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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0.11 16:26 수정 : 2007.10.11 16:26

말라카는 중국인·말레이인·인도인 등이 어우러진 다인종 다문화 도시다.

[매거진 Esc] 나의 도시이야기 사진가 이상엽의 말라카

세상을 떠돌면서 사진 찍는 것이 직업인 사람은 주변에서 “가장 가볼 만한 도시가 어디냐?”란 질문을 종종 듣는다. 참 난감한 것은 내 몸 상태에 따라 대답이 바뀐다는 것이다. 피곤할 때는 “보라카이나 발리로 가세요”, 기운이 넘칠 때는 “라싸나 카슈가르로 가세요”라 답한다. 하지만 목적지 없이 그냥 떠다니다 도착한 곳에서 의외로 감명 깊은 도시를 만나, 오랜 친구가 되는 곳도 있다. 내게는 그곳이 바로 ‘말라카’였다.

영화 <매디슨카운티의 다리>에서 킨케이드와 프란체스카가 처음 만나 그녀의 고향 이탈리아의 ‘바리’를 이야기한다. 킨케이드는 “그냥 차를 타고 지나다가 너무 마음에 들어 내렸노라”고 하니, 프란체스카는 ‘이 남자 지금 수작을 거는군’ 하는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킨케이드가 커피 한 잔 마신 카페 골목이며 상세한 지리를 이야기하는 순간 그녀의 표정은 한없이 ‘아!’ 하며 녹아내린다. 음, 내 기필코 이 대목은 써먹고 말리라.

사실 사진가들이 목적 없이 취재를 다니는 경우는 흔치 않다. 1999년 여름, 방콕에 있었던 내게도 마찬가지였다. 미얀마에 반대하는 카렌 반군을 취재하려던 계획이 실패하면서 시간이 남고 말았다. 그래서 무작정 싱가포르행 기차를 타고 말레이 반도로 내려갔다. 그때 <내셔널지오그래픽>을 읽다가 사진가 데이비드 앨런 하비의 ‘쿠바’ 사진을 봤다. 아! 이런 곳에 내가 지금 있다면. 그런데 옆 좌석에 있던 싱가포르인이 “야! 이곳은 말라카 같군요”라고 한다. 뭐시라고! 순간 내 새로운 목적지는 말레이시아의 고도 말라카로 정해졌다.

‘올드 말라카’의 중심에 도착하는 순간, 유럽풍의 건물들은 늦은 오후의 태양빛을 받아 찬연한 빛깔을 드러낸다. 오래전 네덜란드인들이 건축한 관공서와 교회들이다. 짙은 감색의 이 거리에는 바, 음식점, 노천카페들이 이방인을 환영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흔치 않은 프로테스탄트 교회인 ‘크라이스트’가 눈에 들어온다. 정말 아름답다. 교회 앞에 있는 분수와 아름다운 꽃들이 영화의 한 장면 같다. 1753년 네덜란드인들이 지은 건물이다. 광장 중앙에는 빅토리아 여왕 시절 영국인들이 만든 분수가 시원스레 물을 뿜고 있다. 광장을 끼고 세인트 폴 언덕을 한 바퀴 도니 이번에는 16세기 이곳에 처음 도착한 유럽인들이었던 포르투갈인들의 요새가 나온다. 와! 이곳은 정말 열차에서 만난 싱가포르인의 이야기처럼 아시아의 쿠바였다. 게다가 이 역사적인 도시를 가꾸고 사는 중국인, 말레이인, 인도인, 포르투갈 혼혈인들. 다인종 다문화가 한데 어울려 이룩한 역사적인 도시였다. 어찌 쿠바가 부러우랴!

덕분에 게릴라를 찾아 필리핀 밀림을 헤치고 다니고, 동티모르의 독립을 취재하기 위해 불타 버린 딜리를 돌아다니던 나의 사진 주제가 ‘해양 실크로드’로 바뀌었다. 말라카는 아랍인들에게 ‘신밧드’로 알려진 중국 무슬림 출신의 정화 제독이 전세계 바다를 누빌 때 해상 중계기지로 삼았던 곳이었다. 나는 그의 흔적을 따라 중국에서 말라카를 거쳐 인도의 말라바르 해안까지 이르렀고, 그 여행의 기록들을 몇 권의 책과 사진전으로 내보일 수 있었다.

얼마 전, 한동안 잊고 살았던 말라카를 취재하자는 한국방송 역사스페셜팀의 제안이 왔다. 쥐꼬리만 한 출연료에 상관없이 말라카와의 진정한 우정을 발휘해 40도가 넘는 열대를 보름 동안 돌아다녔다. 방송 한 시간 동안 줄창 얼굴을 비춘 덕에 내 얼굴을 알아보는 이까지 생겼다. 하지만 그중에 말라카 출신의 프란체스카는 없었다. 역시나, 떠돌이 사진가의 로맨스는 영화 속 픽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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