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7.12.05 22:01 수정 : 2007.12.09 00:07

세 강이 모이는 나루터에 자리 잡은 삼강주막

[매거진 Esc] 허시명의 알코올 트래블
쓸쓸하게 빈집으로 방치됐던 조선시대의 마지막 주막은 부활하는가

날이 추워지니 따뜻한 아랫목이 그립다.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세대에겐 아랫목이라는 말도 온기를 잃었겠다. 나 또한 온돌방 아랫목을 1년에 한두 번 맛보는 정도랄까. 그래서 겨울여행에서는 외풍에 시달리더라도 장작불 지핀 아랫목이 있는 한옥 숙소를 물색한다. 몸을 누일 수 있는 곳은 못되지만, 그리운 온돌방 하나가 있다. 삼강주막의 온돌방이다. 삼강주막의 부엌엘 들어가면, ㄱ자형으로 꺾인 부뚜막이 있다. ㄱ자형으로 꺾인 중앙에서 군불을 지피면, 두 갈래진 방고래로 불길이 들어간다. 아궁이 하나로 방 두 개를 따뜻하게 만드는 흥미로운 아궁이다. 주모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주모를 사랑한 누군가가 짜준 집일 것이다.

주막 마당에 모닥불을 피우고, 모처럼 마을 사람들이 모였다.
옛 시대상 읽을 수 있는 건축자료

하지만 이제 그 아궁이를 지필 장작도 없고 주모도 없다. 겨울에 술이 얼까봐 부엌 안에 묻어둔 항아리도 비어 있다. 술항아리 위쪽의 벽에는 주모가 그어 놓은 금들이 계급장처럼 새겨져 있다. 삼강마을 나이 지긋한 촌로가 이 금은 내 금이고, 저 금은 뉘 금이라고 말한다. 주모가 외상값을 산해 놓은 것이다.

삼강(三江)주막은 세 개의 강줄기, 낙동강, 내성천, 금천이 만나는 곳에 자리 잡았다. 실제로는 내성천과 금천이 먼저 만나 1㎞쯤 동행하다가, 낙동강과 합류한다. 낙동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삼강나루터가 있고, 삼강주막이 있다. 삼강주막은 우리나라에 마지막 남은 조선시대 주막이었는데, 주모 유옥연씨가 2005년 89살로 세상을 떠나면서 빈집으로 남아 있다.

주모 없는 주막은 쓸쓸하고 스산하지만, 사라질 운명의 주막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 최근에 보호 조처가 취해졌다. 주막 앞에는 이런 내용이 적힌 팻말도 서 있다. “1900년경에 지은 이 주막은 규모는 작지만 그 기능에 충실한 집약적 평면 구성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건축 역사 자료로서 희소가치가 클 뿐 아니라, 옛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 의의를 간직하고 있어 2005년 12월에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3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주막 옆에는 500살 넘은 회화나무가 든든하게 서 있다. 그리고 강물이 예전처럼 흘러간다. 강물 위로 무정한 시멘트 다리만 칼바람처럼 건너고 있다.

주모는 간데없고, 마을 아낙네들이 배추적을 부치고 있다(왼쪽사진). 막걸리 한 잔의 행복. 아, 바로 이 맛이야(오른쪽사진).
여행작가들과 함께 지난겨울에 삼강주막을 찾아간 날, 삼강마을 주민들이 주막에 나와 우리 일행을 반겼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방안에 웃음소릴 가득 채운 채로, 주모가 그러했던 것처럼 배추적을 부치고 있었다. 노란 속배추에 밀가루를 엷게 묻혀, 기름 두른 번철에 기름 부어 고소하게 지지고 있었다. 배추는 흔하고 밀가루는 귀했는지, 밀가루가 한 겹 비닐막처럼 덮여 있을 뿐이다. 나는 주막의 온기라도 느껴보려고 신발을 벗고 방안으로 들어가, 웃음소리에 묻혔다. 동네 아주머니가 건넨 배추적을 아삭 소리 나게 베어 무니 입안에 배추의 달보드레한 맛이 번졌고, 그 배추를 채 끊어내기도 전에 막걸리 잔이 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갈증 난 사람처럼 벌컥벌컥 사발막걸리를 마시고, 손등으로 입술을 훔치며 내지른 감탄사란, 한국인만이 공감할 수 있는 맛이 아닐까.


동네 양조장에서 받아온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안주 한 점 들다(왼쪽사진). 막걸리에 안주로 두부 한 접시(오른쪽사진).
주막 마당에서는 삼강마을 노인들이 막걸리 잔을 돌렸다. 모두들 주막의 단골손님이었다. 그들이야말로 새로운 주모를 기다리는 사람들 같았다. 옛일이 되었지만, 우리의 술 문화의 특징 하나가 주막문화다. 조선시대에는 상업성을 띤 양조장이 없었다. 장터에, 나루터에, 산 밑에 주막이 있어서, 그곳에서 돈 주고 술을 사먹었다. 음식과 술을 사먹으면 봉놋방에서 다른 길손들과 섞여 하룻밤을 자는 것은 덤이었다. 걸어서 하룻길을 가면 반드시 만나게 되었던 주막들이, 삼강주막을 마지막으로 이젠 모두 사라지고 군데군데 ‘주막거리’라는 지명으로 희미하게 기억될 뿐이다.

삼강주막은 좁다. 방 두 칸에 부엌 하나가 전부다. 집은 비스듬히 몸을 누이려 하고, 회회나무 말고 주막과 벗해주는 게 없다. 하지만 경상북도가, 예천군이, 삼강마을 사람들이, 주막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어서 쓸쓸하지만은 않다.

허시명의 알코올 트래블
외상값 산해놓은 벽면까지 복원

지난달부터는 경상북도 관광문화재과의 시설팀이 나서서, 삼강주막을 해체 복원하고 있다. 기울어가는 기둥도 바로 세우고, 지붕도 갈고, 외상값 산해 놓은 벽면까지 고스란히 복원해 놓을 삼강주막은 내년 초 다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주모까지 영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삼강주막의 구들장에 엉덩이를 지지며 배추적에 막걸리 한잔 마실 날이.

허시명 여행작가·술품평가 twojobs@empal.com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