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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9.05 18:43 수정 : 2007.09.05 18:59

섬사람들은 이를 물탱크라고 부르는데 밀물 때 이렇게 바닷물이 채워지면 썰물 때 고스란히 물이 고이게 된다.

[매거진 Esc] 사진작가, 바다를 찍다
‘사진작가, 바다를 찍다’ 시리즈를 끝내며

한국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들이 같은 주제로 한 신문에 모인 적은 일찍이 없었다. 성남훈을 시작으로 여동완·이갑철·박하선·이상엽·이규철·강태욱·노순택·허용무·임종진 등 최고와 중진, 신예가 어우러진 10명의 작가들은 사물을 자신의 관점으로 포착하고 재구성하는 리얼리즘의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었다. 한국의 바다를 담은 이들의 작품은 7월5일부터 9월6일까지 한 주도 거르지 않고 10회 연재됐다.

초등학교 3학년인 소영이가 읍내 도서관에 반납해야할 동화책을 할머니 집에서 가져오는 길이다. 아버지는 차에 시동을 걸어놓고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하는데 돌투성이 좁은 도랑길이 웬수처럼 자전거를 잡아끈다.
처음엔 걱정도 있었다. 바다에서 어떻게 리얼리즘을 건질 수 있을 것인가. 리얼리즘의 사도인 다큐 사진작가와 판타지를 보여주길 원하는 관광지의 욕구는 결합될 수 있을 것인가. 시험대 앞에서 선 10명의 사진작가는 이 관문을 훌륭하게 통과했다.

보다 못한 막내 윤아가 냉큼 달려가 동화책을 받아들었다. 도와준다고 나섰으니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곧 죄다 땅바닥에 떨어뜨리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보스니아에서 아프가니스탄까지 세계의 전장을 누빈 성남훈은 제주도 우도의 아름다움이 엽서 같은 풍경이나 산홋빛 바다만이 아니란 걸 보여줬다. 빨려들 듯한 파란 하늘을 응시하는 젊은 해녀, 관광객들이 지나는 해안도로를 두렁박(해녀들이 물에 띄워 몸을 의지하는 도구)을 이고 걷는 해녀들을 보면, 여행의 아름다움은 현지의 삶에 근접하면서 더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작가들은 열의를 갖고 취재했다. 사실 작가들이 작업했던 6~8월은 긴 장마로 날씨가 좋지 않았다. 사진 또한 농사짓는 것 같아서 어찌할 수 없는 자연적 요인에 크게 지배받는다. 중국의 닭 우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멀다는 국토 최서단 가거도에 간 사진작가 박하선은 마감 직전 편집진에 전화를 걸었다. “섬에 들어와 며칠인데, 하루도 해가 뜨질 않네요. 이거 어떡하나?”

그래도 사진작가들은 기다리고 기다렸다. 사진의 질은 시간에 비례한다는 ‘기본’에 충실했다. 작가들은 최소 일주일 안팎을 바다에 살면서 사람을 만나고 자연을 헤집으며 주제를 완성했다. 그렇게 공 들인 작품의 시선은 독창적이었다.

가만히 지켜보니 달빛이 춤을 추는 것인지 밤바다가 춤을 추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덩달아 어깨춤이라도 추고 싶은 맘 가득한데 먼발치 쪽배는 이미 한창 몸을 달궜다.
부안 모항을 사진으로 담은 이규철은 모항을 날개를 편 새의 형상으로 이해했으며, 이상엽은 삼척 장호항을 안개에 싸인 미스터리로 풀어냈다.

그동안 다큐 사진이 대중과 소통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내셔널지오그래픽> 등 잡지가 있지만, 이나마도 한국 작가에게는 문이 좁았고, 한국에서 비슷한 성격의 잡지 시장은 좁기만 했다. 기껏해야 작가들은 책과 전시회, 블로그를 통해 대중과 만날 수 있었다. 다큐 사진작가와 신문이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대중적 소통이 이뤄지는 유럽, 미국의 언론 시장과 대조적이다.

사진계에서는 이번 한겨레 의 실험을 국내 다큐사진의 저변을 확대한 계기로 평가하고 있다. 다큐사진 동인 ‘이미지프레스’를 운영했고, 이번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던 이상엽씨는 “매체와 사진이 긍정적으로 결합한 사례였다”고 평가했다.

글·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낚시꾼들의 솜씨자랑은 믿을게 못된다지만 정말이지 낚싯대를 던지는 족족 망둑어들이 달려 나왔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내내 잡아 올리니 모두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매달린다.


박하선의 가거도. 독실산을 오르는 누런 소들.
여동완의 순천만 대래포구.
아쉽다, 이 사진!

‘사진작가, 바다를 찍다’ 연재를 진행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지면 사정상 작가들의 수려한 사진들을 모두 쓸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이갑철 작가의 개펄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어부 사진이 대표적이다. 어부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의 늘어진 팔과 머뭇거리는 발걸음은 어딘가 애잔한 느낌을 전해주었다. 신문에서는 쉽게 쓸 수 없는 사진이다.

여동완 작가의 사진은 마치 숨은그림을 찾는 기분이었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하늘과 풀이 맞닿은 그곳에 사람들이 있다. 신기한 노릇이다. 지면에서 크게 편집하지 않으면 그 사람들을 찾을 수가 없다. 아쉬움이 남는다.

박하선 작가의 바닷가 소 사진 역시 잔잔한 감동을 전한다. 돌산을 오르는 소들의 모습은 힘겨운 우리네 삶을 닮았다. 한 컷을 찍기 위해 그는 하염없이 소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리라. 소보다 먼저 돌산을 오른 염소 때문에 지면에서는 소개할 수 없었다.

노순택 작가의 사진은 어둠과 빛이 극명히 구별되면서 그 안에서 드러나는 우리들의 색다른 표정이 멋들어졌다. 비단 이 네 작가뿐 만아니라 다른 작가들의 사진 역시 안타까움을 전했다. 한 작가는 이번 시리즈를 마감하면서 이렇게 감회를 밝혔다. “너무 행복했습니다. 우리 바닷가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습니다.” 사진으로 독자들과 교감하는 것은 이것이 마지막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 행복했고 아쉽기 때문이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이갑철의 고창 하전마을. 갯벌은 어부들의 또 다른 삶의 터전이다.
송정 해수욕장의 아이들. 노순택의 남해문항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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