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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요리가 만만하게 보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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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식당 주방장과 손님의 편지대결2
5~6년간 수습 요리사로 구른 어느 주방장의 반격
‘손님과 주방장의 편지대결’ ①편(집에 와서 조금 생각해봤어. 미안하지만 내 결론은, 아무리 양극화 때문이라도 음식을 만들어 파는 것을 만만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거야. 나아가 식당을 열면 금세 ‘대박’을 터뜨릴 거란 막연한 환상도 금물이야. 재수 없겠지만 내 얘기 좀 할게. 고 기자를 처음 만났던 몇 년 전 새벽 마장동 술집이었을 거야. 고 기자가 수습시절 얘기를 꺼냈지. 그러자 나도 호텔 주방의 막내 시절을 들려줬을 거야. 기억나? 호텔 요리사는 5∼6년 동안 요리는커녕 냉장고 청소, 식자재 정리, 칼갈기만 한다고. 그 험난한 시기를 거친 뒤에야 겨우 도마 앞에 서지. 그런데 음식점 프랜차이즈는 짧게는 10시간 교육으로 끝이야. 6년과 10시간. 그 차이를 상상할 수 있겠어? 음식 체인점 주인이 국물을 어떻게 우리는지, 밀가루 반죽은 얼마나 치대야 하는지 모르는 거야. 그냥 본점에서 재료를 공급받거나 본점에서 시키는 요리법대로만 요리하는 것이지. 그래서 손님이 음식에 대해서 질문하거나 항의하면 더 퉁명스럽고 불친절하게 되는 것 아닐까? 당연히 음식에 애정이 없을 테고 말이야. 음식에서 돌이 나오면, “어? 돌이 나왔네!” 하고 끝나는 거지. 그들에게 식당은 생계 수단이거나, ‘대박’을 터뜨리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니까 말이야. 왜들 그렇게 요리를 만만하게 보는 건가? 요리사도 ‘장인’이란 말이야. “양극화 때문에 영세 자영업에 내몰린 서민들이 어떻게 전부 장인이 될 수 있냐”고 되물어도, 난 양보할 생각 없어. 일본에 한번 가봐. 도쿄 외곽의 작은 식당에도 장인들이 즐비해. 한국인들이 요리를 ‘돈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데는 언론 책임이 매우 커. 긴 말 안 할께. 당장 인터넷에서 기사 검색을 해봐. ‘○○ 프랜차이즈가 얼마 동안, 얼마를 벌었더라’는 따위의 기사들이 널려 있지. 후배 요리사의 ‘트집 잡는 손님 퇴치법’ 한국 맛집은 돈 좀 벌면 맛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를 늘린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할말이 있어. 고 기자가 지적한 대로 규모를 늘려 원래 맛을 잃은 식당은 실패해야 정상이겠지? 사실은 별로 그렇지 않아. 왠 줄 아나? 우리나라 손님들은 자신의 혀를 믿기보다 남들의 평가와 시선을 제 것처럼 믿어버리기 때문이지. 맛이 없어도 ‘맛집’이라는 이름에 눌려 맛있는 줄 알고 먹는 거야. 맛없는 집은 안 가면 그만인데 말이야. 그래서 너도나도 자꾸만 프랜차이즈를 열려는 거야. 지난번에 “음식을 돈으로만 보지 말라”고 썼지? 음식을 사고파는 건, 손님과 요리사가 함께 가는 거야. 파는 쪽이 음식을 돈으로만 대한다면 사먹는 쪽도 그렇다는 것이겠지. 허영만 선생이 <식객>에서 “모든 맛있는 음식은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숫자와 동일하다”고 썼지? ‘어머니’란 단어를 ‘부모님’으로 바꾼다면 나 역시 이 말에 동의해. ‘부모님’의 맛을 내는 게 모든 요리사의 꿈이야. 돈은 그 다음이라고. 추신 : 명색이 한식 요리사이니 한식에 관한 넋두리 좀 할게. 한식은 너무 값이 싸고 양식은 지나치게 높아 거품이 끼어 있어. 손님들이 한식에 정당한 값을 내지 않는 이상, 한식은 영원히 질 낮은 요리가 될 수밖에 없어. 손님들이 제값을 안 내면 결국 중국산 김치를 먹어야 해.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후배 요리사 대신 한마디만 더 할게. 손님 가운데 트집을 위한 트집을 잡는 사람이 있어. 그 후배는 ‘손님 퇴치법’을 갖고 있어. 퇴짜 놓는 게 네 번을 넘어가면, 되돌려 보낸 접시를 10분 동안 그냥 둔대. 그러고 나서 다시 주면 “간이 잘 맞았다”며 좋아라 하고 먹는다는 거야. 송년회 때 술 너무 마시지 마.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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