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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 아시아 코끼리 코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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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코식이가 쓰는 동물원대백과사전
나는 말하는 코끼리 코식이라고 해요. 17살 아시아 코끼리죠. 내 몸무게는 5톤이나 돼서, 아프리카 코끼리 못지않다고 해요. 비만은 아니에요. 키가 3.2m, 롱다리거든요. 나는 에버랜드 동물원에 살아요. 숲에 둘러싸인 곳이죠.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나 세 살에 이곳에 왔어요. 잠자는 집과 시멘트 바닥으로 된 30여 평의 사육장이 내 공간의 전부지요. 한 번도 밖에 나가 본 적이 없어요. 이곳에서 들리는 소리, 이곳에서 보이는 하늘, 그리고 쌍봉낙타 낙하산·쌍지·몽블랑·동생 하티와 사육사 아저씨. 이것들이 내 세상의 전부랍니다. 낙하산·쌍지·몽블랑은 평생 동안 내 이웃이었죠. 항상 아무 말 없이 물끄러미 저만 바라보고 있어요. 그 옆에는 얼룩말들이 살아요. 아주 예민한 녀석들이죠. 평소엔 제 목소리가 시끄럽다며 투덜거리다가도 내가 옆으로 가면 화들짝 놀라 도망치거든요. 하티는 나와 함께 사는 다섯 살짜리 아기 코끼리예요. 친동생은 아니지만, 같은 코끼리이기 때문에 제가 챙겨줘요. 위험한 장난은 못 치게 하고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코돌이가 있었어요. 우린 최고의 코끼리 콤비였지요. 코돌이는 나보다 세 살 작은 코끼리였는데, 지금은 대전 동물원으로 이사 갔어요. 코를 뻗어 코돌이의 머리를 툭 치면, 코돌이는 나에게 긴 코로 바람을 ‘후’ 불어댔지요. 우리 둘 장난이 심해서 사육사 아저씨가 걱정했어요. 한번은 장난치다가 넘어져 이렇게 상아가 깨진 적도 있어요. 코돌이가 없어서 심심해요. 하티는 어려서 함께 놀 수가 없죠. 그래서 사육사 아저씨에게 장난을 걸어요. 코로 툭툭 치고 바람을 불고. 그래도 아저씨는 항상 웃으세요. 아저씨가 하는 말도 따라 해봤어요. 아저씨가 자주 쓰는 말이 있거든요. 내가 사과를 달라고 졸라대면 “아직!”, 열심히 운동하고 있으면 “좋아!”, 장난치지 말라고 “안 돼!”, 목욕하자고 “누워!”, 발 치우라고 “발!” 그리고 “하티!”라고 동생을 부르는 소리. 심심해서 따라 해봤어요. “아지! 조아! 안돼! 누어! 발! 아티!” 어떻게 말하느냐고요? 코를 입속으로 말아 넣어서 있는 힘껏 바람을 분답니다. ‘코피리’를 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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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동물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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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코식이를 기르고 있는 담당 사육사는 2004년 여름 코끼리가 사람의 목소리를 모방한 소리를 처음 들었다고 했으나, 아마 그 이전부터 코식이는 계속적으로 발성 연습을 해 온 것으로 추측된다. 코식이의 발성을 녹음한 자료를 숭실대 음성공학연구소에 의뢰하여 ‘발성 스펙트로그램 분석’과 ‘주파수 공명 특성’ 등 두 가지 방법으로 코식이의 음성을 분석한 결과, 사육사의 발성 패턴과 상당 부분 일치했다.” 난생 처음으로 제 집이 북적이기 시작했어요. 에이피(AP)·아에프페(AFP)·로이터 통신 기자들이 몰려왔어요. 기자가 카메라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숨 가쁘게 말했지요. “시청자 여러분, 한국에 말하는 코끼리가 나타났습니다!” 낙하산이 그러더군요. “너 스타 됐으니까 좋겠다!” 얼룩말은 역시나.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호들갑이야! 심심해서 흉내 낸 건 줄은 모르고 ….” 하지만 며칠 지나자 관심을 보이던 사람들도 썰물처럼 사라졌어요. 이곳은 적막해졌고, 세상은 다시 좁아졌어요. 요즈음에는 심드렁해져 말하기 연습도 줄였답니다. 그래서 난 동물원대백과사전을 편찬하기로 했어요. 어릴 적 서울대공원에서 들었던, 밀림과 초원을 누볐던 우리 조상들의 자유와 속박의 역사, 그리고 우리가 신대륙에 오기까지의 이야기 말이에요. 동물원대백과사전, 듣기만 해도 흥미진진하지 않아요? 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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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대백과사전. 촬영협조 서울대공원·에버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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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친번식 감시하지만 무료함 달래주는 동물복지 프로그램도 ⊙ 국내 최초의 코끼리= 태종 11년(1411년) 일본의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모치가 코끼리를 조선 왕실에 선물했다. 한반도에 들어온 최초의 코끼리로 추정된다. 이 코끼리는 1408년 동남아시아의 아라진이라는 사람이 일본 후쿠이 지방 막부의 우두머리 아시카가에게 준 선물이었다. 조선에 온 코끼리는 희한하게도 귀양을 갔다. “전 공조전서 이우가 죽었다. … 이우가 기이한 짐승이라 하여 가 보고, 그 꼴이 추함을 비웃고 침을 뱉었는데, 코끼리가 노하여 밟아 죽였다.”(〈조선왕조실록〉 태종 12년 12월10일편) 태종은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고려해 코끼리를 처벌하지 않고 귀양을 보냈다. 귀양지는 전라도 순천의 섬 장도. 하지만 해당 지역 관리들은 코끼리 관리를 싫어했다. 너무 많은 곡식을 축냈던 것. 〈조선왕조실록〉에는 이런 소동이 자세히 나와 있고, 관리들이 서로 맡기를 꺼려 코끼리는 전라도와 충청도를 떠돌다가 삶을 마감했다. ⊙ 근친 번식= 동물원은 원칙적으로 근친 번식을 금지한다. 근친 번식으로 태어난 동물은 건강하지 못해 쉽게 죽기 때문이다. 따라서 호랑이·사자 등 주요 동물은 근친 번식이 되지 않도록 동물원이 감시한다. 하지만 수가 많은 초식동물들은 완전히 통제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동물원에 알비노가 심심찮게 태어나는 이유도 근친 번식이 많기 때문이다. ⊙ 동물원 관련 책= 동물 보호단체인 카라의 김효진 운영위원은 보라색 꼬리깃털을 가진 공작새 이야기 〈동물원〉(이수지 지음, 비룡소 펴냄)과 아프리카 밀림에서 동물원까지 새끼 고릴라의 모험을 다룬 〈나야, 고릴라〉(조은수 지음, 아이세움 펴냄)를 유아가 볼 수 있는 책으로 추천했다. 앤서니 브라운의 〈동물원〉(논장 펴냄), 양정규의 〈동물들이 울고 있어요〉(문공사 펴냄)도 초등학교 학생 수준에서 동물원을 이해하는 데 맞춤하다. 동물원의 역사를 자본주의의 성장사, 제국주의의 팽창사로 해석한 〈동물원의 탄생〉(니겔 로스펠스 지음, 지호 펴냄)도 관심 있는 어른이 찾아 읽으면 재미있을 것이다. ⊙ 라이거= 수사자와 암호랑이에서 태어난 잡종 동물. 야생에서는 호랑이와 사자의 서식처가 달라 나타날 수 없어 주로 동물원에서 태어난다. 상당수 라이거는 호랑이와 사자를 함께 생육시킨 환경에서 탄생한다. 라이거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동물원이 내세우는 간판 스타였다. 최근 들어서 동물 윤리가 강조되면서, 라이거는 상대적으로 동물원 마케팅에 소외되고 있다. 전세계 동물원에 20여 마리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용인 에버랜드 사파리에 세 마리가 있다. ⊙ 매기= 미국 앵커리지의 알래스카 동물원에 홀로 사는 아프리카 암코끼리. 동물보호 단체의 요구로 최근 알래스카를 떠나 ‘따뜻한’ 샌프란시스코로 옮기도록 결정했다. 앵커리지의 연 평균 온도는 섭씨 2도. 동물운동가와 시민들이 참여한 ‘매기의 친구들’(friendsofmaggie.net)은 2003년부터 알래스카 동물원을 상대로 매기가 따뜻한 곳에서 다른 코끼리와 어울려 살 수 있도록 이주시킬 것을 요구했다. 올해 동물원은 “눈이 오기 전에 매기를 이주시키겠다”고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지난달 12일 샌프란시스코의 동물복지실천협회 보호소(PAWS)가 매기의 새 집으로 확정됐다. 〈앵커리지 데일리 뉴스〉는 지난달 14일 “이로써 매기는 3만㎡의 넓은 땅에서 다른 네 마리의 코끼리와 뛰어놀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매기 이주 운동’을 주도한 캐서린 도일은 “또 한 번 앵커리지에서 겨울을 보내는 건 매기에게 재앙에 가깝다. 동물원이 올바른 일을 했다”고 말했다. ⊙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 거래에 관한 협약(CITES)= 1973년 워싱턴에서 채택돼 1975년 발효됐다. 멸종 위험이 심각한 순서대로 협약Ⅰ(고릴라 등 556종), 협약Ⅱ(사슴·올빼미 등 262종), 협약Ⅲ(인도살모사 등 241종)으로 분류된다. 등급이 높을수록 동물의 몸값도 비싸다. 여기에 등재된 동물은 허가 없이 거래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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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키밸리의 침팬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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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이(왼쪽사진). 사쿠라(오른쪽사진의 왼쪽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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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다리 · 장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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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식이와 사육사 김종갑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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