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2.05 18:09
수정 : 2007.12.07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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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아에게 돈을 뜯겨도 노여워하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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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박찬일의 ‘시칠리아 태양의 요리’
거짓 표지판에 속아 들어간 음식점은 충분히 싸고 맛은 놀라웠으니
주방장 주세페가 자그마한 빵을 빚고 있다. 동그란 빵 사이에 상추를 깔고 작은 고기 조각과 방울토마토 썬 것, 구운 새끼양파를 얹었다. 어디서 많이 보던 모양이다. 이게 뭐야? 그는 씩 웃으며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맥도널드 몰라? 빅맥!” 주방 식구들이 파안대소했다. 오늘 저녁 미국 기자들이 방문한다는 전갈을 받았다. 로마에 있는 친구 주방장의 소개였다. “이 멀리 시칠리아까지 뭘 취재할 게 있다고….” 주세페는 못마땅한 듯 내뱉으면서도 뭔가 보여주고 싶어 했다. 피자와 미트볼 스파게티밖에 모르는 미국 놈들이 이탈리아를 알기나 해?
미국 기자들을 위한 ‘더 패러디 오브 빅맥’
결국 그날 저녁 메뉴에는 특별요리가 올라갔다. 영어로 번역하면 ‘리틀맥〓더 패러디 오브 빅맥’이었다. 패러디엔 원래 ‘조롱’이란 뜻이 있다. 홀과 통하는 쪽문 요리창을 통해서 미국 기자들의 반응을 보느라고 다들 난리였다. 덩치가 산만한 미국 기자들이 포크와 나이프로 밤톨만한 햄버거를 써느라 끙끙대는 꼴이 우스워 또 한번 주방이 뒤집어졌다. 주세페가 여기에 불을 질러 또 한번 웃느라 요리를 못할 지경이 됐다. “우린 코카콜라 안 판다고 해!”
프랑스 농부 조제 보베가 프랑스 남부의 미요라는 도시의 맥도널드를 트랙터로 밀어버린 이래 가장 통쾌한 조롱이었다. 사실 보베의 화끈한 트랙터 쇼가 양키들의 패스트푸드 산업의 유럽 진출에 경종을 울렸지만 원조는 이탈리아 사람들이었다. 1970년대에 로마 스페인광장 옆에 망한 옷가게를 인수한 맥도널드가 이탈리아 최초의 분점을 내자, 이탈리아의 언론인과 사회운동가들이 대형 집회를 연 사건이 있었다. 이 모임의 참가자들은 후일 ‘슬로푸드’라는 단체를 결성하고 지금도 활동한다. 한국에도 연락사무소가 있는 저명한 단체가 됐다.
그러나 이탈리아인들의 미국에 대한 태도는 이중성을 가졌다. 빅맥은 양키들이나 먹는 쓰레기음식으로 치부하지만, 코카콜라 없이 피자를 못 먹는 건 어느 나라 습관이냔 말이다. 부주방장 페페의 대꾸가 가관이다. “음, 그건 상호주의 같은 거야. 거, 곤란하게 묻지 말라고.” 상호주의? 뉴욕에 피자와 젤라토 기술이 건너가면서 로열티를 받았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는데 웬 상호주의일까. “대신 마피아가 있잖아. 피자집과 젤라토집들이 마피아에 세금을 바치지 않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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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역사서에 실린 마피아 조직의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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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아가 화장실 동전털이에 나섰다고?
아차, 마피아! 그렇다. 시칠리아는 오랫동안 뉴욕 마피아에 조직원을 공급했다. 패밀리에 대한 충성심은 시칠리아인의 오랜 전통이다. 뉴욕 마피아가 그 지독한 검속에도 꿋꿋이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어쩌면 조직을 우선시하는 시칠리아인의 전통이 남아서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시칠리아에는 지금도 뉴욕 마피아의 원조, 코사 노스트라가 있다. 코사 노스트라(Cosa Nostra, 우리들의 힘 또는 우리들의 것이란 의미)란 오래전 시칠리아의 지주계급에 대한 저항운동에서 출발했다. 수탈당하던 소작농들은 가족과 혈연을 중심으로 조직을 만들고 똘똘 뭉쳐 싸우기 시작했고, 범죄조직으로 변한 이후에도 시칠리아에 남아 있다. 그냥 남아 있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들을 수사하는 판사를 차와 함께 폭탄으로 날려버릴 정도다.
주방장에게 “이 마을에 누가 마피아 조직원이야?” 하고 물었더니 그는 입가에 식지를 갖다 대면서 소곤거렸다. “바로 … 내가 대장이지.” 옆에 있던 페페가 웃는 바람에 농담인 줄 알아챘지만, 그가 워낙 진지하게 연기하는 바람에 진짜인 줄 착각할 뻔했다. 사실 주세페의 말에 따르면 어느 도시나 마피아 조직원들이 있다고 한다. 가족 중심의 조직 구성이 마피아의 특성이라 평범하게 일하는 자영업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정육점 피에트로와 목공소 마르코, 생선가게 루카가 모두 조직원일 수 있다는 얘기다. 하나같이 연장(!)을 소지한 걸 보면 그럴 개연성이 농후하다.
마피아는 종종 공공기관을 접수해서 부정 수입을 올리는 걸 즐긴다. 마피아니까 당연하다. 옛날엔 산적처럼 길을 가로막고 통행세를 받았다고 하니까. 마을 한가운데에 공공화장실이 있다. 이따금 나도 이용했다. 중노인 둘이서 사용료를 받았다. 유료 화장실이 흔한 나라니까 별 생각 없이 돈을 냈는데, 화장실 근처에 써 있는 낙서에서 천기누설을 발견하고 말았다. “화장실을 지키고 있는 녀석이 마피아다!” 그들이 진짜 마피아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페페에게 물었더니 그저 “원래는 돈 내는 거 아니야”라고 간접 확인만 해주었을 뿐이다.
“곧 길이 뚫리니 요기라도 하시라”
나는 그들이 마피아가 아니길 빌었다. 낡은 가죽조끼와 ‘도리구치’ 모자를 쓴 그 노인네들의 행색은 마피아에 대한 환상을 박살내기에 충분했다. 마피아가 고작 화장실에서 동전이나 털어먹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마피아가 화장실 동전 털이에 나선 게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오랫동안 관광객의 호주머니를 턴 건 사실이다. 시칠리아에서 한적한 지방도로를 달리다가 ‘도로 보수 중, 길 없음’이라는 간판을 보게 된다. 예고 없는 공사에 분개하며 차를 돌리기도 애매한 곳에서 씩씩대다 보면 근처에 어김없이 식당과 바가 있다. 주인이 나와서 ‘곧 길이 뚫리니 우선 요기나 하고 가라’고 친절하게 안내한다. 다행히 음식은 맛있다. 시칠리아에 솜씨 없는 요리사는 없으니까. 충분히 배를 불리면 주인이 길이 뚫렸다고 또 친절하게 알려준다. 나가 보면 주인의 식구가 어수룩하게 표지판을 치우는 걸 보게 된다. 공사 흔적이 있을 리 없다. 당신은 마피아에 기금을 바친 셈이 된다. 그래도 노여워하지 말라. 음식값은 충분히 쌌고, 맛은 놀라울 지경이었을 테니까.
박찬일 뚜또베네 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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