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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0.24 22:52 수정 : 2007.10.24 23:10

〈박찬일의 ‘시칠리아 태양의 요리’〉파스타가 불타는 주방, 로베르토여 재료를 던져라

[매거진 Esc] 박찬일의 ‘시칠리아 태양의 요리’ ①
동양에서 온 겁없는 촌뜨기가 시칠리아의 시골 식당에서 구르기까지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 대신 ‘펜은 음식보다 맛있다’고 믿는 글쟁이가 있었다. 잡지 등에 요리 얘기를 써서 먹고 살던 기자는 어느 날 그 일을 멈췄다. 요리보다 맛있어야 할 요리 기사는 점점 ‘맛을 잃었다’. 3급 요리사가 인공 조미료로 맛을 내는 것처럼, 기자는 열정적인 취재 대신 진부한 형용사와 부사로 글을 쓰는 자신을 발견했다. 기자는 펜을 놓고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는 1999년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를 수료한 뒤 시칠리아·페루자·로마 등지에서 3년 동안 요리사로 일했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시칠리아에 거주했던 요리사였다. 그가 다시 펜을 잡는다. 한 동양인이 ‘마피아의 고향’으로 알려진 이탈리아 남부에서 1급 요리사가 되기까지 겪었던 일들이 2주에 한 번씩 펼쳐질 예정이다.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이 ‘이야기 화덕’에 피자를 굽는다. 토핑은 이탈리아에서의 에피소드와 그들의 문화·역사, 살며 사랑하는 방식이다. 박찬일은 요리사지만 “글맛이 음식보다 맛있다”고 말해도 그리 기분 나빠하지 않는 요리사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마침 바캉스철이라 스위스와 독일 부자 관광객 단체 손님 예약이 밀려들었다. 시칠리아 시골 식당이 자랑해마지않는 전통의 다섯 가지 코스를 그네들에게 먹이고 10%쯤 팁까지 뜯어낸 뒤 돌려보내야 했다. ‘유럽의 명소’인 시칠리아의 식당은 대부분 여름 한 철 장사해서 일년을 먹고 산다. 이 시기에 막 주방에 투입된 건 참 복도 없는 일이었다.

세상에, 길거리 온도가 50도라니

거리는 지글거렸다. 이 시기에 시칠리아 사람들은 낮엔 꼭꼭 숨어 지낸다. 지중해의 태양이 문자 그대로 ‘내려 꽂히는’ 한낮에는 지열까지 푹푹 올라와 거리의 온도계가 50도를 넘기니까 말이다. 섭씨와 화씨가 헷갈리던 당시에 난 그게 화씨인 줄 알았다. 세상에, 한증막도 아니고 길거리 온도가 50도라니 믿겨지지 않을밖에.

어쨌든 멀리 한국에서 이탈리아 요리를 배우겠다고 깡촌까지 날아온 이상한 녀석에게 ‘당해 봐라’는 심정이었던지 주방장은 아예 웃지도 않고 ‘로베르토, 로베르토!’를 불러제끼면서 할일을 떠안겼다. 글쎄, 발음하기 힘든 내 이름 대신 엉겁결에 얻게 된 로베르토란 이름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토토’나 ‘피에로’같은 우스운 이름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주방은 아예 불바다였다. 올리브유에 굽는 마늘 냄새가 자욱하게 퍼지고, 가스 화력을 최대로 높이고 프라이팬으로 열심히 파스타를 볶아대는 요리사들 사이로 불길이 넘실댔다. 나는 그들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피해 다니면서 필요한 재료를 준비해 던져주는 일부터 해야 했다. 사수들에게 총알을 공급하는 탄약수 같은 거라고나 할까?

“로베르토!, 빨리!”

음, 첫 번째 프라이팬에 있는 뻬뻬가 하는 요리는 새우를 넣은 뇨키(감자와 밀가루로 만든 일종의 떡). 손질한 중새우 다섯 마리와 콩카세(씨를 뺀 토마토) 한 숟가락, 붉은 양파 두 줌과 다진 파슬리 한 줌, 그리고 레몬즙을 짜넣을 수 있도록 레몬 반 개를 순서대로 갖다 바친다.

“로베르토! 젠장!”

다른 녀석이 부른다. 허리를 맵시 있게 비틀어 그 녀석에게 간다. 올리브유와 감자볶음을 곁들인 지중해식 오징어순대. 배가 터지게 속을 넣어 준비해둔 오징어를 냉장고에서 꺼내 올리브유를 바르고 그릴에 휙 던져 지글지글 구우면서 콘토르노(곁들임요리)로 쓸 감자볶음을 할 수 있도록 그 녀석에게 손질한 재료를 담은 쟁반을 건넨다. 이크!

“빌어먹을, 로베르토!! 파스타솥이 넘치잖아!”

재빨리 파스타솥으로 가서 아홉 개 망에 들어있는 제각기 다른 모양의 파스타가 순서대로 익고 있는지 체크한다. 지나치게 익지 않도록 끄집어내 소금물을 빼고 프라이팬을 잡고 있는 세 녀석에게 동시에 던져준다. 뜨거운 물이 주르륵 요리복 위로 떨어진다. 앗 뜨거! 2도 화상.

시칠리아 바닷바람은 힘겨운 노동을 덜어주는 벗이다.
당신이 이탈리아에서 차를 얻어탄다면…

녀석들은 한 손으로 팬에서 파스타며 채소 등속을 볶으면서 다른 한 손은 손가락을 가지런히 모으고 하늘을 향해 감자를 먹이는 짓을 해댔다. 미치도록 바쁘다는 뜻인데, 말보다 제스처를 먼저 배우는 이태리인다운 행동이랄까, 문제는 동시에 두 개의 팬을 잡고 있어도 어느 한 손은 반드시 무언가 제스추어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네들의 습관이었다. 하긴, 부주방장 뻬뻬는 뒷자리에 사람을 태우고 오토바이를 몰 때도 핸들을 놓고 양손으로 그 빌어먹을 제스처를 해대곤 하는데, 그게 별나지도 않다는 게 문제였다. 경고하건대, 당신이 이태리에서 차를 얻어 타고 갈 때는 절대 뒷자리에 앉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미인이라면 더욱 심각해진다. 운전자가 전방에 무엇이 있든 엑셀을 마구 밟으면서도 뒤를 돌아보며 양손으로 제스처를 할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움베르토 에코가 이런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칼럼을 썼다고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지만, 경찰청에서 여러 차례 공익광고를 만들어 경고를 날려대도 소용이 없었다. 태어나면서 말보다 먼저 배우는 제스처를 어떻게 멈추란 말인가. 제스처는 그러니까, 이탈리아에서는 단순한 몸짓이 아니라 언어 이상의 표현 수단인 거다. 아직 말도 못하는, 주방장 딸인 두 살짜리 프란체스카가 십수 가지 제스처로 젖도 얻어먹고, 이상하게 생긴(?) 내게 호기심도 표현하는 걸 보면 정말 가관이다.

어쨌든, “로베르토! 로베르토! 로베르토! 로베르토!”

대충 이 이름이 수백 번쯤 불리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걸어서 오 분 거리인 숙소까지 나는 거의 그로기 상태로 이동하는데, 신발도 벗지 못하고 침대에 쓰러지는 게 다반사였다.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 근처의 요리학교를 마치고 시칠리아로 간 건 솔직히 좀 객기를 부려본 거였다. 아마도 그 요리학교 졸업생 중에 시칠리아로 요리사 생활을 떠나고자 하는 이는 거의 없었을 터였다. 실습처를 배당하는 학생주임의 표정이 딱 그랬다. ‘너, 거기서 견딜 수 있겠어?’

마피아가 괜히 마피안 줄 알아?

그는 500cc짜리 고물 자동차 ‘친퀘첸토’(500이란 뜻)로 나를 싣고 기차역으로 가면서 내내 겁을 줬다. 동양인은 원숭이꼴이 된다고, 마피아가 괜히 마피아인 줄 알아? 아니다 싶으면 얼른 전화하고 올라오라고 ….

기차표에는 그 북부의 도시에서 시칠리아까지의 거리가 표시되어 있었다. 2천킬로미터. 기껏 서울~부산 정도가 현실감 있는 거리인 내게 실감이 날 리 없었다. 1박2일, 22시간을 꼬박 달려 일하게 될 도시의 허름한 역사에 도착했을 때 내 운명은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흰 요리복을 입고 높다란 모자를 쓰고 불판 앞에서 거들먹거리면 될 거라는 착각이 박살나기 시작했다. 시칠리아 시골 식당의 주방은 동양에서 온 촌뜨기가 노예처럼 굴러다니기에 딱 알맞은 곳이었으니까.

뚜또베네 주방장·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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