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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속에서 흑미로 빚은 술이 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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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허시명의 알코올트래블
‘3대 가업의 민족기업’과 ‘문화유산’ 인증받은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 세왕주조
오늘은 공지부터 해야겠다. “오래된 양조장을 찾습니다. 아시는 분은 저의 전자우편(twojobs@empal.com)으로 연락주십시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오래된 양조장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디 양조장뿐일까. 우리는 오래된 것을 낡은 것이라 여겨, 아주 쉽게 버린다. 컴퓨터와 휴대전화기의 업그레이드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버린다. 이점이 아이티(IT) 강국의 원동력이 되었지만, 문화의 영역에 적용되면 소름끼칠 일이다.
백두산 전나무 가져와 1930년대에 짓다
흔히 좋은 술의 조건으로 첫째 물, 둘째 재료, 셋째 기술을 꼽는다. 나더러 꼽으라면, 이 셋 사이에 ‘세월’을 끼워넣겠다. 꼭 오래 숙성시킨 소주가 좋고 오래 발효시킨 약주가 좋아서만은 아니다. 300년째 양조업을 이어오고 있다는 외국의 젊은 양조업자를 만났을 때, 내 눈에 그가 300살 된 우람한 나무로 보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은 어디일까? 가장 오래도록 양조업을 이어온 사업체는 어디일까? 과문한 탓인지 나는 모른다. 알려진 바도 없고, 누가 비교해 본 적도 없다. 그래서 찾아보려고 하는데 기본 조건은, 양조장은 처음 지어진 건물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을 것이고, 술 빚는 양조장은 맥이 끊기지 않고 이어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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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품평회에서 받은 상장들이 벽에 걸려 있다(왼쪽사진). 막걸리를 빚느라 밀가루를 쪄두었다(오른쪽위사진). 세왕주조 외벽에 붙은 문화재 자료 지정 현판(오른쪽아래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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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앞쪽에 쌀 씻는 곳이 있고, 누룩방이 있고, 발효실이 있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쌀이나 밀가루를 찌는 곳이 있고, 술 거르는 곳이 있다. 쌀이나 밀가루를 찌는 장비만 새롭게 들여왔지, 다른 시설들은 1930년대 풍경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발효실의 항아리에는 “1935 龍夢製”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찍혀 있다. 1935년에 양조장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의 용몽(龍夢) 가마터에서 빚은 항아리다. 물론 그 가마터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3대째 양조장을 운영하는 이규행씨는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꼭 보여주는 게 있다. 양조장 천장 대들보에 적힌 1930년에 상량했다는 글귀다. 외부 온도를 차단하느라 천장에 1m 두께로 둔 왕겨 속에 숨어서 아버지는 전쟁의 화를 피했고, 할아버지는 28살에 처갓집 땅을 잡혀 이 건물을 지어 3년 만에 빚을 다 갚았다는 이야기도 이규행씨의 입에서 술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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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 높은 세왕 주조장 내부(왼쪽사진). 덕산약주(오른쪽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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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명의 알코올 트래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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