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1.28 18:27
수정 : 2007.12.03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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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허에서 말들에게 물을 먹이고 집으로 돌아가는 유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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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이상엽의 중국 서남 기행2
랑무쓰 천장에 울고, 루얼가이 초원 풍경에 숨막히다
내 앞에는 지금 주검 한 구가 있다. 어제만 해도 멀쩡히 육신을 오롯이 갖추고 있었겠지만 지금은 백골만 남았다. 주변에는 고원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고 탈초(티베트 경전을 써놓은 깃발)는 미친 듯 나부낀다. 이미 뜯어 먹을 살점 하나 남지 않은 이 백골 위로 독수리와 까마귀가 맴을 돈다. 이곳은 쓰촨성과 간쑤성의 접경에 있는 랑무쓰 천장터. 신비로운(!) 오리엔탈리즘에 매료된 관광객들이 모여들어 사진을 찍어 공개하는 바람에 중국 정부로부터 관람 금지가 되어버린 ‘천장’(天葬)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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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무스 천장터. 인생의 의미를 묻는 백골 앞에서 내 대답은 아직 준비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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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믿을 수 없는 풍광이여!
하지만 내가 목격한 천장터는 끔찍하지도 살벌하지도 않다. 매장해도 썩지 않고, 땔감용 나무도 자랄 수 없는 이 4000m 고원에서 망자를 떠나보내는 그저 유일한 방법일 뿐이다. 그것이 신기해 오만 가지 해석을 붙이는 문명의 ‘말’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사위는 어두워지고 고원의 밤이 온다. 이제 백골만 남은 그이는 맷돌에 갈려 바람이 데려갈 것이다. 탈초에 쓰인 불경과 함께 말이다. 소리 없이 뺨을 타고 한 줄기 눈물이 흐른다. 백골은 묻는 듯했다. “인생은 무엇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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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3,500m 루얼까이 초원에서 만난 아이들. 아이들의 표정에 파인더가 눈부시다. 피사체가 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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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무쓰는 중원과 서남의 경계에 있다. 또한 옛 토번의 고향 땅이자 암도 티베트라고도 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초원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그곳으로 달려갔다. 이곳은 고도가 3500m에서 4000m를 넘나드는 꽤 높은 곳으로, 함께 간 일행 중 두 사람이 고산병으로 쓰러지기까지 했다. 이런! 뒤로 물러설 것이냐? 그냥 돌파할 것이냐? 양약과 풍선에 든 산소도 모자라 랑무쓰 스님이 특별 조제했다는 신비의 명약까지를 먹였다. 다행히 차도가 생겨 우리는 계속 전진했다.
간쑤성 란저우에서 쓰촨성 청두까지 이어지는 213번 국도를 따라 해발 4000m 간쑤성 경계를 넘었을 때 내 눈으로는 믿을 수 없는 풍광이 펼쳐졌다. 거대한 초원이었다. 도대체 이렇게 높은 곳에 이런 광대한 초원이 있다니. 푸른 초원에 검은 점과 하얀 점들이 흩어져 있다. 검은 점은 이곳에서 방목되는 야크이고 하얀 점은 양들이었다. 평생 수십 평의 자기 땅만 장만할 수 있다면 성공했다고 생각되는 문화와 수만, 수십만 평을 오가며 유목을 하는 사람들의 문화는 얼마나 멀리 있는 것일까? 자크 아탈리의 <호모 노마드>가 떠올랐다. “신인류의 대안은 노마드(유목민)의 세계에서 찾아야 한다. 그들은 불·언어·종교·민주주의·시장·예술 등 문명의 실마리가 되는 것들을 고안했다. 반면 정착민이 발명해 낸 것은 고작 국가와 세금, 그리고 감옥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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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도 티베트의 아침 풍광. 이곳이 중원과 서남을 가르는 경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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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티베트인(장족)으로 분류되지만 상당수가 고대 강저인들의 후예다. 상나라 시기 은허의 갑골문자에도 발견되는 강(羌)족과 저(氐)족은 예전에는 서융이라 알려졌던 사람들이다. 살던 곳은 황허(황하) 서쪽의 간쑤성 지역으로, 일부는 주나라에 협조해 은나라를 침공하기도 하며 중원으로 들어가 한족과 혼거하며 동화됐다. 그리고 일부는 중국 서남 방향으로 이동했다. 그들 중 일부는 이곳 루얼가이에 머물며 송첸캄포 시기에 토번의 일원이 되어 오늘날 티베트인의 일부가 됐다. 하지만 이들의 언어와 반농 반유목 습성에서 강족의 후예임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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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저우에서 청두 간 고속도로를 건설 중이다. 수천 년 동안 이곳은 오직 사람과 말들만이 오가던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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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허는 푸르렀으니
광막한 루얼가이 초원을 가로질러 황허와 만났다. 칭하이성에서 발원해 이곳 초원을 지나는 황허는 푸르렀다. 황허가 아니라 칭허(淸河)라 해야 옳겠다. 황허가 이곳을 지나면서 아홉 번을 굽이친다는 황허구곡 제일만을 바라봤다. 거대한 강줄기가 초원 위에서 춤을 춘다. 그 앞에는 하얀 불탑 촐톈이 서 있다. 너무도 압도적인 풍경에 숨이 막힌다. 그리고 곧 숙연해진다. 수천 년 전 이곳을 지나던 강저인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강 너머 무엇이 있나 궁금해하며 ‘구름의 남쪽’을 향해 계속 나갔다. 나도 그들을 따라나섰다. 다음 행선지는 윈난(운남)이다. 바람이 나를 데려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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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허구곡 제일만을 보기위해 이 산을 올라야 한다. 고산증이 나의 결심을 망설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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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촨성 루얼가이(중국)=글·사진 이상엽/사진가
〈영웅〉을 찍은 풍경의 영웅
매혹적인 주자이거우의 비췻빛 이미지
이제 애국주의로 무장한 장이머우(장예모) 감독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참으로 곤혹스런 일이지만, 그가 선택하는 영화의 배경은 참으로 놀라운 데가 있다. 그의 영화 <영웅>의 촬영배경이었던 주자이거우(구채구, 九寨構)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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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을 찍은 풍경의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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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떠올려 보자. 산 정상에 그림 같은 호수가 있고, 그 위에 정자가 있다. 그 안에는 장만위(장만옥)의 시체가 누워 있다. 그리고 곁에 연인이었던 량차오웨이(양조위)가 있고, 그를 죽이러 온 리롄제(이연걸)가 있다. 그 둘은 서로 바라보며 마음만으로 호수를 뛰어다니며 수많은 절세신공의 초식을 나눈다. 아마도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는 무협소설도 이렇게 표현하지 못하리라. 그들의 우아한 몸놀림은 전죽해 호수의 아름다운 풍광과 더불어 최고의 명장면을 연출한다.
‘상상 속의 자연 풍경’을 보여 주는 주자이거우는 1992년에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되었고, 중국에서도 처음으로 4A급의 풍경구로 지정되었다. “황산을 보고 나면 다른 산을 보지 않고, 주자이거우의 물을 보고 나면 다른 물을 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는데, 비췻빛의 영롱한 색을 띤 주자이거우의 물은 바닥에 가라앉은 오래된 고목들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믿기지 않는 풍광을 연출한다. 아마도 이곳을 본 이는 평생 그 이미지를 잊지 못할 것이다.
주자이거우는 청두에서 460㎞ 떨어져 있으며, 강족·장족들이 살고 있는 골짜기 안에 마을이 아홉 개가 있어 그런 이름을 얻었다. 총면적은 720㎢이며, 그중 52%가 빽빽한 원시림이다. 그 안에 봉우리, 골짜기, 호수, 폭포, 시내 등이 있고 100여 종의 식물과 희귀동물도 산다. 주요 풍경구는 ‘Y’자 모양을 띠는데 풍경구는 크게 수정(樹正), 일칙(日則), 즉사(則査) 세 골짜기로 이루어진다. 이 코스는 총 50㎞에 이르며 풍경구 내 무공해 셔틀버스가 돌아다닌다. 최고의 풍경은 가을이지만 우리네 금강산처럼 사철 모두 좋다. 입장료는 계절에 따라 변동하며 100~140위안, 셔틀버스 90위안으로 중국 내 입장료 중에서는 최고가를 자랑하는 곳이다. 표는 24시간 유효하며 이틀에 걸쳐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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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얼가이 여행쪽지
말을 타고 황허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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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얼가이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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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촨성의 서북쪽 루얼가이(若亐盖)현과 훙위안(紅原)현 일대에 펼쳐진 엄청난 크기의 초원지대를 루얼가이 대초원이라고 일컫는다. 1934~1036년 홍군의 대장정 루트이기도 하다. 이곳에 황하구곡 제일만과 들꽃으로 유명한 화후(花湖)도 있다.
◎ 루얼가이현은 대초원에 있는 작은 마을로 북쪽의 랑무쓰와 남쪽의 쑹판시로 가는 중심에 있다. 남쪽에서 북쪽 방향인 쓰촨성 청두에서 버스로 13시간(88위안), 쑹판에서 4시간(31위안)이며 북쪽인 랑무쓰에서 4시간 반(15위안)이 걸린다. 랑무쓰를 거치면 대도시 란저우와 시안으로 연결된다. 아바 자치주를 지나는 버스가 묵는 곳인 홍성빈관은 표준방이 40위안이며, 루얼가이 최고의 루얼가이빈관은 150위안 정도다. 대부분의 숙소에서 100위안 안팎이면 머물 수 있다.
◎ 루얼가이 초원에서 둘러볼 만한 곳은 화후인데, 여름에는 무수한 야생화가 초원을 가득 덮어 ‘꽃으로 가득 채워진 호수’ 같은 곳이다. 입장료는 20위안이다. 들머리에서 나무다리 트레일이 시작되는 곳까지의 거리가 멀어 말이나 오픈카를 이용하는 게 편하다. 말을 탈 경우는 80위안, 오픈카는 20위안이고 15분 정도 달리면 멋진 트레일과 너른 벌판의 화후가 나타난다.
◎ 5000㎞의 물길을 가진 황허는 간쑤성과 루얼가이를 거쳐 쓰촨으로 들어간다. 전망대에 올라가면 황허구곡 제일만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무계단을 만들어 놓아 올라가기 쉬워 보이지만 이곳은 고산지대라 그리 만만찮다. 말을 타고 정상까지 오를 수도 있다. 잘생긴 티베트 남자들이 인도한다.
◎ 초원지대에서 즐길 만한 별미는 역시 양고기 꼬치구이다. 신선한 양고기를 크게 조각내어 숯불에 구운 것에 소금·고춧가루·산초가루 등을 뿌려 맛을 낸다. 또한 차와 물·소금·야크버터를 섞은 수유차는 고지대에서 건강을 지키는 데 좋다. 처음 우리 뇌는 맛이 낯설어 거부하지만 익숙해지면 약간의 중독(!) 증세를 보일 정도로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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