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2.05 21:38
수정 : 2007.12.05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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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두성에서 바라 본 풍경. 진사강이 만든 거대한 협곡 풍경에 사진가는 해석은 커녕 그저 복사하기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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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이상엽의 중국 서남 기행 3 내 마음의 이상향을 찾아 샹거리라에서 리장까지
1933년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튼(1900~1954)은 장편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영국의 외교관과 동료 셋이 비행기를 타고 가던 중 연료가 떨어져 중국 서남의 눈 덮인 산악지역에 불시착하고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구조된다. 다음날 잠에서 깨어나자 너무도 아름다운 광경이 눈앞에 나타난다. 그들은 하얀 눈으로 덮인 산의 줄기, 눈부신 햇살, 짙은 색의 꽃들, 말과 양의 무리들, 사람들의 즐겁고 평화로운 삶을 체험한다. 그리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 뒤 세월이 흘러 다시금 그 지역을 찾아 나서지만 꿈같은 그곳을 찾아내지 못한다. 그저 그곳 사람들의 한마디 말만 기억하는데, 바로 “샹그릴라”(Shangrila)였다. 아! 샹그릴라! 그런데 전설 속의 이상향 샹그릴라는 현실이었다. 쓰촨과 티베트, 그리고 윈난이 만나는 4000m 고지에 위치한 샹거리라(香格里拉)현. 2002년까지는 중뎬이었지만 중국 정부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이곳 현 이름을 샹거리라로 바꿨단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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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장에서 석두성가는 길에서 만난 백수하. 자연이 석회암 테라스를 만들었다. 그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 관광객을 보며 중국의 관광붐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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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두성 마을의 아찔한 돌계단들
강족을 찾아 나선 나의 여정은 이제 윈난으로 들어섰다. 윈난 북부 샹거리라현. 힐튼이 본 아름다운 풍광은 간데없고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와 사람들로 북적이는 도시가 샹그릴라라니! 하지만 실망하기엔 이르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여행자의 기대를 채워줄 곳이 있다. 1679년 달라이라마 5세가 창건한 윈난 최대의 티베트 사원 쑹짠린쓰(松贊林寺)다.
그런데 사원으로 가는 길이 막혔다고 한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승려들이 시위를 벌여 중국 공안이 사원을 폐쇄했단다. 달라이라마를 추종하는 겔룩파 사원인 이곳은 늘 감시의 대상. 시위를 벌인 이들에게 중국 공안이 내린 벌은 사원 들머리를 막아 입장료 수입을 끊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도착했을 때 사원 들머리에 공안차가 서 있을 뿐 입장이 가능했다. 승려들이 백기를 든 것이다. 노동하지 않는 승려 처지에서 신도와 관광객이 없으면 당장 굶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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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그리라현의 송찬린쓰. 작은 포탈라라 불리는 겔룩파 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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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아찔한 108계단을 올라 고산의 가쁜 숨을 몰아쉬며 샹거리라현의 풍광을 마주했다. 푸른 하늘과 녹색의 대지가 아리도록 나의 눈을 찌른다. 하지만 뭔가 부자연스럽다. 맞은편 산허리에 티베트어와 한문으로 써놓은 샹거리라도 어색하다. 그저 샹그릴라는 낭만과 기대에 찬 여행객들의 상상일 뿐일까? 그 상상이 이제 관광상품으로 물화되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나는 다시 길을 떠났다. 3500m가 넘는 외길 비포장도로를 어렵게 넘는 미니버스 밑으로는 천길 낭떠러지가 기다리고 있다. 난간도 없는 도로에서 사고가 난다면 차라리 안전띠를 매지 않는 것이 편안히 저세상으로 가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버스를 내린 곳은 보산 석두성 마을. 다랑논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간이정류장에서 마을까지 가파르게 만들어진 돌계단을 30분쯤 내려가야 한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기와를 얹은 윈난 나시족의 전형적인 가옥들 사이로 난 좁은 골목을 요리조리 내려가면서 마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니하오’를 연발했다. 외부인의 출입이 거의 없는 곳인 듯 상당한 호의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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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두성으로 가는 길에 보산에서 만난 아이들이다. 웃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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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두성이 만들어진 것은 13세기로, 윈난 전체가 원나라 몽골인들에게 장악된 시기였다. 리장까지 쳐들어온 몽골군 앞에 나시족 두목 목(木)씨는 굴복했고, 이에 반발한 귀족들 중 일부가 자신의 가솔을 이끌고 진사강이 흐르는 보산 골짜기로 들어온 것이 석두성 마을의 시작이었다. 진사강이 흐르는 대협곡의 중턱에 위치한 석두성은 이름 그대로 돌출된 암반 위에 성을 건축했다. 들어가는 입구와 나가는 출구 둘밖에는 없고, 자연적으로 형성된 성채에 돌을 쌓아 보충을 했다. 이 정도면 웬만한 전투에서도 마을을 지켜낼 수 있지 않았을까? 현재 성 안 마을과 성 밖 마을을 합해 220가구 2천명 정도가 살고 있었다.
석두성 마을의 가장 중요한 경제는 밀과 보리농사다. 고도가 높아 쌀농사는 안 된다. 보산 꼭대기부터 진사강이 흐르는 협곡까지 거의 모두 다랑논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 옛날 간쑤(감숙)성에서 유목하던 강족들이 이곳에서는 완벽하게 농사꾼으로 변신한 것이다. 먼 산에서 바라보는 다랑논의 아름다움은 사진가의 넋을 빼 놓는다. 어떤 때는 산 너머에서 들어오는 실낱같은 광선에, 어떤 때는 뿌옇게 젖어 있는 운무에 다랑논은 선경을 빼다 놓은 듯한 느낌이다. 멀리서 보면 계단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한 계단이 사람 한 길을 넘는다. 커다란 돌을 다듬어 보를 쌓았기 때문에 무너질 염려도 없다. 지난 800년 동안 석두성 사람들이 만들어 온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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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두성 마을 남자들이 모여 지붕을 수리한다. 우리네 두레와 비슷한 조직이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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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어마한 노동력이 아름다움을 지탱한다
다랑논을 자세히 관찰하려고 내려던 중 한 부부가 포대 자루를 들고 진사강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두 시간 뒤, 그 부부가 다시 올라오고 있었다. 등에는 30킬로그램이 넘는 짐이 들렸다. 저 까마득히 보이는 진사강까지 내려가 배로 운반된 물건들을 지고 힘겹게 올라왔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일이라지만 인간적으로 고통스러울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이 실상 조금만 가까이서 관찰하면 어마어마한 인간의 노동력을 요구한다는 진실에 마주한다. 과연 이상향 샹그릴라는 존재했을까? 그저 외부자의 눈에 비친 허상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석두성 사람들은 행복했다. 자연은 인간이 노력한 만큼 돌려주었다. 그리고 그것에 사람들은 감사했다. 그들은 “도대체 아름다운 풍광에서 신선놀음하며 지내는 샹그릴라가 세상에 어디 있냐?”고 반문한다. 결국 우리가 찾아 헤맨 샹그릴라는 인간이 만든 인간의 땅이었던 것이다.
석두성을 떠나 나시족의 본거지이자 아름다운 세계문화유산 도시 리장으로 왔다. 중국 전역, 아니 전 세계에서 이상향을 찾아 몰려든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 인파 속을 흘러 다니며 내 마음의 샹그릴라를 떠올린다. 결국 그곳은 인간의 피와 땀과 눈물이 만들어낸 이상향이며, 가족이 살고 있는 내 집이 바로 샹그릴라였다.
윈난성 리장(중국)=글·사진 이상엽/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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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산 석두성의 전경. 돌출된 암반 위에 성을 만들고 사람이 산다. 방어개념의 요새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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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상형문자를…
오래 전 윈난으로 남하한 강족 후예 나시족의 ‘동파문’
나시족은 오래 전 윈난으로 남하한 강족의 후예들이다. 마사라 불렸지만 스스로 나시인이라 칭했다. 리장(여강)부터 티베트 접경인 옌징(차카롱)까지 진출해 소금을 두고 티베트인들과 경쟁했다. 리장 인근의 백사마을이 목씨의 근거지로 원대에 리장 고성을 건축했다. 리장은 성의 구조를 갖추었지만 정작 성(城)은 없다. 목씨가 성을 두르면 괴롭고 어렵다는 곤(困)자가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나시족에게는 독특한 종교가 있다. 바로 동파교다. 동파교는 샤머니즘의 하나로 고대 강족의 전통에서 온 것으로 보이지만 석가모니와 관세음보살, 도교, 천지산천과 수목 등을 믿었다. 시조는 정파십라다. 정파십라는 원래 라싸의 티베트 불교 승려로 1천년 전 투법대회에서 홍모파(카르마파)에 패한 뒤 중톈에 왔다. 이곳에서 동파교를 창립하고 상형문자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이 상형문자가 바로 동파문자로 그의 경전에 사용되었다. 동파문은 아직도 사용되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상형문자다. 리장의 거리를 걷다보면 동파문을 이용해 자신의 이름을 새긴 도장을 팔 수 있다. 현재까지 약 이천자 정도가 사용되고 있다. 동파문자는 1960년대까지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억압정책으로 사용이 억압되다가 리장을 중심으로 학교 수업 허용을 요구하는 운동이 일어났으며, 80년대에 이르러 동파문 신문과 서적이 발행되었다.
윈난성 리장(중국)=글 사진 이상엽/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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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북부 여행쪽지
로밍폰이 터지는 두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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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북부 리장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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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 북부의 리장(여강)에서부터 샹거리라(옛 중뎬)까지는 나시족의 영역이다. 이곳은 윈난이면서도 티베트 풍광을 지닌 고원지대다. 여행자들에게 꽤 두메라 불리는 곳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걸려오는 로밍폰이 터지고 작은 마을에서도 접시안테나를 통해 한국 드라마도 본다. 직접 찾기에는 어마어마한 공이 들지만 전파로는 이미 지구촌 한식구다. 오지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일찌감치 버리는 것이 좋다.
◎이 지역의 중심은 리장이다. 쿤밍(곤명)에서 비행기(420위안)가 있으며, 다리(대리)에서 북쪽으로 150㎞ 지점이다. 인구는 35만명이며 리장나시족자치현의 중심도시다. 세계적인 관광도시라 숙박시설은 매우 좋다. 호텔뿐 아니라 리장 옛 도심 안에 전통가옥을 이용한 여관(객잔)이 많다. 가격은 1인당 30위안 정도. 난방시설이 없어 전기장판과 이불을 사용한다. 석두성은 하루 두차례 마을버스가 있다. 다섯 시간 정도 걸린다. 숙박은 민박이다. 마을 촌장집을 주로 이용한다. 한국인에 대한 호의를 몸으로 체감할 수 있다. 샹거리라로 가는 비행기는 쿤밍(560위안, 매일)뿐 아니라 청두(목·일), 라싸(목·일) 등이 있다. 시내에는 최근 지어진 시설 좋은 호텔이 많다. 표준방 150위안 안팎. 방에는 산소통이 있다. 고산지대를 참기 힘든 여행객들을 위해 준비해 놓았다. 하지만 유료다. 동전을 사용한다.
◎그 밖에도 리장 인근의 옥룡설산 트레킹과 여인족 마을인 루구호도 추천한다. 리장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페가 있는데 주인이 한국 여자인 ‘벚꽃마을, 사쿠라카페’이다. <론리플래닛>과 영국 <비비시>(BBC) 방송에도 소개된 곳이며, 리장 밤경치를 즐기기에 최고다. 나시족의 유명한 전통음식으로 ‘리장경단’이 있다. 과거에 마방(말을 끌고 다니는 대상)들의 비상식량으로 썼던 리장경단은 단것과 짠것이 있으며, 수유차와 함께 마시면 좋다. 우리 입맛에 맞는 감자볶음과 감자부침도 흔히 만날 수 있다.
윈난성 리장=글·사진 이상엽/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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