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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시칠리아 태양의 요리’ / 불어터진 파스타는 공산당에 신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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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박찬일의 ‘시칠리아 태양의 요리’
주방장의 악다구니에 시달리다 좌파정당 사무실의 공짜커피에 위로받던 나날들 유명한 파스타 이론서 <라 파스타>를 쓴 이탈리아의 마리아 템페스티니는 “이탈리아 요리의 위대한 배우는 파스타”라고 말했다. 사실 프랑스·스페인·포르투갈의 식탁과 이탈리아는 별반 다를 게 없다. 돼지 가공품도 비슷하고, 해물 요리도 비슷하다. 올리브기름을 많이 쓰는 것도, 다양한 치즈를 즐기는 것도 그게 그거다. 그러나 이들 나라와 이탈리아의 부엌이 다른 것은 파스타의 힘이다. 파스타 없는 이탈리아의 식탁은 상상도 할 수 없게 됐다. 그러니까, 파스타는 이탈리아의 정체성을 말해준다고나 할까. 타이밍은 냄새와 ‘깔’로 구별하다 당연히 이탈리아 식당의 주인공도 파스타다. 파스타라고 해서 스파게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스파게티 없는 식당이 더 많다. 집에서 대충 삶아 먹을 수 있는 ‘민중의 끼니’를 일부러 식당까지 와서 사먹는 경우는 드물기 마련이다. 링귀네(영화 ‘라타투이’의 주인공 이름은 바로 여기서 가져왔다), 탈리아텔레, 파파르델레, 라자네테, 가르가넬리, 리가토니 … 밤하늘의 별만큼 많은 종류의 파스타가 뜨거운 솥단지 안에서 익는다. 주방이 솥단지처럼 후끈 달아오르는 저녁 때가 되면, 나는 바짝 긴장했다. 성질 나쁜 주방장이 국수가락을 휙휙 던지면서 신경질을 내곤 했기 때문이다. 그는 흥분하면 음식 재료를 던지는 못된 버릇이 있었는데, 묘하게도 꼭 파스타였다. 버려도 비싸지 않고, 뺨이나 머리통에 맞아도 기분이 더러워지는 것 빼곤 다치지는 않기 때문이었을 게다. 파스타 솥에서 저마다 익어가는 파스타가 잘 익었는지 판단하는 법은 독특하다. 누군가는, 타일 붙인 벽에 던져 보거나(타일이 아니면 어떡하지?) 가운데를 잘라보아 하얀 심이 도드라지면 된다거나(맞는 말이지만 미적거리는 그 순간 팬이 날아와 머리통을 강타할 걸?), 타이머를 정확히 맞춰놓으라(아니, 동시에 아홉 개가 울려대면 뭐가 뭔지 어떻게 알지?)고 하는데, 다 틀린 말이다. 파스타가 익는 타이밍은 냄새와 ‘깔’로 구별한다. 파스타가 잘 익으면 마치 복숭아가 물렁하게 익어 향기를 뿜듯 구수한 냄새를 풍긴다. 아홉 개 파스타 구멍에 제각각 다른 파스타가 들어가 있으면 더 명확해진다. 곡물이 제대로 익어 침을 질질 흘리게 만드는 그 냄새! 그것이 바로 파스타가 다 삶아졌을 때의 ‘향기’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정확하지 않다. 바로 눈이야말로 파스타가 ‘프론토’(준비됐어) 상태임을 알려준다. ‘깔’이란 색깔이거나 때깔이다. 뜨거운 소금물을 빨아들여 적당히 통통해진 표면이 부풀어오르면 미끈한 자태로 변하게 되는데, 바로 그때가 ‘타이밍’이다. 팬으로 옮겨 뜨겁게 달구어진 올리브유를 뒤집어쓰고 달콤한 마늘향에 몸을 두어 번 굴리면 마침내 기막힌 시칠리아의 파스타가 탄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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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찾아간 이탈리아 볼로냐 지방의 한 레스토랑에서 해물파스타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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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 주방의 분주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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