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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0.11 17:44 수정 : 2007.10.11 17:44

바깥에서 파릇파릇 건강하게 자란 식물 친구들과의 만남은 여행의 또 다른 재미다. 사진·이명석

[매거진 Esc] 이명석의 반려식물 사귀기

화초에 흠뻑 빠져 사무실 벽과 천장을 정글처럼 가꾼 출판사 사장님께 여쭤보았다. “찾아오시는 분들이 뭐라고 합니까?” “내 전공이 식물학인데, 그쪽 친구들은 꼭 한소리 하지. 저게 다 고문이야.” 지당하신 말씀이다. 저 넓은 땅에서 햇볕 담뿍 받고 자라야 할 꽃과 풀들을 우리 욕심에 작은 그릇에 가둬두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리 신세도 마찬가지잖아. 풀 냄새 나는 벌판에서 뛰어놀아야 할 몸이 사각형 돌에 갇혀 살고 있지 않나. 그러니 화분 속의 친구들아, 사는 게 그러려니 하고 우리 함께 복닥복닥 지내보자.

말은 이렇게 하지만,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날에 나는 슬그머니 가방을 들고 나선다. 평소보다 물을 두 배쯤 부어주는 꼴을 보면 이 친구들도 눈치를 챌 법도 하다. 여기저기 축제다, 행사다, 명절이다 부르는 곳이 많아, 먼 길을 가야 할 일이 줄을 잇고 있다.

예전에는 차에 올라타면 눈 꼭 감고 빨리 도착지에 닿기만을 바랬다. 유달리 멀미도 심하고, 조선 팔도는 산도 물도 비슷해서 보는 재미가 별로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집에서 식물 친구들과 사귀다 보니, 이제 바깥에만 나오면 눈이 희번득해진다. 고문 받지 않고 파릇파릇 자라는 친구들의 자태는 과연 다르다며 감탄을 이어간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풍경도 눈에 잡힌다. 저 산등성이는 가운데만 동그랗게 상수리나무네. 저 메밀꽃만 따라가면 봉평으로 넘어갈 것 같구나.


이명석의 반려식물 사귀기
차가 좀 막히며 운전하는 친구를 꼬여 밥이나 먹자며 작은 마을로 들어선다. 식당 주방에서 애꿎은 오리 한 마리가 유명을 달리 하는 시간에, 우리는 건들건들 동네를 둘러본다. 야트막한 담 너머의 안마당, 작은 돌 틈 … .

매표 창구도 없는 작은 역(驛) 안, 누가 심어 놓았는지 작은 화단이 탐스럽다. 포슬포슬한 하얀 꽃이 나선형으로 펼쳐져 나오는 덩굴이 낯설다. “야, 너는 이름이 뭐냐?” 나물 장사 할머니가 피식 웃는다. “목화여.” 그렇구나. 어릴 때 할아버지 산소 근처에 절대 들어가지 말라는 밭이 있었는데, 그게 목화밭이었다. 꽃이 지면 다래라는 작은 열매를 맺는데, 달콤하다고 따 먹었다간 목화 농사 망친다고. 나는 목화씨 몇 개를 거두어 우리 집 녀석들에게 인사를 시켜주기로 했다.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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