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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특별히 민감해진 이유는 따로 있다. 붉게 잎을 물들이며 가을 햇살 아래 반짝거리는 식물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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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이명석의 반려식물 사귀기
지구온난화인가 뭔가 때문인지, 계절이 제멋대로다. 10월의 허리가 꺾어지는데 모기는 부대 단위로 앵앵거리고, 봄꽃을 보려고 구근을 심었더니 벌써부터 싹을 틔우고 난리다. 슈퍼컴퓨터를 둔 기상청도 가을장마라느니, 우기라느니 어지러운 말만 쏟아내니 이를 어쩌나? 큰 농사를 짓는 이들에 비할까만, 화분 몇 개 보살피는 우리 역시 ‘계절 장님’ 신세는 괴롭기 그지없다. 이제 달력도 절기도 허망하지만, 내게 기댈 언덕은 하나 남았다. 생물계절학(phenology). 꽃이 피고, 철새가 날아오고, 물고기가 나타나는 걸 보고 시간의 추이를 알아내는 과학이다. 그러니까 정원사의 공책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크게 쪽이 구분되고, 각 쪽은 가운데 줄을 기준으로 좌우 칸으로 나뉜다. 왼쪽은 ‘자연의 신호’, 오른쪽은 ‘인간의 할 일’. ‘개나리가 피어나면, 장미나무 가지를 치거라. 라일락이 피면, 콩과 호박을 심어라.’ 급속한 기상 이변의 시대에 생물계절학은 새로운 데이터들을 요구한다. 영국에서는 ‘자연 탐정’(Nature Detectives) 프로젝트를 통해 4~18살 청소년들에게 이 임무를 맡겼다. “우리 집 국화가 피었어요.” “개구리가 한 마리도 안 보여요.” 매일매일 웹사이트에 올라오는 정보를 모아 기후의 변화가 자연에 끼치는 영향을 파악하고, 그때그때 해야 할 일을 찾도록 해준다. 사실 내가 이 계절에 특별히 민감해진 이유는 따로 있다. 언제 단풍놀이를 가야 할까, 그게 궁금해서다. 기상청에서 부지런히 단풍 전선의 남하를 알려주긴 하지만, 예전에는 적당히 재우면 되던 화초들도 늦여름인 양 깨어 있는 게 그냥 두고 갈 수가 없는 지경이다. 하나 먼 산의 단풍들을 아쉬워만 하고 있을쏘냐? 집안에서도 꽃보다 붉게 잎을 물들이며 가을 햇살 아래 반짝거리는 녀석들의 교태를 즐겨보자. 노보탄을 영어권에서 스패니시 숄이라고 하는 이유를 이때에야 제대로 깨닫는다. 작은 초록 잎은 서서히 붉어지며 원래 붉은 줄기와 어울려 꽃보다 화려하게 늘어진다. 담 없이도 잘 자라는 미니담쟁이는 가을이야말로 제철인 양 제대로 붉다. 마삭줄도 민트도 엽록소를 뱉어내며 스산해지면, 서리 내릴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안다. 이명석 저술업자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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