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7.09.05 18:13 수정 : 2007.09.05 18:30

문암동 길가에 핀 개망초. 고요 속에서 그들은 관심 대상이 된다.

[매거진 Esc] 내린천 살둔에서 문암동으로 들어가는 ‘문암동’ 길에서 만난 적막과 야생화들

내린천 살둔에서 문암동으로 들어가는 ‘문암동 길’은 보석 같은 길이다. 두메(오지 마을) 전문작가 이용한은 이 길을 들어 “걸으면서 찬찬히 길의 탄력을 느껴야 제격인 길”이라고 묘사했다. 길을 잃은 뒤에야 발견할 법한 문암동 길은 살둔 산장이 있는 살둔에서 시작한다.

문암동 길의 처음은 관광지로 추락한 내린천변의 어지러운 소로 같다. 펜션 간판이 도열하고 전원주택들이 지붕을 맞댔다. 그러다가 길은 어느새 숲으로 빠져든다. 트럭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오솔길. 인적은 펜션 ‘반달밭 민텔’이 마지막이다. 낯선 자동차가 자갈 튕기는 소리도, ‘컹컹컹’ 짖어대는 개의 울음소리도, 이쯤에서부터 잦아진다.

“옥수수를 심으면 노루가 먹고 가고 …”


오대산과 설악산 사이의 산골에는 아담한 분교들이 많다. 지금은 문을 닫은 현성초등학교 법수치 분교.
승용차라면 모난 돌에 아랫배가 상할 것이다. 자동차는 시속 15㎞ 이하로 아리랑 곡선을 그리며 기어가야 한다. 결국 자동차가 ‘침입자’인 양 느껴지고, 차를 두고 걸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때쯤 시멘트 다리가 나온다. 반달밭 민텔에서 2.9㎞. 오른쪽 길을 택하면 옛 화전민 마을인 운리동, 왼쪽 길을 택한다.

아무도 없다. 사람도 민가도 지나가는 차도 없다. 맹현봉, 문암산의 산줄기가 좌우를 가로막아 하늘 아래에는 오직 나밖에 없다. 적막함은 이내 고요함으로 변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길 주변으로 개망초가 피어올랐다. 워낙 번식이 잘 돼 한번 밭에 퍼지기 시작하면 농사를 다 망친다고 해서 개망초(-亡草)다. 여름에 피기 시작해 힘이 남아있는 한 가을까지 피는 흔하디흔한 꽃. 문암동 길이 아니라면 개망초는 보지 못했을 것이다. 길은 아름답게 휘어서 다가왔다. 들풀과 야생화는 길 중간에 중앙분리대처럼 피어올랐다. 가만히 길 한가운데 앉았다. 꽃을 경계로 길은 두 개이기도 했고, 한 개이기도 했다.

평화로운 고요를 깨뜨린 건 시야에 나타난 4인승 지프였다. 인적 없는 곳에서 사람을 만났을 때는 의무감에서라도 말을 붙여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법이다. 김남성(64)씨는 산림청 소속 산림감시원이었다. “아이고, 문암동까지 어떻게 걸어가려고요? 1시간은 족히 걸어야 할 텐데 …”


그의 집은 살둔이었다. 나이 들어 소일거리로 택한 게 산림감시원이다. 야생동물 밀렵이나 희귀종 채취, 낙석을 신고하는 일이 그의 임무였지만, 산과 벗 삼는 게 그의 시간을 대부분 차지하는 듯했다. “한밤중 문암골에서 수달 우는 소리를 들으면 기묘해져요. ‘꽈악꽈악’ 하고 우는데 …” 그는 문암동 가는 길에 만난 처음이자 마지막 사람이었다.

개망초는 국화과다. 귀족적인 다른 국화꽃과 달리 여름에서 가을까지 흔해빠진 게 개망초다. 개망초는 국화과의 맨 나중 것이다.

7가구 밖에 안 사는 문암동엔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교회가 있다.

문암동 마을은 산골에 숨겨진 너른 평원이다. 좁디좁은 협곡을 굽이굽이 올라왔는데, 펑퍼짐한 마을이 나타나니까 약간 허탈하기도 했다. 자동차에서 떼어 온 길도우미(내비게이션)의 위치추적장치(GPS) 표시 단추를 눌렀다. 해발 647m, 북위 37도47분5초, 동경 128도21분51초. 길은 이미 내비게이션 지도에서 사라졌다. 휴대전화도 먹통이다.

‘지도 밖에 사는’ 문암동 가족은 모두 7가구다. 오이·고추·옥수수 농사가 그들의 주된 수입원이다. 마을의 작은 규모답지 않게 교회도 있는데, 이용한은 “이 곳의 종교성은 교회 건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를 둘러싼 산과 들에 있는 듯하다”고 했다.

개망초밭을 메밀밭으로 착각하기도


철 성분이 많아 시큼한 맛이 나는 부연약수.
문암교회는 자연에 아담하게 파묻혀 있다. 아쉽게도 통나무로 지은 본당은 2005년 화재로 소실돼 사택만 남았다. 1900년대 초반 선교사가 세운, 한국 기독교 역사에 남을 역사적인 건물이었다. 수십 년 담임목사 없이 주민들이 직접 교회를 관리했고, 주변 교회 목사들이 돌아가면서 일요 예배를 인도했다. 이재남 전도사는 “2005년 화재로 동네 사람들의 충격이 컸다”고 말했다. 문암동과 이웃 밤밭골을 더해도 10여 가구밖에 되지 않는 이 두메에서 100년 가까이 된 교회의 존재는 그 자체로 ‘문화적 자부심’이었던 것 같다.

문암동 입구에서 오른쪽 길을 타고 오르면 밤밭골이다. 밤밭골 사람들은 문암동 길로 다니지 않고 반대편 시멘트 고갯길(밤밭이 고개)로 외부와 통한다. 노선버스는 없지만, 폐교를 개조한 문암자연학교를 찾아오는 방문객도 있고, 고랭지 채소를 실어나르는 트럭도 보인다.

그래도 산골은 산골인지라 낯선 사람은 금방 발각되고 만다. 김금덕(76) 할머니가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니는 이방인에게 말을 걸었다. “스물일곱에 밤밭골에 돌아왔는데, 아직도 여긴 두메산골이야. 농사해도 소용없어. 옥수수를 심으면 노루가 따 먹고 가고, 콩을 심으면 산토끼가 따 먹고 가고.”

밤밭골에도 아름다운 개망초밭이 있다. 푸른 언덕에 소금을 뿌려놓은듯 하얀 개망초가 너르게 한창이다. 가끔씩 개망초밭을 메밀밭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홍천=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문암골은 수달이 살 정도로 오염되지 않은 청정계곡이다.

문암동 길을 가다 보면 처음 나오는 시멘트다리 삼거리. 이곳에 차를 두고 오르면 한결 편하다.


아는 사람만 아는 ‘진짜 두메’

대한민국 두메 1번지는 단연 오대산과 설악산 사이의 산골이다. 백두대간은 두 큰산을 이으며 사이사이에 마을과 골짜기를 숨겨 놨는데, ‘진짜 두메마을’도 있지만 ‘유명한 두메’(이 형용모순을 보라!) 마을도 있다. 영화배우 한석규가 출연했던 에스케이텔레콤(SKT) 광고로 발길을 탄 강릉시 부연동이 그렇고, 포장도로가 생겨 접근이 편해진 내린천과 삼둔사가리(살둔·달둔·월둔, 아침가리·적가리·명지가리·연가리)도 그렇다. 시큼한 약수와 아담한 분교, 원시의 숲이 남아 있는 지역이다. 문암동은 아직 아는 사람만 찾은 ‘진짜 오지마을’이다.

아는 사람만 아는 ‘진짜 두메’

지도를 들고 야생화를 관찰하면서 걷자. 최소한 5만분의 1 축적의 도로교통지도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2만5천분의 1 축적의 지형도를 산다. 색인에서 ‘방내’를 찾는다. 서울 광화문 중앙지도문화사(02-730-9191) 등 국립지리정보원 위탁판매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꽃 이름을 찾으려면 진선출판사에서 펴낸 <야생화 쉽게 찾기>, 현암사에서 펴낸 <우리 꽃 백가지> 등을 참고한다.

⊙찾아가는 길

홍천 살둔을 기점으로 여길 것. 서울에서 홍천 살둔으로 가자면 44번 국도를 타고 홍천을 지나 어론에서 446번 지방도로로 갈아탄다. 3시간30분 걸린다. 살둔 마을 뒤편 산자락으로 지나가는 446번 지방도로에서 문암동 길로 빠지는 갈림길이 있다. 이 길로 내려서면 안현동과 반달밭 민텔(033-435-6932)을 지나 호젓한 숲길로 이어진다. 446번 지방도로 갈림길부터 문암동까지 약 8㎞. 걸어서 2시간30분 안팎이 걸린다. 옛 화전민 마을인 운리동 가는 갈림길인 시멘트 다리까지 차를 타고 갔다가, 거기서부터 걸어도 된다. 1시간 걸린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