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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제품’ 개봉 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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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대통령 제품’ 개봉 박두!
문제. 차지철, 백기완, 김두한, 김영삼의 공통점은 □이다. 각자의 이력을 살펴보자. 차지철은 육군 장교로 5·16쿠데타에 참여한 ‘정치군인’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이었으나 김재규의 총에 맞아 숨졌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을 보면 아직도 ‘민중후보’란 단어가 떠오른다. 그는 오랫동안 통일운동에 헌신했고 1987년과 1992년 대선에 출마했다. 김두한은 전설의 싸움꾼. 김영삼 전 대통령은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시대를 대표한 정치인이다. 민주주의는 재미있는 제도이다. 전혀 무관한 사람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은다. 1967년 6월8일 치러진 7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그 4명의 경우처럼. 이들 모두 7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차지철은 민주공화당, 김영삼·김두한은 신민당, 백기완은 민주당 공천을 받았다. 이념과 살아온 길은 달랐지만, 이들 모두 유권자들에게 “나를 뽑아 달라”고 호소했다. 따지고 보면 선거는 일반 마케팅과 다를 바 없다. 판매할 제품은 ‘후보자’이고 판매지역인 시장은 ‘지역구’이다. 판매 대상인 소비자는 ‘유권자’이고 제조업자는 ‘정당’이다. (<선거마케팅전략> 최동만·신강균) ‘대통령 제품 구매일’이 27일 앞으로 다가왔다. “쇼를 하라”는 요새 광고 문구처럼, 여러 ‘제조업체’들이 자신들의 상품을 팔기 위해 ‘쇼’를 하고 있다. 라이벌 제품에 대해서 “모양은 좋지만 기능이 떨어진다”거나 “기능은 좋지만 디자인이 좋지 않다”는 헐뜯기도 오고간다. 소비자는 비싸도 좋으니 제발 질 좋은 상품을 사고 싶다. 일반 제품은 환불하거나 교체해주지만, ‘대통령 제품’은 한번 사면 5년 동안 무조건 써야 한다. 광고 문구를 살펴보는 것도 선택에 도움이 될 것 같다. 각각의 카피를 보고 상품들을 정확히 떠올렸다면 당신은 1등 소비자. ‘국민성공시대를 열겠습니다’‘차별 없는 성장, 가족행복시대를 열겠습니다’‘사람중심 진짜 경제’‘세상을 바꾸는 대통령’‘살아 있는 원칙’ …. 가장 멋지게 광고한 제조업체는 어디일까? 어느 상품 광고가 잘됐는지 스스로 점수를 매겨보는 것도 재밌는 놀이. 〈Esc〉가 정치광고의 세계를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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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후반 선관위 직원들이 리어카로 투표함을 나르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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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광고 50년간의 변천사 우리나라에 유권자로부터의 득표를 목적으로 하는 정치광고가 처음 나타난 것은 1948년 정부수립 이후이다. 50∼60년대의 정치광고는 특별한 기법 없이 정책과 이념을 긴 글로 설명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정부수립 당시 1공화국의 대통령과 부통령은 국회에서 뽑는 간선제였으므로 국민을 상대로 한 정치광고는 필요하지 않았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 vs ‘갈아봐야 별수 없다’ 2대(1952년) 대통령 선거 때부터 3대(1956년), 4대(1960년)까지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국회의원을 뽑았다. 집권 자유당과 야당인 민주당은 신문에 정치광고를 실었다. 그러나 이 당시 정치광고는 정책과 공약을 장황하게 나열하거나 슬로건이라고 보기 어려운 구호에 불과해 원시적인 수준이었다. 문맹률이 높은 것도 정치광고가 발전하는 데 제약이 됐다. 60년대까지도 문맹률이 높아 작대기 수로 정당과 후보자를 표시했다. 그래서 신문 등 매체를 통한 정치광고보다 장외유세가 발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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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대선에 출마한 박정희, 윤보선 후보의 선거 포스터. 민주공화당 로고에서 황소 그림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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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김두한, 차지철 후보의 선거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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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대선 전두환 후보의 선거공고. 5천여명의 선거인단 간접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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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대선에 등장한 노태우, 감영삼 후보의 만화 홍보물. 〈눈으로 보는 선거전 - 선거와 홍보〉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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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대통령, 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은 숭례문(남대문) 정면에도 이승만, 이기붕 후보의 선거 포스터를 붙였다. 요샌 불가능한 선거운동이다. 서울시립대학교 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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