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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길의 경계에 작은 정원이 있어 서울의 골목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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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이명석의 반려식물 사귀기
선선해진 바람이 국화를 실어오기 바쁜 날, 나는 즐겁지만 긴장된 마음으로 대문을 나선다. 손에는 카메라와 동네 지도, 그리고 간단한 채점표가 들려 있다. 혜화-성북동 정원 경연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가을철의 평가를 위해 길을 나선 것이다. ‘네까짓 게 무슨’이라며 따져 물어도 할 수 없다. 주최자도 나 하나, 심사자도 나 하나, 우승자조차 수상 사실을 모르는 엉터리 대회다. 대회는 질투에서 시작되었다. 태양의 나라 스페인은 정원의 기쁨이 만개한 곳. 나 또한 알람브라의 궁전급 정원을 찬미하지만, 코르도바의 ‘꽃의 골목’으로 기우는 마음이 더욱 애틋하다. 그곳 아랍의 후예들은 먼지 한 톨 날릴까 돌과 타일로 골목골목을 발라 놓았지만, 건물의 안뜰에는 항상 파티오(patio)라는 숨겨진 정원을 가꾸고 있다. 해마다 5월이면 파티오 축제를 벌여, 온 도시의 비밀스러운 낙원들이 활짝 문을 연다는데… 언젠가 가봐야지 하며 아직 그 기회를 얻지 못했다. 서울의 골목은 그 카르멘의 마을과는 전혀 다른 빛깔을 지녔지만, 집과 길의 경계에 작은 정원을 가꾸며 자랑하는 기쁨은 매한가지. 틈틈이 동네를 걸어 다니면 소박하지만 보석 같은 장면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내 집에선 비리비리 기지개를 켜다 만 체꽃이 어쩌면 이렇게 탐스러운 군락을 이루었을까? 오래된 시멘트 쓰레기 함에 흙을 채워 만든 채소밭은 어찌나 토실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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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석의 반려식물 사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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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석 /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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