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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0.11 14:54 수정 : 2007.10.11 15:21

〈유령의 고백〉(1998)

[매거진 Esc] 김혜리, 영화를 멈추다

〈여고괴담〉(1998)

〈여고괴담〉의 소녀 귀신은 사실 그리 무서운 존재가 아니다. 혼자 빈 교실에 들어가기가 꺼려져 등굣길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보통보다 더 연약한 아이일 따름이다. 정작 박기형 감독의 〈여고괴담〉에서 소름 끼치는 괴물은 한국의 학교가 만들어 낸 특정한 행동의 병적인 유형이다. 영화에는 ‘미친개’라는 별명을 지닌 나쁜 교사가 나온다. 그는 자신을 ‘선생님’이라 부르는 소녀들의 머리를 출석부로 때리고 칠판 지우개로 얼굴을 후려치며 봉으로 젖가슴을 쿡쿡 찌른다. 그의 무분별한 말과 행동은, 사적 욕구의 찌꺼기를 학생들에게 배설한다.‘미친개’는 결국 소녀 귀신에게 응징당하는데, 이 장면이 불러일으키는 은근한 통쾌함은 최근 개봉한 〈데쓰프루프의〉 결말이 촉발하는 말초적 카타르시스에 비길 법하다.

〈여고괴담〉의 시나리오는 시간을 가로지르는 두 쌍의 대칭된 인연으로 짜여 있다. ‘늙은여우’와‘미친개’로 통하는 두 교사는 각각 과거와 현재에 학생들을 학대하고 편애한다. 9년 전, 모범생 은영(박윤희/이미연)은 무당의 딸이라는 이유로 소외당하는 진주와 특별한 우정을 맺지만 담임의 회유와 협박으로 진주를 배신하고 이는 진주의 죽음으로 비화된다. 시간이 흘러 은영이 모교 교사로 부임할 무렵, 같은 비극이 소영(박진희)과 정숙(윤지혜)에게 반복된다. 한때 단짝이던 두 소녀는 모욕을 통해 성적 경쟁을 부추기는 ‘미친개’의 이간질로 관계가 파괴된다. 그러나 <여고괴담>은 현재의 사건에 지오(김규리)라는 제3의 인물을 더해 희망을 찾는다. 지오는 그저 그런 성적의 털털한 소녀다. 그림 그리는 취미와 분신사바 놀이로 혼령을 감지하는 재능 정도가 남다른 점. 하지만 영화는 그가 매우 강하고 기품 있는 인간임을 천천히 보여준다.

‘늙은여우’가 목매달려 죽음을 맞은 이튿날 아침, 주번인 지오는 양동이를 들고 수돗가에 갔다가 구름다리에 걸려 흐느적대는 담임의 주검을 목격한다. 끔찍한 광경과 마주친 이 소녀가 가장 먼저 취하는 행동은 뒤따라온 심약한 주번 짝 재이(최강희)를 품에 당겨 안아 충격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지오 자신은 신기한 새를 본 아이처럼 눈을 감지 않는다. 경악하는 대신 찬찬히 관찰한다.
김혜리 <씨네21> 편집위원
그리고 후에, 주검의 초상화를 그린다. 지오는 화가의 눈을 가진 자다. 관찰하고 묘사함으로써 마성과 공포를 퇴치하는 그는 〈여고괴담〉의 세계에서 예술가이며 주술사다. 비극의 사슬을 마침내 끊는 인물이 지오라는 점은 놀랍지 않다

“9년 동안 학교를 다녀도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았어!”학교라는 세계의 냉기와 무관심을 증언하는 유령의 고백이야말로 〈여고괴담〉의 가장 서늘한 슬픔이다. 지금도 고개를 파묻은 채 누군가 손 내밀어주기를 기다린 그 소녀는 학교를 다니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친구를 와락 당겨 안아 지켜 주던 그 소녀 또한 학교를 다니고 있을 것이다.

김혜리 <씨네21>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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