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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1.08 13:14 수정 : 2007.11.08 13:14

싹 틔운 고구마와 국화는 창가에서 누리는 호사다. 사진/ 이명석

[매거진 Esc] 이명석의 반려식물 사귀기

“저, 중고 스피커 하나 추천해 주시겠습니까?” 서먹서먹하게 인사만 나누던 음악평론가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운이 이렇게 딱 맞을 수가? 오전에 진짜 괜찮은 놈이 나왔어요.” “얼마쯤 하는데요.” “2천이면 될 겁니다.” 디지털 카메라를 바꾸려고 블로그에 살짝 운만 띄웠다. 사방에서 소위 ‘뽐뿌질’이 들어온다. 약간 방심했다가 국내 출시일을 못 기다리고 일본까지 날아갈 뻔했다. 비행기 티켓과 숙박료를 합치면 애초의 내 예산이다. 뱀은 개구리를, 취미는 지갑을 잡아먹는다.

나도 별스러운 데 욕심 많고 여기저기 눈독 들이기로는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다. 백화점에 가면 디자이너 액세서리 숍과 수입 어린이용품점을 지나치지 못한다. 하지만 천성이 짠돌이라 눈요기만으로 감사한다. 플라멩코 기타, 스윙 댄스, 커피 등 요즘 맛을 들이고 있는 취미도 적지 않지만, 가능하면 염가 정책을 고수한다. 그런 내가 공인한다. 경제력의 문턱이 가장 낮고, 가격 대비 성능이 가장 뛰어난 취미라면 단연 ‘식물’이다.

동네 화원은 살짝 사양한다. 조금만 발품을 팔아 양재동이나 종로6가를 가면 만원 한 장으로 양팔이 욱신거릴 정도의 보물들을 산다. 부엌 한쪽에서 튀김이 될 운명을 거부하고 싹을 틔워버린 고구마는 또 어때? 뚜껑 잃어버린 유리병에 넣어 창가에 내놓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이명석의 반려식물 사귀기
물론 화초도 부자 아빠의 취향이 되고 남는다. 대도시 한가운데서 오십 종의 나무를 심을 마당을 구하고, 옥상 전체를 배수 공사한 뒤 분수정원을 만들고, 암스테르담 운하를 내려다보는 집 한 채를 살 정도의 희귀 튤립 구근을 구하려고 뛰어다닐 수도 있다. 하지만 가난한 아빠에게도 태양과 바람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자원이 무궁무진하게 주어진다.

‘단돈 3천원으로 가을을 사세요.’ 국화 트럭의 이 문구에 찡해 버린다. 정말 국화의 가격 대비 성능에 따라올 화초도 없다. 꽃들이 활짝 피면 줄기를 쓱쓱 잘라 이 방 저 방을 채운다. 자를수록 꽃망울은 더욱 열심히 돋아나니 아까워할 필요가 없다. 서리가 내린 뒤엔 죽어버렸다 싶다가도, 이듬해엔 또다시 몽글몽글 꽃을 피운다. 창밖 화단에 던져 버렸던 펀드에서 가을마다 이자를 보내온다.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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