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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9.12 17:57 수정 : 2007.09.12 17:57

집과 길의 경계에 작은 정원이 있어 서울의 골목은 아름답다.

[매거진 Esc] 이명석의 반려식물 사귀기

선선해진 바람이 국화를 실어오기 바쁜 날, 나는 즐겁지만 긴장된 마음으로 대문을 나선다. 손에는 카메라와 동네 지도, 그리고 간단한 채점표가 들려 있다. 혜화-성북동 정원 경연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가을철의 평가를 위해 길을 나선 것이다. ‘네까짓 게 무슨’이라며 따져 물어도 할 수 없다. 주최자도 나 하나, 심사자도 나 하나, 우승자조차 수상 사실을 모르는 엉터리 대회다.

대회는 질투에서 시작되었다. 태양의 나라 스페인은 정원의 기쁨이 만개한 곳. 나 또한 알람브라의 궁전급 정원을 찬미하지만, 코르도바의 ‘꽃의 골목’으로 기우는 마음이 더욱 애틋하다. 그곳 아랍의 후예들은 먼지 한 톨 날릴까 돌과 타일로 골목골목을 발라 놓았지만, 건물의 안뜰에는 항상 파티오(patio)라는 숨겨진 정원을 가꾸고 있다. 해마다 5월이면 파티오 축제를 벌여, 온 도시의 비밀스러운 낙원들이 활짝 문을 연다는데… 언젠가 가봐야지 하며 아직 그 기회를 얻지 못했다.

서울의 골목은 그 카르멘의 마을과는 전혀 다른 빛깔을 지녔지만, 집과 길의 경계에 작은 정원을 가꾸며 자랑하는 기쁨은 매한가지. 틈틈이 동네를 걸어 다니면 소박하지만 보석 같은 장면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내 집에선 비리비리 기지개를 켜다 만 체꽃이 어쩌면 이렇게 탐스러운 군락을 이루었을까? 오래된 시멘트 쓰레기 함에 흙을 채워 만든 채소밭은 어찌나 토실한지!

이명석의 반려식물 사귀기
빨간색 플라스틱 바구니에 소나무를 심어둔 감각은 전위적이다. 장독대 사이에 가냘픈 야생화를 초롱초롱 심어두고, ‘눈으로만’이라며 앙증맞게 써놓은 주인의 어투도 사랑스럽다. 모든 집의 문을 두드려 상을 건네고 싶다.

이상하게 수상 후보들은 높은 지대에 몰려 있다. 대로와 떨어지고 층층이 계단으로 엮인 달동네일수록 손바닥만 한 땅에 멋들어진 자연의 풍경을 재현해낸다. 자동차가 감히 들어서지 못하는 길이기에 꽃과 풀의 정경이 더욱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그러고 보니 요즘 벽 허물기를 하며 감춰둔 정원을 드러낸 집이 꽤나 늘었다. 오래전에 담을 헐어 안마당의 자태를 베풀어온 작은 수도회의 선견지명이 더욱 빛나 보인다.


이명석 /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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