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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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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혜리, 영화를 멈추다
<타짜> (2006) 영화 속 노름판에는 창문과 시계가 없다.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은 잠깐 빛을 가리고 시간을 멈춘 것만으로 다른 세계에 입장했다고 믿고 싶어한다. 온갖 조건을 에누리 없이 저울질해 인색한 셈을 치르는 현실 세상과 달리, 이 세계는 뜬금없는 친절을 내게 베풀지도 모른다고 기대한다. 우연의 눈 먼 축복을 바라는 초짜들에게는 애석한 일이지만, <타짜>는 도박 역시 갈고 닦은 기술과 술수와 확률이 틀림없이 지배하는 게임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많은 중독의 세계가 그렇듯 도박판에서는 프로들도 가볍게 취한 상태다. 낮은 조명이 떨어지는 <타짜>의 도박 테이블은 원형 극장이고, 사교 모임에나 어울리는 성장을 한 프로 도박꾼들은 배우다. 그들은 패를 읽으며 연기를 하고, 좌중을 쥐락펴락하는 대사를 뇌까리며, 전지전능한 존재가 된 듯한 흥분을 느낀다. 그들의 포즈는 현실이 문을 부수고 들어올 때 무너진다. <타짜>에는 (서로 만나지 않는 것이 정석인) 도박판의 별세계와 현실이 맞닥뜨리는 순간이 있다. 주인공 고니(조승우)가 또다른 타짜 고광렬(유해진)과 처음 만난 화투판. 단속을 알리는 경보등이 빙빙 돈다. 도박꾼들은 우왕좌왕한다. 탈출을 위해 커튼을 걷자 지하 밀실인 줄만 알았던 도박장에 빛이 쏟아진다. 거드름 피우던 방은 대낮의 햇빛 아래 벌거벗겨져 삽시간에 머쓱해진다. 고니와 고광렬은 도시의 이면도로를 내려다보며 지저분한 건물 외벽을 타고 도주한다. 흡사 막도 내리기 전에 객석 불이 켜진 극장의 배우들처럼 황망한 행색이다. 고니의 스승인 평경장(백윤식)과 짝귀(주진모)는, 타짜 중에서도 도박판에서조차 취기에 휘말리지 않는 최고수들이다. 물론 멀쩡한 정신을 얻기까지 그들은 대가를 치렀다. 서울의 한 노름판에서 짝귀를 알아본 고니는 예를 갖춘다. 기술을 쓰다가 귀를 잘린 그는 기술을 쓰지 않아 팔을 잘렸다고 말한다. 전설의 타짜는 돌아누우며 그가 생각하는 최선의 격려를 고니에게 던진다. “별 거 아니야. 니도 곧 이렇게 될 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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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 영화를 멈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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