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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0.18 21:44 수정 : 2007.10.18 21:55

수원에 위치한 선재사찰음식연구원에서 만난 선재 스님.

[매거진 Esc] 가을에 쉽게 만들어먹는 사찰음식,
선재사찰음식연구원 원장 선재 스님에게 듣는다

불경 <유마경>에 나오는 이야기다.

유마거사가 병에 걸렸다. 유마거사는 병을 숨기지 않고 “내가 병에 걸렸다”고 주위에 알렸다. 문수보살(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 병문안을 가서 어디가, 왜 아픈지 물었다. 유마거사는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고 답했다. 사찰 음식에서 농약을 친 농작물을 쓰지 않는 이유가 이 우화에 담겨 있다. 타인의 고통을 제 몸의 아픔으로 느낀 유마거사처럼, 불교는 땅이 농약에 오염되는 것도 제 아픔으로 느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런 불교의 철학은 음식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그래서 불경 <수타니파타>는 꿀벌이 꽃을 해치지 않고 외려 도움을 주면서 꿀을 따오는 것처럼, 인간은 자연을 해치지 않고 먹을 것을 취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푹 익히는 것을 금하는 ‘계율’

호박전·무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정크푸드로 끼니를 때우고, 대량생산된 과자를 간식으로 먹는 ‘중생’들이 지키기에는 너무 가혹한 계율이라고 반박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음식도 계절의 변화에 맞춰야 한다’는 가르침까지 거부하긴 어려울 것 같다. 불교는 종종 음식을 ‘식’이 아니라 ‘약’이라고 한다.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사람의 성품이 바뀌고 건강이 바뀐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철학에 근거해 제철에 나는 재료를 쓰고 조미료를 쓰지않는 사찰음식이 각광을 받고있다. 선재사찰음식연구원 원장 선재 스님(51)은 가을 요리를 추천해달라는 질문에 “사람은 환경의 변화에 맞춰 음식을 먹는 게 중요합니다. 가을에는 계절 리듬에 맞춰 먹어야 합니다”라는 ‘화두’를 먼저 던졌다. 불경을 보면 가을에는 염증 때문에 생기는 병이 많다고 선재 스님은 말했다. 따라서 가을 환절기를 건강하게 나려면, 뿌리·열매·줄거리 등을 이용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재 스님은 가을에 집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사찰 음식으로 우엉두부조림과 호박전·무전을 추천했다. 우엉·두부·늙은 호박·무 등은 모두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재료다. 둘 다 조리법도 간단하다. 두부우엉조림을 만들 때는 채 썬 우엉을 볶는 작업이 가장 중요하다. 우엉을 들기름에 볶으면서 우엉 특유의 섬유질 질감을 유지하도록 적당히 볶아야 한다. 사찰 음식은 영양소 파괴 때문에 푹 익히는 것을 금한다. 반드시 지켜야 할 또 하나의 ‘계율’은 설탕을 쓰지 않는 것이다. 우엉을 조릴 때 설탕 대신 조청이나 물엿을 넣어야 한다. 다른 금기도 있다. 사찰 음식에는 파·마늘·양파·달래·흥거(우리나라에 나지 않는 향이 강한 식물)를 쓰지 않는다. 불가에서는 이들을 ‘오신채’라 하며, 향과 맛이 강해 날로 먹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성내게 하고 익혀 먹어도 ‘음심’(음탕한 마음)을 일으킨다고 본다.

우엉두부조림
무전 위에 얹는 소스도 설탕 대신 사과를 갈아서 넣는다. 설탕을 안 쓰고 단맛을 내기란 무척 어렵지만, 억지로 단맛을 내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본다. 심지어 선재 스님은 홍시를 이용해서 김치를 담그는 법을 곧 강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무전은 좋은 무를 고르는 게 중요하다. 전부치기에 가장 좋은 무는 김장철에 나오는 무다. 무를 썰면 무에서 즙이 나오는데, 김장철에 나오는 무에서 나오는 즙이 반죽하기에 적당하다. 요컨대 세 가지 음식 모두 재료 자체의 맛과 향을 얼마나 잘 살리는가가 핵심인 셈이다.


연꽃무늬 도기에 담긴 두부우엉조림은 ‘담백하다’는 형용사만으로는 부족할 만큼 담백한 맛을 냈다. 우엉의 쫄깃한 질감과 두부의 고소한 맛이 입안에 가득 찼다. 자극적인 단맛이 없어서 혀가 느리게 반응했지만, 맛의 느낌은 오래 지속됐다. 원재료 외에 다른 재료가 쓰이지 않은 호박전과 무전의 맛도 웅숭깊었다. 재료 자체에서 나오는 맛이다. 어렸을 때 비가 오면 마당에서 맨몸으로 비를 맞고 놀았다. 무전의 맛은 그 생생함과 닮아 있었다.

설탕 대신 사과를 갈아 단맛 내야

선재 스님은 “정확히 표현하자면 사찰 음식보다는 선식(禪食)이라는 표현이 맞습니다. 어떤 음식을 어떻게 가려 먹느냐는 것도 수행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선재 스님은 요즘 한국선음식문화연구원을 수원에서 양평으로 이전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기초공사가 끝났으나 추가 재원 마련을 위해 잠시 공사를 중단한 상태다. 선재 스님은 이달 20일에는 외국인을 상대로 사찰 음식에 대해 강의하고 요리도 할 계획이다. 파·마늘·양파 등을 넣지 않은 사찰김치 등 다양한 사찰 음식을 공부할 수 있다. 서울 강남 봉은사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또 선재 스님은 수서에 있는 법룡사에서 매주 월·금요일 오전 10시30분과 오후 2시 모두 네 차례 사찰 음식 강연을 한다. 사찰 음식은 ‘느림의 미학’을 닮았다. 요즘 걷기에 관심이 많다면 찾아갈 만하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선재 스님의 레시피 / 우엉두부조림 & 호박전 & 무전

우엉은 적당히 볶으세요

우엉두부조림 재료

우엉 2대, 두부 1모, 들기름, 간장, 조청(또는 물엿)

조리 방법(3인분 기준)

1. 두부를 굽는다 .
2. 우엉을 잘게 채 썬 뒤 들기름에 볶는다.
3. 우엉이 어느 정도 볶이면 간장 2티스푼과 조청을 넣고 두부와 함께 졸인다.


호박전 재료
호박전 재료

늙은 호박, 들기름, 소금

조리방법

1. 호박을 잘게 채 썰어 한 대접 정도 준비한다.
2. 채 썬 호박에 소금 1/2티스푼을 넣고 주무른다.
3. 밀가루를 넣고 한입 크기로 부친다.

무전 재료

무, 소금, 사과 1개, 고추장, 식초


무전 재료

조리방법

1. 무전 부치는 방법은 호박전과 같다.
2. 사과를 갈아서 고추장을 밥숟가락으로 1숟가락 넣고 식초를 뿌려 소스를 만든다.
3. 무전과 함께 소스를 작은 그릇에 담아 낸다

고나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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