, 열린 물길을 따라 들어가니 섬은 처음 들른 낯선 이의 방문이 부끄러운지 어둠에 몸을 감추고 통 자태를 드러내질 않습니다. 서로 설렌 첫날 밤 저만치 보이는 달빛을 따라 무작정 가다 보니 안쪽 끝 선착장이 걸음을 막습니다. 짙은 먹구름 틈새로 살짝 드리운 달빛만이 새까만 주변을 살포시 감싸 안고는 더 갈 것 없이 눌러앉으라 손짓합니다. 하긴 어차피 바다에 막힌 길입니다. 아예 돗자리를 깔고 눕습니다. 물에 비친 달그림자만 방정맞게 일렁일 뿐, 섬은 온통 고요함 그 자체입니다.
깊은 고요가 흐릅니다.
“비 오믄 안 잡히유. 쏘내기가 오잖유.”
잠 못 이룬 갈매기 한 쌍의 울음소리만 괜한 적막감을 간간이 달래줍니다. 그저 바라봄입니다. 밋밋한 캔맥주 하나 홀짝거리며 끝없이 먼바다를, 가늠할 수 없는 밤하늘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몸은 나른해지고 살살 볼을 스치는 바람의 감촉이 더없이 시원합니다. 분을 나누던 시간의 흐름도 무뎌지고 도시인의 번잡한 일상은 저만치 소리없이 사라집니다. 그렇게 고요는 평온을 부릅니다.
웬일일까. 몸이 붕 뜨더니 발 아래는 푹신한 바닷물입니다. 나는 그 위에 서 있습니다. 짙푸른 물 위에 어딘가 낯이 익은 어린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좌우로 일렁이는 모습이 보입니다. 양 옆으로 벌린 팔에 달빛이 내려앉더니 흐느적거리는 온몸을 이내 감싸 안습니다. 한 걸음 또 두어 걸음 사뿐히 물 위를 걷습니다. 한참을 걷다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이젠 온전히 뭍을 놓은 섬이 보입니다. 세상에나! 나는 물위에 서서 잠든 섬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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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섬의 첫날밤은 황홀한 고요 속에 치러졌다. 달은 외면하는 척 먹구름 속으로 반쯤 몸을 가리고 밤바다는파도를 낮추어 애써 숨을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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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빠지면 섬과 뭍을 잇는 시멘트 길이 몸을 드러낸다. 미처 따라나서지 못한 고깃떼가 있어 목 좋은 낚시터로 꽤나 소문이 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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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두둑 바닥을 울리는 빗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듭니다. 이런 꿈이었구나. 그 새 잠이 들었던가 봅니다. 하늘을 날아다니기보다는 물 위를 걷고 싶은 소망을 더 품었던 어릴적 기억 탓일까. 잠깐의 일장춘몽이건만 허전할 것 없는 기쁨입니다.
아직 먼동이 트기엔 조금 모자란 시간. 저만치 불빛이 움직여 다가오더니 늙수그레한 촌로가 주렁주렁 매단 그물꾸러미를 내려놓으며 얼굴을 드러냅니다. 허리춤까지 닿는 장화를 벗어 놓고는 잔뜩 묻은 진흙을 말없이 닦아내더니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댕깁니다. 그러고는 차오르는 바다를 바라보고 앉습니다. 슬쩍 다가가 말을 붙이니 잠시 뜸을 들이던 촌로가 답을 줍니다.
“비가 오믄 안 잡히유우. 쏘내기가 오잖유. 그러믄 낙지가 뻘 깊은 디루 파싹 들어가 버리유우.”
충청도 사투리가 구수하게 들리니 덩달아 흉내를 내어 묻습니다.
“몇 마리나 잡으셨슈우?”
또 뜸을 들이다가 한숨이랑 같이 답을 줍니다.
“낮이두 잡구 밤이두 잡는디, 지금은 하나도 못잡았슈우. 입질도 안 허니께. 이젠 힘들어서 집에 갈라구려.”
“아이고! 그럼 속상해서 어떡한대유우?”
“뭘 어뜩하긴 어뜩혀! 냘 계속 혀야지 ~. 이게 잡으믄 재미나유. 낙지가 꾸물꾸물허능게 신기허지이. 그려도 한번 나오믄 열 댓 마리씩은 잡응게 안 나올 수는 없잖여 ~?”
주섬주섬 짐을 챙긴 뒤 가로등 불빛 너머 집으로 향하는 촌로의 등 뒤로 혼잣말이 나지막하게 들렸습니다.
“그래도 비가 온게 시원허긴 허네. 허허”
알듯 모를듯 초연하게 사라지는 걸음을 지켜보는데 거세던 빗줄기가 힘을 잃었는지 조금씩 약해집니다. 우산도 놔둔 채 오랜만에 목줄기를 타고 속옷까지 흘러내리는 빗물을 맘껏 받아 안습니다. 다시 세상은 고요해지는데 고단함이 밀물처럼 어깨를 누르며 이젠 자빠져 쉬라고 구박을 합니다. 어디 몸 누일 데가 있을까 천천히 마을을 돌며 머물 곳을 찾는데, 조그마한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작은 민박집입니다. 새벽 세 시가 다 된 늦은 시간이라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모르다가 간판에 적힌 전화번호를 용기내어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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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 조리개를 중간 쯤 놓고 셔터속도는 10초를 주었더니 새벽어둠 속 뭉게구름이 한낮인양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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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배 몇 대만 겨우 부릴만한 선착장에 밀물이 가득 들었다. 주인 없는 닻은 목젖까지 차오르는 파도에 겨워 숨을 헐떡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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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집 주인장은 얼마나 잡았을까
“저~ 밤늦게 죄송합니다. 혹시 빈 방이 있을까요?”
이젠 걸쩍지근하게 맛깔스럽기까지 한 사투리가 정적을 깨고 들려옵니다.
“아이쿠! 제가 바다에서 조업 중인디유. 지금 배 안에 있슈우 ~. 그냥 이층으로 올라가서 쉬믄 되유. 문 열려있구만유.”
고마운 마음에 그래도 괜찮겠느냐고 물어 봅니다.
“아~. 그러믄 되지유. 푹 쉬시고 낼 아침에 인사나 혀유. 난 지금 일 혀양게 ~.”
사람좋은 주인장은 바닷사람 특유의 컬컬한 목소리로 정을 붙여줍니다.
방에 자리를 깔고 누워 잠을 청하는데 왠지 잠은 오지 않고 괜한 걱정이 듭니다.
‘아까 촌로는 한 마리도 못 잡았다는데 주인 아저씨는 좀 잡기는 했을까.’
이리저리 뒤척이다 잠이 마악 드려는데 이층 창밖 아래 불이 켜지더니 안주인의 목소리가 가물가물 들려옵니다.
“오늘 괜찮았시유?”
“잡을만큼 혔지 뭐~. 배 고픈디 뭐 좀 먹어야 쓰겄네.”
두 부부의 대화가 정겹게 들리는가 싶더니 그만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내일은 낙지 몇 마리 얻어서 초고추장에 소주나 한 잔 하면 딱 좋겠다는 생각을 얼핏 한 것 같기는 한데, 아이쿠 또 꿈속인가.
사진·글 임종진/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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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그날 하루 낙지잡이는 망친 것이다. 올해는 여름 내내 계속 내린 비 탓에 섬사람들의 피해가 만만찮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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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 곧 물이 들어올 시간이다. 작업을 마치고 돌아와 달라붙은 진흙을 걷어낼 때가 섬사람들에겐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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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 전 물길 확인부터
여행쪽지
■ 웅도는 관광지가 아니다. 그러나 섬사람들의 삶의 터전인 갯벌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는 결례만 하지 않는다면 주민들과 함께 충분한 체험과 휴식을 나눌 수 있다. 그럴 마음이 섰다면 자가용을 이용해 서해안 고속도로 서산 나들목(IC)을 빠져나가 서산, 태안 방향 32번 국도를 타자. 계속 직진하면 서산시 외곽(20여분 소요)을 빠져나가면서 29번 국도로 이어진다. 대산읍 대산교차로(20여분 소요)에서 오지리 방향으로 좌회전을 하면 드라이브 코스로도 좋은 숲길이 나타난다. 3㎞쯤 지나면 대산초교 웅도분교장 팻말이 있는 삼거리가 나오고 다시 좌회전을 해서 3㎞쯤 가면 섬에 도착한다.
■ 대중교통은 서울남부터미널에서 10∼30여분 간격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면 된다. 첫차는 오전 6시30분 막차는 오후 8시. 서산 시내까지는 2시간쯤 걸린다.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40분을 달리면 섬에 도착한다. 물길 확인이 필수인데 국립해양조사원 www.nori.go.kr에 들어가 바다갈라짐 정보를 보면 된다.
■ 민박 연락처: 웅도동편민박(김종훈) 011-420-2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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