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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자는 9월에 붉게 익는다. (문경시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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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허시명의 알코올 트래블
대형 주류회사와 명인들 제치고 전국 술 품평회 휩쓴 남원의 황진이주
올해는 우리 술의 역사에서 의미 있는 해다. 맥이 끊겼던 전국 술 품평회가 잇달아 열렸기 때문이다. 지방 국세청별 예선을 거쳐 올라온 60종의 술을 두고 국세청은 서울 아현동 국세청기술연구소에서 8월31일에 본선 심사를 가졌고, 도별 예심을 거쳐 올라온 79종의 술을 두고 농림부는 충주 세계술문화박물관에서 지난달 24일 본선 심사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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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떨어진 산수유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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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주를 빚기 위해 고두밥에 누룩을 넣어 발효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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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자가 가장 강한 맛을 내는 술 심사결과 가장 큰 영광을 차지한 술은 전북 남원의 ‘황진이주’였다. ‘황진이주’는 국세청 심사의 약주 부문에서 금상을 받고, 농림부 심사에서는 출품작 중에서 최고점수를 받아 대상을 거머쥐었다. 게다가 농림부 대회에서는 외국인 심사위원 8명이 선정하는 인기상까지 차지했다. 황진이주가 두 대회를 휩쓴 건 뜻밖이었다. ‘황진이주’는 고작해야 남원의 농업회사법인 ‘참본’이라는 신생 회사에서 지난해 드라마 <황진이>의 상표권을 사들여 만든 술이다. 무형문화재와 명인과 대형주류회사에서 만든 내로라하는 술들을 제치고 최고상을 거머쥐었으니 심사위원들조차 놀랄 일이었다. 도대체 황진이주가 어떤 맛이기에, 국세청 약주 부문 10명, 농림부 60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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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자의 맛과 색을 추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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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부에서 개최한 술 품평회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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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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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주는 오미자술이다. 쌀과 개량누룩과 오미자와 산수유를 넣어 빚으니, 쌀술이고 산수유술이고 오미자술이라고 해야 맞다. 하지만 오미자가 가장 강한 맛을 내니 오미자술이라고 하는 게 어울린다. 술은 오미자와 산수유의 붉은색이 스며들어 엷은 홍조를 띤다. 술 품평회에서는 색·향·맛 순서로 평가하는데, 이 불그레한 색이 심사위원들의 눈에 찼을 것이다. 유리잔보다는 백자잔에 술을 따르니 은은하니 빛이 더 곱다. 향기는 엷게 과일향이 느껴지는데 물에 우린 오미자의 가벼운 향도 뒤따랐다. 향은 색깔만큼이나 옅어 코끝에 오래 남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게 맛이다. 품평회에서 가장 높은 점수가 배정된 것도 맛이다. 한 모금 술을 머금고 혀를 굴려보니, 신맛이 목젖을 향해 곧게 뻗어나가는데, 단맛도 북을 치듯 ‘덩’하게 입천장을 울린다. 이 순간 발효된 곡물과 누룩 맛이 바지런하게 혀 밑에 깔린다. 단맛이 강한 듯한데, 신맛이 끝까지 뒤따라오고, 곡물 맛이 고소하게 출렁거린다. 맛이 강한 편인데도 조화를 잘 이룬다. 2007년 술맛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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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명의 알코올 트래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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