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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1.21 21:15 수정 : 2007.11.25 15:12

일미절을 맞아 강족 남자들이 노래와 춤을 선보인다. 마을별로 대항전을 벌인다.

[매거진 Esc] 이상엽의 중국 서남 기행1
한족과 어울리면서도 고유신앙을 잃지 않은 그들의 일미절 풍경

중국 서남지역이 여행의 명소로 떠오른다. 중국 소수민족 문화의 창고였던 쿤밍, 리장 등 윈난성은 이미 ‘오리엔탈리즘’으로 곁눈질되는 관광지가 된 게 사실이다. 사진가 이상엽은 2004년부터 3년 동안 윈난성을 포함한 중국 서남지역을 여행하고 작업했다. 낭만·낯섦 등으로 채워진 타자적 시선을 경계하는 그의 여행기를 6회 동안 연재한다. 중국 주류 민족인 한족과 다른 독립적인 문화를 일궈 온 강족의 역사와 일상이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펼쳐진다.

민강 대협곡은 일반적인 기후와 다르다.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지만, 식물 생장이 가능한 5도 이상이 매년 300일 이상 지속된다.

중국 쓰촨성 원촨의 타오핑자이(桃坪寨)는 짙은 안개와 함께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았다. 민강 대협곡 지대에 자리한 이곳은 높은 산 때문에 해도 늦게 뜬다. 게다가 우리 계절 감각이라면 이제 늦가을쯤 되겠지만 오늘 이곳에서는 신년 축제 일미절(日美節)이 열린다. 매년 음력 10월1일은 이곳 주민들인 강족(羌族)에게 1월1일이다. 식물의 생장이 가능한 섭씨 5도 이상이 매년 300일 이상 지속돼 농번기와 농한기의 개념도 없다. 하지만 척박한 산간지대에서 산비탈을 깎아 밭농사를 지으며 양을 키우는 강족들에게 이날만큼은 한해 농사의 고단함을 풀어버리는 명절이다. 일미절 행사가 열리는 타오핑자이 공터로 협곡 둘레 9개 마을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저마다 아름답게 수놓인 옷을 입고 춤과 노래를 뽐낼 예정이다.

망루가 특색인 강족의 마을 도평채. 마을 전체가 돌로 만든 일종의 요새 역할도 겸한다.
음력 10월1일이 강족에겐 1월1일


드디어 행사장 한쪽에서 ‘둥~둥~둥’ 하고 북소리가 울려퍼졌다. 나무 들것에 올려진 양 한마리가 보인다. 오늘 제사에 오를 불쌍한 녀석(!)이다. 행렬의 맨 앞에는 짐승의 털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은 무당이 있다. 마치 시베리아의 샤먼을 보는 듯하다. 수천년 전 강족이 칭하이성 일대의 유목민이었음을 떠올린다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는 행렬을 이끌고 흰돌이 놓인 탑으로 가 일미절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제사를 주관했다. 오랫동안 한족(漢族)들과 어울려 살았는데도 고유 신앙을 잃지 않은 것이 놀랍다.

오래전 고대 강족은 쓰촨·윈난·구이저우 등 중국 서남 지역으로 퍼져나갔고 수많은 민족공동체들을 만들었다. 하지만 강족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가진 이들은 이제 민강 대협곡에 13만명, 중국 전역에 20만명 정도로 중국 안에서도 작은 소수민족일 뿐이다. 특히 명·청대 개토귀류(지역 토관을 몰아내고 중앙이 임명한 유관으로 대체하는 제도)로 인해 자치를 박탈당하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그들만의 고속(古俗)을 유지하며 산다는 것을 이곳 타오핑자이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타오핑자이에서처럼 이곳 민강 대협곡에 흩어져 사는 강족을 금세 알아보는 것은 마을마다 치솟은 망루 때문이다.

사자를 앞세운 강족 용사들. 총을 들고 그들의 용맹을 과시한다.
돌과 진흙을 이용해 양 30미터 이상 쌓아 올린 망루는 주거지이자 방어시설이다. 1층은 가축들의 공간이고 사다리를 이용해 2층으로 올라가면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부엌이자 거실이다. 그 위로는 개별 생활공간으로 보통 4층에서 5층 정도로 망루는 건축됐다. 이러한 망루형 집들은 보통 120가구 정도로 구성되는 자이지(寨子)를 그물처럼 연결한다. 특히 망루형 집은 토사(마을 지도자)의 집들로 타오핑자이에는 1천년 정도 된 망루가 두채 남아 있었다. 멀리서 보면 마치 돌로 지은 거대한 성채를 보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집들은 모두 지붕 가장 높은 곳에 흰돌을 올려놓았다. 바로 강족의 상징이다.

일미절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마을별로 나서는 춤과 노래의 대항전이다. 남녀 모두 강족의 고유복장을 입고 나왔지만 마을별로 고유한 색상의 옷을 입었다. 노인부터 젊은이까지 단아하게 차려입은 여인들이 노래를 부르면 남자들은 원을 그리며 격렬하게 춤을 춘다. 그리고 한데 어울려 마을의 결속을 보여준다. 이렇게 마을마다 돌아가며 솜씨를 뽐내다가 모든 마을의 사람들이 한바탕 난장을 벌이면서 일미절의 행사를 막을 내렸다.

양가죽으로 만든 구아구아를 입은 강족 노인. 머리는 린넨천으로 두른다. 옛 유목민의 전통이다.
오늘 행사에 참여했던 한 마을 사람들을 좇아나섰다.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 이름은 로보자이(蘿卜寨)로, 마을 특산의 붉은무 이름이 로보란다. 타오핑자이에서 약 40㎞ 떨어진 산상마을 로보자이는 1900m 산 꼭대기에 있었다. 이곳에서는 민강의 대협곡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그냥 지나치는 여행자의 눈에 로보자이는 너무나 아름답고 풍요로운 마을처럼 보이지만 특유의 물 부족과 일년 내내 농사를 지어야 먹고살 만큼 궁벽하기도 하다. 일미절이 나흘 연휴지만 오늘도 아이부터 마을 사람 모두는 로보 수확에 여념이 없다. 그나마 이곳은 정부로부터 문화재급의 전통마을로 인정받아 입장료를 받지만 관광객은 찾아보기 어렵다. 베이징에서 왔다는 문화재 관리인 주광량(朱光亮·62) 선생은 “이들의 언어와 풍습은 하루가 다르게 사라진다. 하지만 그것을 기록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이 적다. 나름대로 문화구를 만들어 보존하려 하지만 그도 쉬운 것은 아니다”라고 한다.
거친 환경 속에서 주식으로 농사짓는 것이 옥수수이다. 연중 내내 농사를 짓지만 그리 풍요롭진 못하다.

‘강저 역사공동체’를 건설했던 곳

중국 서남 지역인 쓰촨·윈난·구이저우는 고대 강족들이 중원과 구별되는 ‘강저 역사공동체’(저족은 강족과 한족에 흡수되어 오늘날에는 사라졌다)를 건설했던 곳이다. 윈난의 대리국 이후 더 이상 국가를 건설하지 못했지만, 나름 자신들만의 문화를 보존하며 살아왔다. 그것이 오늘날 세계화와 민족통합이라는 흐름 속에 거세게 흔들린다. 이제 나의 서남 여행은 거친 풍광과 자연의 도전 앞에서 민족의 다양성을 유지하며 살아온 사람들 곁으로 간다. 기대와 호기심만으로 찾는다면 분명 실망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을 함께 살아가는 이웃의 자세라면 그들은 분명 마음을 열고 나를 맞이하리라. 기대된다.

쓰촨성 원촨(중국)/사진·글 이상엽 사진가


윈난성 여행 쪽지

양고기 샤브샤브 만찬을

중국 원촨 지도
◎윈난성의 입구는 청두(성도)다. 인천에서 청두까지 아시아나항공, 중국국제항공 등이 운항한다. 할인항공권을 구입할 경우 왕복 30만~70만원(세금 제외)이 든다. 4시간15분 걸린다.

◎청두에서 원촨(汶川)으로 가는 길은 민강을 따라 이어지는 대협곡이라 도로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 게다가 주자이거우로 가는 버스와 민강 수력발전소 건설에 동원된 트럭까지 몰려들어 정체마저 생긴다. 약 4시간에서 5시간 정도 걸린다. 청두에서 원촨까지 버스비는 한사람에 35위안(보험1위안 포함)이다. 원촨에 도착하면 카이이(凱逸)호텔을 추천한다. 깔끔하며 쾌적한 객실이 마음에 든다. 2인실이 하루 280위안이며 아침식사를 준다. 단 식단이 조금 부실하다.

◎원촨은 청두, 주자이거우, 서부 마얼캉으로 가는 교통의 요지이며 강족의 전통 마을들을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망루와 다양한 볼거리가 많은 타오핑자이(桃坪寨·입장료 60위안, 20분 택시비 편도 50위안), 민강 대협곡을 볼 수 있는 고도 1900m의 산상마을 로보자이(蘿卜寨·입장료 50위안, 20분 택시비 편도 60위안), 상업화되지 않은 전통 강족 마을인 창펑자이(羌峰寨·입장료 없음, 50분 택시비 편도 70위안) 등이 있다. 매년 음력 6월6일은 제산회(祭山會)가 있고, 음력 10월1일은 신년 축제인 일미절(日美節)이 있다. 하루의 힘든 여행을 마친 이들에게 추천하는 만찬은 역시 양고기 훠궈(火鍋)이다. 우리식으로 보면 샤브샤브다. 강족들이 키우는 양고기는 매우 신선하고 맛있다. 또한 습한 고장에서 피를 맑게 하는 데는 고추와 산초 등이 들어가 있는 매운 육수가 최고다. 원촨 시내에는 훠궈집들이 많고, 깔끔한 곳이라도 1인 50위안 정도면 충분하다.


삼성퇴의 비밀

고촉국 유물은 중국인이 유대인 후손이라는 증거?

고촉국 유물은 중국인이 유대인 후손이라는 증거?
중국 쓰촨성 청두의 북쪽, 광한의 평원에 있는 남흥진 일대에 솟은 둔덕 세개를 주민들은 삼성퇴라고 했다. 이 언덕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지만 아주 오랜 옛날 고촉국(古蜀國) 시대부터라 했다. 이곳에서 중국 현대 고고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가 발견됐다. 지금으로부터 3600년 전에 만들어진 정교한 청동기와 금제 유물들이 무더기로 쏟아진 것이다. 특히 이 청동제 유물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청동 두상들이다. 그런데 이 두상들의 얼굴이 특이하다. 큰 눈과 높은 코, 두드러지는 광대뼈 등은 도저히 오늘의 중국인들을 떠올릴 수 없다. 과연 이들은 누구인가? 과연 이들은 누구였기에 하상(夏商) 교체기의 황하 문명에 버금가는 청동기 문화를 이룩한 것일까?

이런 미스터리에 가장 파격적인 이론을 펼친 이는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소삼(蘇三)이라는 작가다. 그는 <삼성퇴 문화 대추측>이라는 책을 통해 삼성퇴는 메소포타미아와 유대 문명에 속하며, 중국에 온 유대인들은 중국의 하·상·주의 문명을 형성했고, 중국인들은 바로 유대인들의 후손이라고 했다. 작가의 상상력이 파격적이지만 삼성퇴에서 발견된 상당한 유물들이 중원의 문명과는 달리 중동지역에 기원을 둔 것이 꽤 있기 때문에 가능한 추론이기도 하다. 하긴 삼성퇴의 주인공들이 외계인이라는 주장보다는 꽤 학구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가장 유력한 이론은 삼성퇴인들은 강족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이들이 5천년 전 민강을 따라 평원지역으로 들어와 다민족 국가 고촉국 문명을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그들은 흔히 서남 실크로드라고 하는 운남-버마-인도로 통하는 길을 통해 문명 교류를 이어갔고 드디어 삼성퇴에서 발굴된 고도의 청동기 문명을 일으켰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 실제 삼성퇴에서는 청동기와 더불어 인도 해안지역이 원산인 장식용 조개껍질과 아시아 코끼리의 상아 등도 함께 발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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