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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1.21 22:09 수정 : 2007.11.21 22:09

탁현민의 말달리자 / How old are you?

[매거진 Esc]탁현민의 말달리자

공연연출일로 외국에 갔을 때다. 한국에서 하는 공연과 미국에서 하는 공연은 다른 점이 많지만, 가장 확연한 차이는 스태프였다. 한국에서는 준비하는 과정이 좀 지체되더라도 큰 무리 없이 현장에서 합의가 되는데, 미국 스태프는 노조와 협의된 작업 계획에서 조금만 달라지더라도 못 하겠다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소위 ‘곤조’를 부리는 것이다.

담당자와 힘든 대화를 나누다가-미국 욕이야 센 걸로 몇가지 알고는 있었지만 욕하고 끝낼 일이 아니기에 일단 가능한 아는 단어를 조합해 차근차근 말했다. 그러나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하는 스태프의 태도에 결국 분을 못 참고 뭐라 한마디 해야겠는데 딱히 생각나는 말은 없고, 그러다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야 너 How old are you?”(물론 너 몇 살이세요,가 아니라 너 몇 살 처먹었냐? 는 뉘앙스로) 순간 말을 한 나도 당황스러웠지만, 그 말을 들은 미국 스태프의 표정은 더욱 압권이었다. ‘아니 이 동양인이 미쳤나?’ 싶은 표정으로 날 보는 게 아닌가?

감정이 격한 상황에서, 물론 주먹이 나가는 것보다야 욕을 하는 게 나을지 모르겠다. 아니 욕을 하는 것보다는 나이를 들먹이며 상대방의 양해를 강제(?)하는 것이 현명한 도리인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몇살 더 (처)먹은 게 뭐 그리 자랑스러운 일일까. ‘가장 완벽한 관계는 입장의 동일함을 갖추는 것’이다. 가장 완벽한 대화 역시 마찬가지, 상대의 나이를 비롯하여 모든 처지에 대해 충분한 이해와 동의를 갖춘 대화여야 마땅하다. 돌이켜보면 정말 대우받아야 할 나이나 인품의 소유자들은 결코 나이를 들먹이는 법이 없었는데, 꼭 나이도 얼마 안(처)먹은 사람들일수록 줄을 세우려 한다. 보아라, 누구도, 몇해 더 살았다는 이유로 내 사정을 이해해주거나 설득당하지 않더라. 대화 중에 나이를 들먹였다가는 원하는 것도 얻지 못할 뿐 아니라 미친놈 취급을 받는다는 생생한 고백. 참고들 하시라.

탁현민 한양대 문화콘텐츠 전공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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