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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트비체의 산책로는 호수와 폭포 사이를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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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층층의 호수 16곳에 100여개의 폭포가 흐르는 클리트비체 국립공원의 거대한 신비
벌써 20분째 걷는다. 갓길도 없는 국도를 여행용 가방을 끌고, 친구는 커다란 배낭을 멘 상태다. 자다르에서 출발해 플리트비체 2번 들머리에 내린 게 오후 네시께. 무슨 일인지 매표소도 상점도 문을 굳게 닫았다.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안 보인다. 어쩔 수 없이 1번 입구까지 가야 한다. 이 길은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을 통과하는, 자다르와 자그레브를 잇는 주된 길. 원래는 계획에 없던 플리트비체를 찾은 것은 크로아티아에서 만난 여행자들이 이구동성 이곳을 추천해서다. <론리 플래닛> 크로아티아 편에서도 칭찬 일색! ‘그래? 그럼 내 눈으로 확인해 주지’ 하며 길을 나섰다.
자연 최고의 걸작품, 유네스코도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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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폭포, 실폭포, 천둥폭포…. 가지각색의 폭포가 호수와 호수 사이를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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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여행자 안내소의 문이 열려 있다. 가까이에 민박할 수 있는 마을이 있단다. 숙소에 짐을 풀고서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저녁을 집을 찾느라 방을 나선다. 1번 입구 옆에 매점과 카페·식당이 있다. 그새 여행자 안내소와 매점·카페가 문을 닫았다. 유일한 식당 리차쿠차로 간다. <론리 플래닛>에는 관광객이 주로 찾는 곳이라 했는데, 안에 들어가 보니 역시 그렇다. 우리 또한 관광객이 아닌가. 메인 요리는 70∼100쿠나 사이. 빵값에 팁까지 포함해 하룻밤 숙박비와 맞먹는 돈을 치르고 식당을 나섰다. 서비스나 분위기가 좋긴 했지만 음식은 입에 맞지 않았다. 식사 도중, 배낭을 둘러멘 아시아 커플이 카운터에서 이것저것 묻는 걸 보고 잠시 참견했다. 숙소를 찾는 것이 뻔한 듯해서. 민박 마을을 알려주니 얼굴에 화색이 돈다. 식사를 끝내고 나오려는데 그들도 이곳에 왔다. 역시 근방에서 유일한 식당임이 분명하다. 마을로 돌아가는 밤길에 올려다보니 까만 융단 위에 던져놓은 크리스털 알갱이처럼 별들이 반짝인다. 차고 투명한 공기가 기분 좋다.
자명종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나 일찌감치 준비를 끝냈다. 저 넓은 공원을 언제 다 돌아보나 마음이 급했다. 설악산, 지리산 같은 우리네 국립공원은 얼마나 넓은가? 꾸물거리다간 여기서 하룻밤을 더 묵어야 할지도 모르니 서둘러야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공원은 그리 넓지 않았다. 아니, 넓지만 일반인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제한적이었다. 아침은 매표소 옆 카페에서 커피 한 잔에 빵 하나로 간단하게 해결하고, 점심용으로 샌드위치도 하나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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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깔아 산책로를 만들었다. 나뭇길의 삐걱거림이 정겹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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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트비체는 거대한 신비다. 자연 스스로 오랜 세월 빚어낸 아름다운 걸작품이다. 크로아티아는 물론 유럽에서도 그 명성이 알려져 1979년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깊게 팬 골짝을 따라 호수 16곳이 층층으로 자리 잡고, 호수와 호수 사이는 폭포로 연결되어 있다. 크고 작은 폭포들이 100여 곳에 이른다. 제일 아래 호수가 해발 503m, 제일 위에 것이 636m로 표차가 133m나 된다. 본디 하나로 이어진 강물이었는데, 물속에 포함된 탄산칼슘이 석회 침전물을 만들어 자연적으로 댐이 쌓여 호수가 생기고, 댐 사이로 물줄기가 떨어져 폭포를 이룬 것이다. 석회 침전물은 지금도 쌓이고 있다. 덕분에 댐은 해마다 손가락 한 마디만큼 높아진다. 자연의 기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폭포는 엄청난 높이에서 포효하듯 쏟아져 내리기도 하고 때로는 낮은 키로 속삭이듯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신비로운 호수의 물빛과 크고 작은 폭포를 차례로 둘러보는 것이 플리트비체 감상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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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토바차 민박마을. 최근에 만들어져 시설이 깨끗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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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터(P3)에서 유람선을 타고 코자크 호수(P2)를 건너간다. 이곳에서 산책로를 오르거나, 호텔들이 모여 있는 곳(P1)으로 가는 유람선을 타거나 하면 된다. 시간이 넉넉지 않은 단체 관광객들은 그쪽(P1)으로 가고, 우리는 목조 산책로에 발을 디뎠다. 방금 건너온 코자크 호수가 공원에서 가장 크고 넓다. 유일하게 유람선이 다니는 곳이기도 하다. 이 호수를 경계로 위쪽을 상부 호수, 아래를 하부 호수로 구분한다. 하부 호수는 1번 입구, 상부 호수는 2번 입구에 가깝다. 아래는 물빛이 아름답고, 위는 폭포가 장관이다.
아기자기한 볼거리는 위쪽에 더 많다. 무릎 높이의 작은 폭포에서부터 몇미터는 되는 폭포까지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다. 한여름에도 물 온도가 24도를 넘지 않으며, 한겨울에는 얼어붙는다. 11월이면 첫눈이 내려 다음해 3월까지 녹지 않는다고. 공원 산책로는 흙길을 제외하고는 모두 나무를 깔아 만들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의 발길을 견디며 낡아가는 나뭇길의 삐걱거림이 정겹게 들린다. 산책로는 아이들에서부터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무리 없이 걸을 수 있을 만큼 평탄한 편이며 쉬어 갈 수 있는 긴 의자도 곳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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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에는 들꽃이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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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입구로 돌아가는 길을 단축하기 위해 친환경 버스를 탈 생각이다. 두 군데(ST3, ST4) 정류장이 있는데, 더 높은 곳(ST4)까지 가기로 한다. 갈로바치 호수에서 그 위에 있는 비르·말로·베리코 호수로 이어지는 길도 멋지다. 작은 호수들이 연이어지는 산책로 옆으로 안개비 같은 폭포가 쏟아져 내린다. 바티노바치 호수를 돌아 올라가니 공원 산책로의 마지막 지점(ST4) 정류장이 나온다.
버스를 타니 3번(ST3)을 거쳐 2번 입구 앞(ST2)까지 순식간에 데려다 준다. 여기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2번과 1번 입구의 중간 지점(ST1)에서 내렸다. 여기서 1번 입구 사이는 절벽이 가파르고 길이 좁아 버스는 다닐 수 없어 걸어가야 한다. 산책로가 바위 절벽 위에 있어 호수를 내려다보는 전망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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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을 타고 호수를 건넌다. 가까이 들여다보이는 물빛이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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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밖으로 나오니 세시 안팎. 자그레브 가는 버스를 타려면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한다. 한두 시간 정도 더 느긋하게 둘러봐도 좋았을걸, 뒤늦게 아쉽다. 버스에 오르고서도 눈길이 계속 골짝을 따라간다. 수풀 사이 언뜻언뜻 에메랄드 물빛이 스치더니 어느 순간 사라졌다. 강줄기는 있으나 물이 거의 없다. 플리트비체를 가득 채웠던 물들은 어느 바위틈 새로 갑자기 솟아올라온 것처럼 바위틈을 통과해 지하로 흘러들어가 버린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신비주의 콘셉트를 지키는 자세! 그저 놀랍다.
플리트비체(크로아티아)=김숙현/여행작가 pararang@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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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트비체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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