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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2.12 21:23 수정 : 2007.12.16 19:30

해질녁 억새숲은 극적이다.

[매거진 Esc] 양희은과 함께 한 쇠소깍에서 외돌개까지 해안가 제주올레 제2코스 걷기 여행

“내가 아주 어릴 때였나/우리 집에 살던 백구/해마다 봄가을이면/귀여운 강아지를 낳았지/어느해 가을엔가/ 강아지를 낳다가/가엾은 우리 백구는/그만 쓰러져 버렸지.” 귓가에 아주 오래전에 들었던 노래 ‘백구’가 울린다. 한 해를 보내는 12월에 캐롤송 대신 ‘백구’가 들리다니 반갑다. 가물가물 기억이 솟아오른다. ‘백구’, ‘아침이슬’,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양희은의 노래는 80년대 너무 뜨거워서 메말라 버린 청춘들의 단비였다. 그 양희은(55)과 함께 지난 12월 초 제주올레 길을 걸었다.

“서명숙씨(50·사단법인 제주올레이사장)와 예전에 함께 걸었다. 공기, 풍광, 산과 바다, 바람. 모든 것이 좋다. 제주도 사람들이 걷는 길을 걷고 제주도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먹어야 제주도를 알 수 있다. 걷는 만큼 보인다.” 양희은의 힘 있는 목소리가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가 걸은 길은 지난 10월에 개발된 제주올레 제2코스다. 쇠소깍에서 정방폭포, 외돌개까지, 제주도 남단 해안가를 쭉 이은 길이다. 3시간 30분∼4시간이 걸린다.

쇠소깍에서 외돌개까지 해안가 제주올레 제2코스 걷기 여행

목이 마르면 길가의 귤을 따먹으라
◎ 쇠소깍∼보목리∼구두미 포구

짠 바닷바람이 볼을 꼬집고 파란 하늘이 친구가 된다. 쇠소깍은 한라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과 바다가 만나는 특이한 곳이다. 간조, 만조 때마다 모습이 달라진다. 보목리로 이어지는 해안 길에는 숭숭 유성처럼 구멍이 뚫린 제주 돌이 곳곳에 박혀 있다. 길은 단단한 흙길로 닦여, 걷는 데 힘들지 않다. 걷다가 목이 마르면 그저 손을 뻗어 노란 꽃 같은 귤을 따 먹는다. 제주도 인심이 허락한 일이다. 보목항에 못 미쳐 고 이주일씨의 별장이 눈에 들어온다. 한때 화려했던 자취가 인생무상을 느끼게 한다. 들머리에 있는 제지기 오름 푯말을 따라 양 갈래로 풀이 우거진 언덕을 오른다. 정상까지 15분 남짓. 헉헉 숨이 땅속 깊숙이 떨어진다. 후회스럽다. 하지만 곧 펼쳐지는 서귀포 앞바다를 보는 순간 그 모든 수고가 기쁨이 된다. 노란 운동기구마저 친구처럼 정겹다.

보목리에서 구두미포구 가는 길.
해안길 여행에서는 전봇대도 친구가 된다.


구두미 포구에 이르면 신기한 여인네가 멀리서 반갑게 맞이한다. 오른쪽에 보이는 한라산이 머리를 잔뜩 늘어뜨린 여인이 되어 있다. 그 길에서 제주도 아이 영수를 만났다. 마치 매그넘 사진집에 등장하는 불가사의한 이국의 소년처럼 자세를 잡는다.

서귀포 앞바다에는 범섬·문섬·섶섬·새섬이 있다. 범섬은 그 모습이 웅장하고 위엄이 있어 아버지 섬이라고 하고 섶섬은 일명 첩섬이다. 그 두 섬 사이에는 문섬이 있다. 튀어나온 섬 모양이 봉긋한 여인네의 가슴 같아서 어머니 섬이라고 한다. 항상 지아비와 첩을 감시한다. 새섬은 할머니 섬이라고 하는데 그 모양이 납작한 여인네의 가슴을 닮아서다. 이 섬들은 다이빙에 제격이란다.

제주도 사람들이 말하는 ‘열두구망’에서 양희은.
◎ 구두미 포구∼거문여∼정방폭포

세찬 바닷바람 탓에 정박한 배들이 출렁인다. 간간이 뿌리는 빗줄기가 순례자를 금세라도 집어삼킬 것 같다. 그 사이로 열심히 사진을 찍는 아마추어 사진가의 열정이 부럽다. 구두미 포구 옆에는 제주도 사람들이 말하는 푸들바위가 있다. 모양이 꼭 푸들강아지를 닮아서 지은 이름이다. 섶섬에서 가장 가까운 포구이다.

거문여는 ‘검은 바윗돌’이란 뜻을 지녔단다. 바닷가에서 툭 하고 튀어나온 곳을 ‘여’라고 한단다. 철썩철썩 부딪치는 파도에 바위는 조금씩 깎여 작아진다. 우리네 인생도 세월 따라 그리 될 것을 안다. 슬프지 않다. 오히려 ‘휴’ 하고 안심이 된다. 늙음이 주는 평온함이 때로 젊은 날 열정보다 기쁘다. 서귀포 칼 호텔과 제주 파라다이스 호텔을 지나 소정방폭포를 만난다. 정방폭포처럼 바다로 떨어지는 폭포다. 뒤로하고 찾은 정방폭포는 중국 진시황의 명을 받고 불로초를 캐러 온 서복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귀포’도 ‘서쪽으로 돌아갔다’ 해서 지어졌단다. 동양에서 유일하게 바다로 떨어지는 높이 23m의 폭포다.

제주 귤이 지천에 널렸다.
◎ 정방폭포∼천지연 폭포∼외돌개

“양희은 언니다. 언니 팬이에요 ….”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넉넉한 그에게 달려든다. 사진을 찍자고 매달리는 그들에게 가벼운 감사의 인사만 전한다. 중국 관광객들도 따라 소리친다. “칭∼∼.” 그는 찡긋 눈 감고 한류를 몸소 실천한다. 모두 모여 양희은과 찰칵! 낯모르는 중국인 집에 그의 사진이 떡 하니 걸릴 것을 생각하니 조금은 우습다. 가이드가 연예인이라고 하는 소리에, 그의 노래도 모르는 이들이 연신 셔터를 누른다.

천지연폭포는 선녀들이 몰래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전설이 있다. 가시딸기, 송엽란 같은 희귀식물과 무태장어가 서식한다. 원앙새도 운다니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할 만하다. 치친 발이 외마디 소리를 지른다. 이때는 찻집 ‘솔빛 바다’에서 구운 고구마와 차 한잔으로 지친 발에게 인심을 쓴다.

쇠소깍~보목리 사이 해안길.
신발을 벗어 툭툭 발냄새를 덜어내고 제주 바람을 담는다. ‘솔빛 바다’ 주인 김미선은 “관광회사들이 돈만 벌려고 후딱 왔다가 그냥 가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찬찬히 걸으면 볼 것이 너무 많다.” 양희은이 옆에서 옳다고 장단을 맞춘다.

잉어가 녹는 할망의 붕어빵 맛

“제주, 너무 지키고 싶다. 아름다운 내 나라 내 섬이 있는데 왜 멀리 가는지 모르겠다.” 그는 언제는 우렁차다. 배가 고프면 파전과 붕어빵으로 유명해진 ‘할망바위 휴게소’에서 몇 젓가락을 휘젓는다. 할망이 직접 구워 주는 붕어빵은 그야말로 잉어가 녹은 맛이다. ‘바람 부는 제주’에서 붕어빵이라니! 찻집을 지나면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이 등장한다. 엉켜 흐드러져 드러누운 갈대는 엇갈린 주인공들처럼 비극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그곳에 서는 순간 태초에 처음 아담을 만나러 가는 이브가 된 느낌이다. 이곳을 놓치면 평생 후회가 용솟음친다.

외돌개 가기 전에 만나는 억새밭. ‘폭풍의 언덕’ 같다.
외돌개는 관광객들이 버스 타고 와서 휙 둘러가는 곳이다. 휘리릭 떠나지 말고 찬찬히 물고기 뜯어먹듯이 살펴보면, 작은 풀 한 포기에도 제주의 바람과 기쁨이 발견된다. 이 길에서 찍은 석양도 모름지기 화가라면 한 번쯤 탐낼 만한 색감이다.

아직도 ‘아침이슬’처럼 순순한 자태를 간직한 양희은이 오는 25∼31일 콘서트를 연다. 올레 길 사이에서 울렸던 그의 노랫소리를 콘서트에서 또 만나고 싶다. “무대에 서면 박수 소리만 들어도 관객들의 깊이를 이제는 알 것 같다. 누구와도 그 깊이를 나누고 싶다.” 양희은의 작은 웃음이 번진다. 제주올레 (064)763-0852

개구쟁이 소년 영수.

제주=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숙취를 날린 갈치국의 위력
양희은이 반한 맛집/ ‘제주할망뚝배기’

‘제주할망뚝배기’집은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적인다. 양희은이 들어서자 주인 김이자씨가 투박한 말투로 반갑게 맞이한다. 그 옛날 두 사람이 나눈 대화는 이렇다. “뭐 줄까?” “뭐 할라고 필요해! 내 실력으로 맛내는 데 연예인 사인 필요 없어” 꼬장꼬장한 주인의 자존심에 입맛 까다롭기로 소문난 양희은이 반했다. 오분작뚝배기(7천원)는 인공조미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아 시원하다. 갈치국은 전날 숙취를 확 날릴 정도로 그 맛의 위력이 대단하다. 가격도 10년 전처럼 6천원이다. 집에 담근 된장과 간장으로만 간을 한다.

(064)733-9934

이중섭 화가가 가족과 함께 머물렀던 초가집
둘러볼 만한 곳

뭉클한 이중섭의 초가집

이중섭 화가가 서귀포에서 산 것은 19??년 ?월부터 19??년 ?월까지 딱 1년이었다. 그가 가족과 함께 머물렀던 그 초가집(방 한 칸 4.70m, 부엌 6.39m)이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된다. 당시 주인이었던 김순복(87) 여사가 서귀포시에 기증하고, 당신이 직접 살면서 관리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 최고의 화가가 살았던 곳은 초라하다. 낮은 지붕과 닳아 뭉개진 마룻바닥, 어느 하나 뭉클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지만 화가가 회고하길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니 만감이 교차한다. 초가집 옆에 ‘이중섭 미술관’이 있다. 이곳 역시 그다지 크지 않아 실망스럽지만 일본으로 떠난 아내의 절절한 편지는 감동을 준다. 입장료는 1000원이다.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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