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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1.21 22:21 수정 : 2007.11.21 22:21

송이송이 포르치니의 계절, 망태기 할아버지를 잡아라

[매거진 Esc] 박찬일의 ‘시칠리아 태양의 요리’
11~12월에 거의 모든 메뉴를 점령하는 식재료, 이탈리아 사람들의 열광

주방이란 일찍이 앙투안 카렘(근대 프랑스요리의 선구자) 이후 남성호르몬이 불끈거리는 곳으로 변한 지 오래다.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이탈리아 요리사들에게 여자 요리사란 그저 샐러드거리를 다듬거나 주방장에게 알랑방귀나 뀌는 존재로 비치곤 한다. 엉뚱하게도 피사대학에서 고고인류학을 전공한 내 주방장 주세페는 먹물답게 페미니스트 흉내를 내곤 했는데, 실상은 그렇지도 못했다. 한번은 최고의 여성 요리사들을 선정한 <감베로 로소>(유명 미식잡지)를 보여줬더니, 픽 웃으며 손바닥을 두어 번 까뒤집는 시늉을 보였다. 별 볼일 없다는 이탈리아식 제스처다. 그가 연이어 입술을 실룩이며 고개를 외로 꼬는 모양이 ‘그까짓 여자들’이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주방장의 ‘불쇼’가 무서워라

다행히 그는 두들겨 패는 짓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언어폭력은 대단했는데, 내게도 여러번 주방문을 열어주며 가식적인 웃음과 함께 ‘아리베데르치’라고 말했다. ‘안녕’이란 뜻이다. 차라리 개자식 운운하는 게 낫지 이게 더 무섭다는 건 서양인들을 겪어본 사람들은 안다. 물론 ‘××’로 시작하는 욕이 빠지지는 않는다. 이건 부주방장 뻬뻬의 몫이다. “오홋 ××, 그 염병할 호박을 왜 삶아두지 않았느냐고. 이 불어터진 스파게티 같은 자식아.” 나야 뇌 속 통역기를 통해 듣는 욕이니 그다지 기분이 더럽지 않았는데, 다른 녀석들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걸 보면 꽤나 치욕스러운 욕인가 보다. 한 녀석은 그 길로 앞치마를 주욱 찢고는 두 배로 욕을 되갚아주곤 집으로 가버렸으니까. 물론 저녁에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물론 폭력도 난무한다. 나야 축구장에서 대마초에 취한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엉덩이를 실컷 걷어차여 본 것 말고는 그다지 겪지 않았지만, 군대 시절보다 지독한 폭력에 맞닥뜨리곤 했다. 뒤통수를 국자로 때리거나 등판을 솥뚜껑 같은 손으로 후려치는 정도야 양반이다. 몸에 털이 많은 이탈리아 요리사 녀석들은 종종 벌어지는 ‘불쇼’가 가장 무서운 모양이다. 토스카나의 한 작은 식당에서 일할 때 겪었던 일이다. 주방장이 대드는 부주방장의 조리복에 그라파(독한 포도증류주)를 붓고 토치램프를 들이대는 식의 협박을 목격하기도 했다. 정말 그 부주방장이 재빨리 부엌 뒷문으로 도망가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나중에 부주방장에게 물었더니 대답이 그럴 만했다. “그 양반, 자기 마누라 치마에도 똑같은 짓을 한 사람이라구.”

오른쪽과 위쪽에 송이처럼 생긴 것이 포르치니.
비좁은 주방에서 화끈한 오븐과 숯 그릴, 지글거리는 튀김솥을 껴안고 예닐곱명의 혈기 방장한 20대들이 북적거리다 보면 이렇게 싸움이 나고 폭력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저, 파스타 좀 얼른 삶아 주시겠어요? 샐러드는 다 무치셨으면 접시 위에 올려놔 주세요. 벌써 20분이나 늦었거든요.”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실제 언어는 이렇게 된다. “야, ××. 파스타 아직도 안 익었어? 이런 젠장. 다들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그 썩을 샐러드 아직도 무치고 있는 ××는 당장 그만두란 말이야, 20분 동안 텃밭에서 샐러드 키우고 있냐고, ××.” 평화로웠던 주방이란 내 경험으론 그저 망해가기 직전의 시칠리아 식당 말고는 보지 못했다. 아 물론 그 식당에서도 욕설은 흔했다. 주방장이 손님과 싸우면서 내지르던 욕설이다. 이런 식이다. “그러니까 빌어먹을 스파게티가 너무 익었다 이거지? 스파게티를 내가 20년 삶았지만 그 따위 소리는 처음 들어봐, ××.”

11월이면 북부 피에몬테에서는 송로버섯 때문에 난리법석이 난다. 송로버섯 중에서도 최상급으로 치는 하얀 송로버섯 축제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최남단 시칠리아에서는 소박한 버섯 요리를 조용히 준비한다. 바로 한국의 송이버섯과 비슷한 포르치니 버섯이 주인공이다. 주방장이 새벽같이 나를 깨워 차에 태우곤 두어 시간을 달려 에트나산에 도착했다. 수시로 마그마를 뿜어내어 폐허처럼 변한 산간마을을 지나 산 중턱에 오르자 망태기를 멘 할아버지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막 산에서 따낸 포르치니를 수매하는 현장이었다. 마치 송이처럼 기막힌 향을 뿜는 포르치니들이 제각각의 모양대로 망태기에서 부려지고 중량을 달았다. 킬로그램당 우리 돈 1만5천원 정도. 산지라 턱없이 좋은 가격이다. 지역에서 모인 주방장들이 연신 서로 끌어안으며 얼굴을 비빈다. 포르치니를 사러 온 김에 친구 요리사들도 실컷 보는 만남의 광장으로 변했다.


최고의 맛은 포르치니 탈리아텔레

포르치니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거의 열광하는 식재료다. 말려서 일년 내내 먹을 수 있으며, 식당 매출을 올려주는 효자다. 특히 신선하게 요리할 수 있는 11월과 12월은 아예 거의 모든 메뉴가 포르치니로 점철된다. 포르치니 파스타 다섯 가지, 포르치니를 곁들인 양고기 그릴, 포르치니를 볶고 삶고 회쳐서 내는 각종 요리들 …. 그중 최고의 맛은 포르치니 탈리아텔레다. 탈리아텔레는 조금 넓적한, 달걀반죽 파스타의 이름이다. 우선 포르치니를 얇게 편으로 썰어 준비해 둔다. 팬에 버터와 올리브오일을 반씩 두르고 마늘 한쪽을 넣는다. 마늘이 익으면 꺼내 버리고, 포르치니를 볶는다. 탈리아텔레가 구수하게 삶아지면 팬에 넣고 국수 삶은 물 한 국자와 함께 잘 비비면 완성이다. 이 요리는 고난도의 어떤 기술도 필요 없다. 그저 최고로 신선한 포르치니를 장만하는 것이 비법이라면 비법이다. 주방장이 새벽같이 에트나산으로 차를 몰고 가던 길이 바로 요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박찬일 ‘뚜또베네’ 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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