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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라하 타운 변두리의 유채밭. 치트완 국립공원의 기점이 된다. 멀리 랑탕 히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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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북쪽의 설산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남부 타라이의 야생동물 국립공원 경험하기
리조트에 짐을 풀자마자 사우라하 타운 거리로 나서 보니 과연 듣던 대로 치트완의 타멜(카트만두의 외국인 번화가)이다. 여기저기 코끼리들이 어슬렁거리고 돌아다니긴 해도 수십 개의 로지와 식당, 여행사, 인터넷 카페, 환전소 등이 불규칙하게 들어선 모양이 정글 분위기를 다소 해치는 듯하다.
캐릭터 카페의 인테리어 같은 흙집
정글 반대편 마을 쪽으로 돌아서 걷다 보니 겨울인데도 한낮이라 다소 덥다. 여기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들은 타라이 정글의 초기 정착민인 타루족이다. 타루족의 집은 정글의 진흙과 갈대로 지은, 말 그대로 친환경적인 전통가옥이다. 집 안도 흙바닥이고 실내 생활을 위한 장식도 모두 진흙 벽을 팠거나 도드라지게 만들어서 진짜 ‘토가’다. 마치 캐릭터 카페의 인테리어 같아서 재밌기도 하고, 흙집인데도 집 안팎이 정갈하기도 하다. 좍 펼쳐진 드넓은 농경지에 아담한 흙집이 조화를 이루는 마을 풍경은 저 멀리 북쪽의 설산 랑탕 히말과 어우러져 네팔의 다른 지역 분위기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벌써 나는 내일 새벽에 여길 다시 오기로 마음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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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트완의 라프티강. 악어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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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트완 국립공원 안내인을 따라서 밀림 들머리에서 대기하고 있던 지프로 가 보니 아까 라프티강을 건널 때 함께 카누를 탔던 사람들이 그대로 우리 팀이다. 캐나다 퀘벡에서 온 커플, 호주 멜버른에서 온 커플, 스페인 아저씨, 서울에서 온 우리(나와 나의 그녀) 그리고 안내인까지 모두 8명이다. 대강 끼어 앉으니 지프가 덜커덩거리며 요란하게 출발한다. 이렇게 시끄러워서야 어디 야생동물들이 얼굴이나 보여줄까 슬그머니 의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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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클라판타 국립공원의 늪사슴. 늪사슴이 무리지어 사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공원 이름도 늪사슴의 네팔어인 스클라판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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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30분쯤 달리니까 서늘한 정글 숲의 느낌이 온다. 어느새 지프의 비좁았던 자리도 널찍해졌다. 배낭 꾸릴 때 탁탁 쳐서 자리를 더 만드는 것처럼 울퉁불퉁한 정글 트랙을 달려서 자리가 넓어진 것인가. 아마도 초면에 품었던 경계의 마음을 놓아서였을 거다. 하여간 나로서는 움직임이 많을 수밖에 없는 사진가 티를 좀 내도 될 형편이다. 아직까지는 여러 종류의 새들과 원숭이, 사슴들만 보인다. 사람들은 안내인의 망원경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새들을 보느라고 법석이다. 강가를 지날 때는 여기저기 악어들도 많이 보이는데 라프티강에서 카누를 탈 때 실컷 보아서인지 모두들 시큰둥하다. 정글 숲 속을 거의 세 시간을 달렸는데 코뿔소는 코빼기도 안 보인다.
우리는 여러 매체에서 나오는 밀림의 동물 모습이 사실 카메라가 동물에 초점을 맞춘 순간들을 극대화해 보여주는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과거에 야생동물을 찍었던 경험으로 봐도 우리는 동물들의 모습을 슬쩍 볼 수 있을 뿐이지 텔레비전에서 보듯이 그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생명에 위협을 받을 만큼 위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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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트완 국립공원. 마하우트(조련사)와 코끼리가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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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트완에 벵갈호랑이만 60여 마리 서식
어쨌든 나는 호랑이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치트완에 서식하는 벵갈호랑이는 60여 마리로 아주 적은 수는 아니지만, 워낙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신비로운 동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뿔소는 대략 400마리나 되고 안내인도 웬만해서는 볼 수 있다고 했다. 게다가 마주쳐 지나가던 지프팀이 그들이 본 세 마리의 코뿔소가 얼마나 컸는지 자랑하고 갔다. 이제 다른 동물들에게는 관심이 덜 간다. 지프 지붕 위로 올라서까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 시간도 넘게 코뿔소의 행방을 살폈더니 몹시 춥다. 날은 어둑해지려는데 호랑이는 고사하고 코뿔소도 안 보이고, 낙심한 안내인이 모험을 감행했다. 운전사를 설득해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트랙으로 지프를 몬 것이다. 하지만 정글에서 ‘길 없는 길’을 한 시간이나 달렸는데 강줄기 앞에서 길이 뚝 끊겼으니 다시 되돌아 나올 수밖에. 온종일 정글을 헤매다 나오니 모두들 기진맥진해서 서로 눈도 안 마주치고 입으로만 ‘굿바이!’ 작별 인사를 했다.
바르디아 국립공원은 치트완에 비하면 훨씬 조용하다. 정글인데도 온화함이 느껴진다. 대저택처럼 널따랗게 조성된 리조트들도 나지막한데다가 1∼2㎞씩 거리를 두어서 정글 분위기가 물씬 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2의 치트완으로 부상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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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디아 국립공원에서 조련사와 코끼리가 사파리를 끝내고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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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르던 코끼리 사파리는 생각보다 인상적이었다. 코끼리는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 한 3초 정도에 한 발씩 떼는 것 같다. 처음에는 코끼리 위에 앉아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 짐짝이 된 듯했는데, 조금 지나니까 익숙해져서 불편하지 않고, 아예 몸을 맡겨 버리니까 신까지 났다. 마하우트(코끼리 조련사)는 열네 살 소년인데 달랑 조그만 막대기 하나만 가졌다. 그 막대기로 필요할 때마다 코끼리 머리의 움푹 들어간 정수리를 톡톡 치는데, 유심히 보니 소년이 치는 횟수와 힘에 따라 멈추고 나아가고 또 우거진 수풀을 그 크고 기다란 코로 치운다. 그리고 우회전 좌회전은 소년의 발가락으로 귀 뒷부분을 주물럭거려 신호를 한다. 코끼리와 한 몸을 이뤄 운전하는 소년은 진짜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다. 좌우간 코끼리를 타고 정글을 헤집고 다니는 게 재밌었다. 여기서도 사슴, 원숭이와 다양한 새들을 실컷 봤는데 특히 청록색 몸통이 그렇게 화려할 수 없는 공작새의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안내인은 이곳에선 호랑이가 자주 출몰한다고 기대를 가지게 했지만, 여기서도 호랑이는커녕 코뿔소도 못 봤다. 그럼 다음 목적지인 수클라판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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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누를 타고 라프티강을 따라가며 악어와 새 등을 관찰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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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직후 수백마리 늪사슴떼의 장관
수클라판타 국립공원은 아직 개발이 덜 돼서 조용하다 못해 고립된 듯하다. 아직 리조트 시설이 들어서지 않았고 공원 안에 머물려면 캠핑을 해야 한다. 그리고 치트완이나 바르디아같이 관광객을 위한 시스템도 갖추지 못한 편이다. 코끼리 사파리는 하루 전에 예약해야 하기 때문에 지프 사파리만 가능하단다. 보아하니 손님이 우리뿐이다.
공원은 바히니 강둑을 따라 인도산 나왕나무 숲이 우거진 것이 바르디아와 비슷한 정글 풍경이다. 정글 안내인이 이곳은 늪사슴이 많다는 설명을 하며 수클라판타도 네팔말로 늪사슴이라는 뜻이란다. 과연 두어 시간 달려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니, 초지가 지평선을 이루는 광대한 평원에 늪사슴 떼가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다. 달리는 지프 지붕 위에 앉으니, 해가 지는 초원에서 사슴 떼가 수백 마리씩 몰려다니는 풍경이 장관이다. 아름답고 평화롭다는 말이 딱이다.
되돌아 나오는 길에, 안내인에게 “나는 정말로 코뿔소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더니, 자기는 호랑이를 더 자주 본단다. 그런 말에도 우리는 정글 지역을 일주일이나 헤매고 다닌 공력(?) 덕분에 들뜨지는 않았다. 그래도 호랑이 발자국은 봤다!
타라이(네팔)=글·사진 여동완/사진가
농사짓기 좋고 동물 살기 좋고…
정글 사파리 모여 있는 네팔의 젖줄 타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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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라하 타운 언덕에서 라프티강 건너 정글을 바라본 저녁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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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왕국으로 널리 알려진 네팔은 자연이 만든 ‘히말라야의 그래픽 디자인’이라 할 만하다. 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히말라야 산맥이 동서로 쭉 늘어서 있고, 그 아래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마하바라트와 추리아(인도어로는 시왈리크) 산맥이 형성돼 수많은 구릉지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맨 아래 아열대 정글 지역까지를 포함하는 타라이 지방이 마침내 주름막처럼 펼쳐진다.
타라이 평원 지역에는 히말라야에서 흘러나온 네팔의 주요 강들이 인도의 갠지스로 흘러간다. 충적토가 쌓인 비옥한 땅이 방대하고, 많은 비와 높은 습도를 보이는 아열대 기후에 속하기 때문에 농경에 적합하다.(네팔 쌀 소비량의 80%가 이 지역에서 생산된다.)
타라이에는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국립공원이 네 군데 있다. 치트완(Royal Chitwan National park), 파르사(Parsa Wildlife Reserve·미개방), 바르디아(Royal Bardia National park), 수클라판타(Royal SuklaPhanta Wildlife Reserve) 등이다. 가장 많은 사람이 찾고 동시에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곳이 치트완 국립공원이다. 1970년대 제일 먼저 국립공원으로 문을 연 치트완은 ‘히말라야 산악국가’ 네팔에서 호랑이, 코뿔소, 사슴 그리고 수많은 종류의 새들은 물론 악어, 돌고래 등과 만나는 정글 사파리라는 점에서 인기를 끈다. 사파리는 건기인 10월에서 이듬해 2월까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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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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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사파리 쪽지
치트완, 카트만두에서 120km
⊙ 따라이 지역에서 정글 사파리를 할 수 있는 곳은 중부의 치트완 국립공원과 서쪽의 바르디아 국립공원 그리고 수클라판타 등이다. 그러나 치트완을 제외하면 지프를 빌려 가야 한다. 개별 여행자들이 정글 사파리 여행을 하도록 교통, 숙박시설 등 인프라가 이루어진 곳은 치트완이다. 치트완은 공교롭게도 카트만두에서도, 포카라에서도 120㎞ 떨어져 있다. 버스표, 비행기표, 렌터 지프 등의 교통편은 여행사를 통해서 산다. 카트만두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20여 년 동안 여행사를 해 온 아말 샤이의 라이카 투어(raikatours.com)를 추천한다.
⊙ 카트만두 또는 포카라에서 치트라살리까지 버스로 6시간 걸린다. 일반 버스 350루피, 에어컨 버스 700루피(점심 포함). 치트라살리에서 치트완 리조트 타운인 사우라하까지 5㎞다. 지프를 타면 1인당 50루피. 카트만두에서 지프를 빌려서 가는 경우에도 여행사를 통해서 의뢰해야 하는데, 비용은 가는 데만 대략 4000루피다. 1달러=약 70루피, 1루피=약 14원.
⊙ 비행기를 이용할 경우 카트만두∼메가울리(30분, 약 5740루피), 카트만두∼나라얀가르 또는 바라트푸르(30분, 약 3780∼4900루피), 포카라∼바라트푸르(20분, 약 3080루피) 등의 비행편을 이용한다. 각 공항에서 사우라하로는 택시나 지프를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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