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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1.14 18:51 수정 : 2007.11.17 14:16

오미자는 9월에 붉게 익는다. (문경시청 제공)

[매거진 Esc] 허시명의 알코올 트래블
대형 주류회사와 명인들 제치고 전국 술 품평회 휩쓴 남원의 황진이주

올해는 우리 술의 역사에서 의미 있는 해다. 맥이 끊겼던 전국 술 품평회가 잇달아 열렸기 때문이다. 지방 국세청별 예선을 거쳐 올라온 60종의 술을 두고 국세청은 서울 아현동 국세청기술연구소에서 8월31일에 본선 심사를 가졌고, 도별 예심을 거쳐 올라온 79종의 술을 두고 농림부는 충주 세계술문화박물관에서 지난달 24일 본선 심사를 가졌다.

물에 떨어진 산수유 열매.
황진이주를 빚기 위해 고두밥에 누룩을 넣어 발효시키고 있다.


오미자가 가장 강한 맛을 내는 술

심사결과 가장 큰 영광을 차지한 술은 전북 남원의 ‘황진이주’였다. ‘황진이주’는 국세청 심사의 약주 부문에서 금상을 받고, 농림부 심사에서는 출품작 중에서 최고점수를 받아 대상을 거머쥐었다. 게다가 농림부 대회에서는 외국인 심사위원 8명이 선정하는 인기상까지 차지했다.

황진이주가 두 대회를 휩쓴 건 뜻밖이었다. ‘황진이주’는 고작해야 남원의 농업회사법인 ‘참본’이라는 신생 회사에서 지난해 드라마 <황진이>의 상표권을 사들여 만든 술이다. 무형문화재와 명인과 대형주류회사에서 만든 내로라하는 술들을 제치고 최고상을 거머쥐었으니 심사위원들조차 놀랄 일이었다. 도대체 황진이주가 어떤 맛이기에, 국세청 약주 부문 10명, 농림부 60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던 것일까?

오미자의 맛과 색을 추출하고 있다.
농림부에서 개최한 술 품평회장에서.
광한루가 있는 남원으로 황진이주를 만나러 갔다. 남원의 주인은 춘향이인데, 황진이주가 터를 잡았으니 눈칫밥깨나 먹었을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큰 상을 받은 뒤로 지역 공무원들로부터 “이왕이면 춘향이로 이름 짓지 그랬냐”는 말을 듣는다고 부사장 양석호씨가 말했다.

황진이주.
남원시 노암동 농공단지 안에 농업회사법인 참본이 자리 잡고 있었다. 쌀과 누룩으로 빚은 약주에 복분자 와인을 결합시켜 ‘참복분자주’를 만들고, 백세주 바람이 불 때에 ‘강쇠주’를 내놓아 남쪽의 약주 시장을 공략했던 회사였다. 지난해 8월에는 드라마 <주몽>의 상표권을 사들여 복분자주 ‘주몽’을 내놓고, 이어 지난해 10월에 드라마 <황진이>의 상표권을 사들여 ‘황진이주’를 내놓았다. 드라마 상표권이 드라마 인기와 함께하는 시한부 운명인데 어떻게 해서 그런 투자를 했냐고 부사장에게 묻자 “위험하긴 하지만 술을 연상시키는 이름들이라 과감하게 투자했습니다”라고 답했다.


황진이주는 오미자술이다. 쌀과 개량누룩과 오미자와 산수유를 넣어 빚으니, 쌀술이고 산수유술이고 오미자술이라고 해야 맞다. 하지만 오미자가 가장 강한 맛을 내니 오미자술이라고 하는 게 어울린다. 술은 오미자와 산수유의 붉은색이 스며들어 엷은 홍조를 띤다. 술 품평회에서는 색·향·맛 순서로 평가하는데, 이 불그레한 색이 심사위원들의 눈에 찼을 것이다. 유리잔보다는 백자잔에 술을 따르니 은은하니 빛이 더 곱다. 향기는 엷게 과일향이 느껴지는데 물에 우린 오미자의 가벼운 향도 뒤따랐다. 향은 색깔만큼이나 옅어 코끝에 오래 남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게 맛이다. 품평회에서 가장 높은 점수가 배정된 것도 맛이다. 한 모금 술을 머금고 혀를 굴려보니, 신맛이 목젖을 향해 곧게 뻗어나가는데, 단맛도 북을 치듯 ‘덩’하게 입천장을 울린다. 이 순간 발효된 곡물과 누룩 맛이 바지런하게 혀 밑에 깔린다. 단맛이 강한 듯한데, 신맛이 끝까지 뒤따라오고, 곡물 맛이 고소하게 출렁거린다. 맛이 강한 편인데도 조화를 잘 이룬다.

2007년 술맛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

허시명의 알코올 트래블
황진이주의 술맛은 누구의 입맛에 맞춘 거냐고 물었더니, 참본의 전무 이강범씨라고 했다. 그이는 “작고한 선임 공장장인 김영수 씨가 만들어놓은 술을 이어받아 빚고 있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하지만 빚을 때마다 달라지는 게 술맛이다. 이강범 전무의 경력이 궁금해 물으니, 큰 음료회사에서 27년 동안이나 소비자의 입맛을 연구했단다. 황진이주가 심사위원들을 사로잡았던 것은, 그의 대중적인 감각이 뒷받침된 것이었다. 하지만 일등공신은 오미자와 쌀의 만남이다. 국세청 심사에서 술 분석을 맡았던 한 연구원이 지나가는 말로 “오미자가 우리 술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라고 했던 그 말이, 내 귀에 쏙 들어와 떠나질 않는다. 나는 곧잘 우리 술을 평할 때 “단맛·신맛·쓴만·짠맛·매운맛, 오미가 다 들어 있어요”라고 말하는데 그 말과 절묘하게 겹쳐 있어서다.

전국 술 품평회는 우리 술의 현주소를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리다. 우리 술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우리 입맛은 또 어디에 사로잡혀 있는지, 알 수 있는 가늠자 노릇을 한다. 황진이주를 맛보면 2007년 이 시대의 술맛 트렌드가 읽힌다.

허시명 여행작가·술품평가 twojob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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