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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즈 빙하는 일 년에 150m 전진한다. 고로 일 년에 150m 소멸한다. 빙하는 몇 분에 한 번씩 천둥소리를 내며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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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녹황색 숲을 통과하여 순백의 빙하와 만나는 알래스카 코르도바 탐험
“일어났어요? 코르도바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날이에요. 날씨가 화창해요!”
비앤비(B&B·아침식사를 주는 민박) 주인아주머니 샌디 킹의 전화를 받고 깨어보니, 시계는 어느새 오전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여기는 알래스카 중남부의 소도시 코르도바. 인구는 단 3천명. 도로가 닿지 않는 곳.
뭍이지만 섬처럼 고립된 코르도바가 한때 세상과의 통로를 꿈꾼 적이 있었다. 지금은 지역 환경·시민단체들의 구호 ‘길 없는 코르도바’(Roadless Cordova)의 위세에 주춤해 공사에 진척이 없지만, 한때 철길이었던 이 도로의 ‘예정선’을 쭉 따라가면 케니코트라는 산정 마을에서 알래스카의 도로망과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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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도바는 관광지가 아닌 것 같지만 최상의 관광지다. 관광지 같지 않은 분위기는 이도시를 다시 찾아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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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집채만 해져 구경꾼 덮치기도
길의 이름은 ‘코퍼 삼각주 고속도로’. 그래봐야 비포장길이다. 지금 이 도로는 코퍼강 삼각주를 관통해 달리다가 밀리언달러 브리지 부근에서 끊겼다. 여기까지 77㎞.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오른쪽으로는 코퍼강 삼각주의 드넓은 습지가, 왼쪽으로는 장엄한 추가치 산맥에서 흘러내린 빙하가 펼쳐진다. 코르도바에 머물 시간은 사흘. 하루에 하나씩 빙하를 탐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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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백 빙하 가는 길은 숲의 터널이다. 두툼한 이끼가 나뭇가지를 덮어 사람에게 악수라도 청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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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은 차일즈 빙하다. 차일즈 빙하는 고속도로의 맨 끝, 코르도바의 개발 욕망이 달리다 멈춰선 지점, 밀리언달러 브리지 옆에 장대하게 펼쳐져 있다. 차일즈 빙하는 하릴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추가치 산맥에서 내려온 빙하는 코퍼강 앞에서 무너져 내린다. 5분에 한 번씩, 때로는 10분에 한 번씩.
먼저 천둥소리가 들린다. ‘우르릉 꽝’. 3∼4초를 기다린다. 그럼 빙하 절벽이 갈라지면서 거대한 얼음 덩이가 떨어진다. 다시 ‘철썩’ 하는 소리. 파도치는 소리다.
사실 빙하의 붕괴를 감상하려면 약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빙하가 무너지면 코퍼강에 파도가 친다. 그런데 가끔 큰 얼음 덩이가 떨어지면, 파도가 집채만 해져 코퍼강 건너편에 있는 구경꾼들까지 덮치는 수가 있다. 차일즈 빙하와 강 건너편 구경꾼들 사이의 거리는 약 360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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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파강 삼각주 고속도로 주변은 낚시꾼들에겐 천혜의 장소. 7~9월이면 연어 반 물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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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6월23일 밤에는 관광객 두 명이 파도에 휩쓸려 심하게 다쳤다. 축구장 절반 크기의 빙산이 무너지면서 12m 높이의 파도가 덮친 것이다. 당시 <앵커리지 데일리 뉴스>는 “58살의 할머니가 30m 이상 떠내려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면에서 높이 4.의 전망대가 있지만,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해마다 20∼50차례 3m의 파도가 쳐 일대에 범람하고, 2년에 한 번 꼴로 6m의 파도가 덮쳐오기 때문이다. 빙하는 추가치 산맥의 정상에서 이곳까지 20∼50년을 여행했다. 천둥을 치고 파도를 생성하면서, 차일즈 빙하는 일 년에 150m 전진한다. 고로 일 년에 150m 소멸한다.
차일즈 빙하가 관광지에 가까운 구색이라면, 나머지 빙하는 발품이 필요하다. 둘쨋날 간 곳은 새들백 빙하. <론리 플래닛> 알래스카 편은 이곳을 “날카롭게 치솟은 봉우리와 절벽 사이로 내려온 멋진 빙하”로 “빙하 아래 호수에는 빙산이 떠다닌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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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리던 빙하를 올라가다 만난 빙하의 전경. 8차선 고속도로처럼 부드럽게 휘어져 내려온 빙하는 코퍼강 삼각주에서 넓게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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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백 빙하로 가는 길의 들머리는 숲의 터널이다. 미루나무와 가문비나무로 빼곡하다. 길을 걷자면, 해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나뭇가지에도 두툼한 이끼가 붙어 있다. 이끼는 나뭇가지에 펑퍼짐하게 붙어 나무와 하나가 되었다. 마치 나무가 이끼로 살이 붙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해오는 듯하다.
4.8㎞ 숲의 터널을 통과하면 새들백 호수다. 집채만 한 빙산은 온데간데없고 개집만 한 작은 빙산만 오락가락했다. 호수 끝에는 새들백 빙하가 걸려 있다. 빙하는 작게 무너지고, 붕괴는 호수에 무늬를 만든다. 문득 아무도 없는 호수에서 배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산양이 절벽을 가로지른다고 한다.
셋쨋날 저녁 비행기를 타기에 앞서 셰리던 빙하에 갔다. 이 빙하 근처에는 세 가지 트레킹 코스가 있다. 셰리던 산에 오르는 길, 셰리던 호수로 떨어지는 길, 그리고 셰리던 빙하에 바짝 붙는 길. 짧은 1.1㎞짜리 셋째 길을 택했다. 노란 이끼가 땅을 뒤덮었다. 길은 이끼 사이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희미하게 난 길을 더듬어 밟으면, 운동화는 푹신 빠졌다가 부드럽게 튕겨났다. 버섯들이 군데군데 피어 있다. 버섯 밑으로 스머프들이 지나가지 않을까,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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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리던 빙하 올라가는 길. 길의 대부분은 이끼로 덮여 운동화가 푹신 빠졌다가 튕겨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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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4천mm 강수량으로 원시림 발달
코르도바에 이렇게 원시림이 발달한 이유는 연간 4천㎜에 이르는 강수량 때문이다. 캐나다 밴쿠버 부근 서해안에서 시작되는 우림은 이곳 코르도바 주변의 프린스 윌리엄스 해협까지 이른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내리는 비는 거대한 숲을 이루는 자양분이 됐다. 길은 셰리던 빙하의 왼쪽 절벽을 타고 올랐다. 절벽에서 셰리던 빙하의 전모가 보였다. 빙하는 8차선 고속도로처럼 부드럽게 휘어 있다. 자세히 보면 거친 근육으로 빙하는 갈라져 있다.
차일즈 빙하와 새들백 빙하, 셰리던 빙하. 모두 녹황색 숲을 통과해야 순백의 모습을 보여준다. 숲은 고요와 적요의 세계이며, 길 끝에서 만나는 빙하는 시끄러운 소멸의 공간이다. 수만 년의 세월을 머금은 빙하는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코르도바 빙하에는 베링기아 시대 아메리카를 호령하던 사자와 매머드, 마스토돈의 기억이 감추어져 있다.
한번 코르도바에 발을 들인 사람은 잊지 못하고 다시 찾아온다고 한다. 이날 저녁 비행기를 타고 코르도바를 떠났다. 빙하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이 노랗게 빛났다.
코르도바(알래스카)=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지렁이 사촌, 빙하의 얼음벌레
코르도바 아이콘이 된 괴생물체 인형에 들어가는 ‘아이스웜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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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 사촌, 빙하의 얼음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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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 놀부나 홍길동과 같은 지역 상징의 ‘원조’를 차지하려는 지자체의 각고한 노력은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산타클로스가 사는 마을은 세계에 두 곳이다. 핀란드 북극권의 로바니에미, 그리고 알래스카 중부의 노스폴. 인구 1570명인 노스폴의 산타클로스 하우스에선 ‘움직이는’ 산타가 ‘카드 값’을 받고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준다.
코르도바는 아이스웜(iceworm·얼음벌레) 축제를 내세운다. 코르도바와 얼음벌레가 무슨 관련이 있길래? 축제조직위 사무실의 자원봉사자 할머니는 “글쎄요, 수십 년 전 어떤 사람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고 하는데 …”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일단 알아둘 것. 얼음에도 벌레가 산다. 얼음벌레는 코르도바 등 알래스카와 그린란드 빙하에서 발견된다. 이 미스터리한 ‘괴생물체’에 대해서 밝혀진 건 많지 않다. 지렁이의 사촌 정도 되며, 빙하의 틈 사이에 끼어 조류나 꽃가루를 먹고 산다는 것뿐. 열에 약해서 빙하 깊숙이 기어드는 습성이 있다. 섭씨 4.5도면 너무 뜨거워서 녹아버린다.
빙하에 둘러싸인 코르도바는 일찍이 얼음벌레를 마을의 아이콘으로 가져왔다. 1961년 소년단체 지도자인 오마르 웨르와 멜르 머드홀 스미스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고. 두 사람은 코르도바의 상징물을 고민하던 중 얼음벌레 형상의 인형을 만들어 행진을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아이스웜 축제’를 열고 주민들이 4의 얼음벌레 인형 속에 들어가 눈 덮인 코르도바를 걷는 이벤트다. 당시 코르도바 항공이 앵커리지에서 출발하는 15달러짜리 할인 항공권을 내놓은 데 힘입어 108명의 ‘대도시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그 뒤 축제는 해마다 발전을 거듭했고, 2월 첫째 주말이면 코르도바는 관광객들로 북적이게 됐다.
코르도바 주민들이 만든 얼음벌레는 4이지만, 빙하 속에 사는 실제 얼음벌레는 2.5㎝밖에 되지 않는다. 도서관 옆 코르도바 박물관에 가면 ‘실물’을 볼 수 있다.
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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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황색 숲을 통과하여 순백의 빙하와 만나는 알래스카 코르도바 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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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도바 여행쪽지
풍취 즐기려면 B&B 이용하라
◎ ‘빙하 순시단’의 자세로 코르도바를 가겠다면, 아서라. 패키지? 없다. 영문판 여행안내서 <론리 플래닛> 알래스카 편을 참고하거나 알래스카 주 관광청 서울사무소(alaska-korea.com)에 문의해 여행을 준비한다. 코르도바 상공회의소 홈페이지(cordovachamber.com)에도 숙박·교통 정보가 착실히 정리돼 있다.
◎ 코르도바에 가려면, 먼저 알래스카의 중심 도시 앵커리지에 가야 한다. 중화항공이 화·목·금·일요일에 간다. 타이베이까지 내려가 갈아탄다. 환승시간 포함 14시간. 직항편은 없다. 인터넷에서 할인항공권을 산다면 왕복 110만원 정도.
앵커리지에서 코르도바까지는 알래스카 항공(alaskaair.com)과 이어러 항공(flyera.com)이 매일 2∼4회 운항한다. 50분이 걸리고 편도로 10만원 안팎이 든다. 홈페이지에서 예약한다. 미리 살수록 싸다. 앵커리지에서 버스나 열차로 두세 시간 걸리는 휘티어까지 간 뒤, 그곳에서 알래스카 머린 하이웨이의 페리를 타고 들어가는 방법도 있다. 운항 3시간 동안 프린스 윌리엄스 해협의 장쾌한 해상 빙하를 감상할 수 있다. 3시간15분 걸리고 8만원쯤 든다. 운항 일정이 자주 바뀌므로 홈페이지(akmhs.com)를 확인한다.
◎ 코르도바에 대중교통은 없다. 대부분 렌터카로 여행한다. 렌터카 회사는 두 군데 있다. 치누크 오토렌탈(1-907-424-5279·cars@chinookautorentals.com)과 코르도바 오토렌탈(1-907-424-5982·cars@ctcak.net). 공항 앞에 사무실이 있다. 페리를 타고 들어갈 경우 페리 터미널까지 렌터카를 ‘배달’해 준다.
◎ 코르도바 주민들이 여행자들에게 친절하다는 건 정평이 나 있을 정도. 이런 ‘이점’을 활용하려면, 비앤비(B&B)를 숙소로 이용하면 좋다. 어촌 마을의 풍취를 제대로 즐기는 데도 제격이다. 코르도바에 ‘재앙’으로 덮쳐 와, 주민들을 ‘투사’로 거듭나게 했던 1989년 액슨 발데즈호 석유유출 사건이나 단 한 명의 언어 구사자만 남은 세계적인 희귀언어의 소유 부족 이야크 인디언의 역사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비앤비 주인에게서 끌어내도록. 코르도바 상공회의소 홈페이지에 30여 비앤비가 정리돼 있다. 여기 나와 있는 전화나 전자우편으로 예약한다.
◎ 트레킹에 앞서 2가에 있는 미국산림청(USFS) 안내센터에 들른다. 코르도바 주변의 다양한 트레킹 코스에 대한 안내서와 지도가 비치돼 있다. 트레킹 지도는 무료로 가져갈 수 있다. 길은 잘 나 있는 편이다. 나무에 붙어 있는 오렌지색 마름모 표지를 따라가면 된다. 한국의 등산 리본인 셈.
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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