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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시칠리아 태양의 요리’〉파스타가 불타는 주방, 로베르토여 재료를 던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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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박찬일의 ‘시칠리아 태양의 요리’ ①
동양에서 온 겁없는 촌뜨기가 시칠리아의 시골 식당에서 구르기까지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 대신 ‘펜은 음식보다 맛있다’고 믿는 글쟁이가 있었다. 잡지 등에 요리 얘기를 써서 먹고 살던 기자는 어느 날 그 일을 멈췄다. 요리보다 맛있어야 할 요리 기사는 점점 ‘맛을 잃었다’. 3급 요리사가 인공 조미료로 맛을 내는 것처럼, 기자는 열정적인 취재 대신 진부한 형용사와 부사로 글을 쓰는 자신을 발견했다. 기자는 펜을 놓고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는 1999년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를 수료한 뒤 시칠리아·페루자·로마 등지에서 3년 동안 요리사로 일했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시칠리아에 거주했던 요리사였다. 그가 다시 펜을 잡는다. 한 동양인이 ‘마피아의 고향’으로 알려진 이탈리아 남부에서 1급 요리사가 되기까지 겪었던 일들이 2주에 한 번씩 펼쳐질 예정이다.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이 ‘이야기 화덕’에 피자를 굽는다. 토핑은 이탈리아에서의 에피소드와 그들의 문화·역사, 살며 사랑하는 방식이다. 박찬일은 요리사지만 “글맛이 음식보다 맛있다”고 말해도 그리 기분 나빠하지 않는 요리사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마침 바캉스철이라 스위스와 독일 부자 관광객 단체 손님 예약이 밀려들었다. 시칠리아 시골 식당이 자랑해마지않는 전통의 다섯 가지 코스를 그네들에게 먹이고 10%쯤 팁까지 뜯어낸 뒤 돌려보내야 했다. ‘유럽의 명소’인 시칠리아의 식당은 대부분 여름 한 철 장사해서 일년을 먹고 산다. 이 시기에 막 주방에 투입된 건 참 복도 없는 일이었다. 세상에, 길거리 온도가 50도라니 거리는 지글거렸다. 이 시기에 시칠리아 사람들은 낮엔 꼭꼭 숨어 지낸다. 지중해의 태양이 문자 그대로 ‘내려 꽂히는’ 한낮에는 지열까지 푹푹 올라와 거리의 온도계가 50도를 넘기니까 말이다. 섭씨와 화씨가 헷갈리던 당시에 난 그게 화씨인 줄 알았다. 세상에, 한증막도 아니고 길거리 온도가 50도라니 믿겨지지 않을밖에. 어쨌든 멀리 한국에서 이탈리아 요리를 배우겠다고 깡촌까지 날아온 이상한 녀석에게 ‘당해 봐라’는 심정이었던지 주방장은 아예 웃지도 않고 ‘로베르토, 로베르토!’를 불러제끼면서 할일을 떠안겼다. 글쎄, 발음하기 힘든 내 이름 대신 엉겁결에 얻게 된 로베르토란 이름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토토’나 ‘피에로’같은 우스운 이름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주방은 아예 불바다였다. 올리브유에 굽는 마늘 냄새가 자욱하게 퍼지고, 가스 화력을 최대로 높이고 프라이팬으로 열심히 파스타를 볶아대는 요리사들 사이로 불길이 넘실댔다. 나는 그들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피해 다니면서 필요한 재료를 준비해 던져주는 일부터 해야 했다. 사수들에게 총알을 공급하는 탄약수 같은 거라고나 할까? “로베르토!, 빨리!” 음, 첫 번째 프라이팬에 있는 뻬뻬가 하는 요리는 새우를 넣은 뇨키(감자와 밀가루로 만든 일종의 떡). 손질한 중새우 다섯 마리와 콩카세(씨를 뺀 토마토) 한 숟가락, 붉은 양파 두 줌과 다진 파슬리 한 줌, 그리고 레몬즙을 짜넣을 수 있도록 레몬 반 개를 순서대로 갖다 바친다. “로베르토! 젠장!” 다른 녀석이 부른다. 허리를 맵시 있게 비틀어 그 녀석에게 간다. 올리브유와 감자볶음을 곁들인 지중해식 오징어순대. 배가 터지게 속을 넣어 준비해둔 오징어를 냉장고에서 꺼내 올리브유를 바르고 그릴에 휙 던져 지글지글 구우면서 콘토르노(곁들임요리)로 쓸 감자볶음을 할 수 있도록 그 녀석에게 손질한 재료를 담은 쟁반을 건넨다. 이크! “빌어먹을, 로베르토!! 파스타솥이 넘치잖아!” 재빨리 파스타솥으로 가서 아홉 개 망에 들어있는 제각기 다른 모양의 파스타가 순서대로 익고 있는지 체크한다. 지나치게 익지 않도록 끄집어내 소금물을 빼고 프라이팬을 잡고 있는 세 녀석에게 동시에 던져준다. 뜨거운 물이 주르륵 요리복 위로 떨어진다. 앗 뜨거! 2도 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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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 바닷바람은 힘겨운 노동을 덜어주는 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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