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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에는 아담한 온실이 남아있다. 동유럽의 온천도시에 온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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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이명석의 반려식물 사귀기
닭이 운다. 침실 창밖, 초등학교 너머로 보이는 다세대 주택의 옥상이다. 부럽다. 서울 한복판에서 닭을 키운다는 사실은 훌륭하지. 아니 그보다는 닭이 살고 있는 커다란 온실이 벅차구나. 어설픈 겨울의 여명에도 수증기를 뚫고 자태를 내보이는 보랏빛 양란에 마냥 질투를 보낸다. 사계절이 또렷한 도시에 산다는 건 물론 행복이다. 그러나 함께 일광욕을 즐기던 친구들이 달력 한두 장을 남기곤 짧거나 긴 잠에 빠져드는 모습을 바라보는 건 역시 착잡하다. 그래서 나도 어떤 정원사들처럼 겨울의 상실을 지울 밀실을 꿈꾼다. 온실은 항상 비밀의 냄새가 난다. 계절과 기후를 거역하고 이국의 열대에서 데려온 화초들을 키우는 자체가 불경하다. 수상쩍은 약초, 노골적으로 벌어진 꽃잎, 지구상의 빛깔이 아닌 것 같은 나비 … 숨막힐 것 같은 수증기 밖으로 눈발이라도 날리면 비밀의 쾌감은 극한에 이른다. 하지만 아직 나는 꿈으로만 간직하고 있다. 온실을 만들면 진짜로 그 속에 들어가 영원히 헤어나오지 못할 것만 같기 때문이다. 겨울이 한창이면, 슬그머니 온실 스토킹에 들어가는 걸로 만족한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남산 식물원을 찾는 일이 큰 즐거움이었다. 나와 친구들은 정글의 악어를 잡으러 가는 사냥꾼 행세를 하거나, 사막 귀퉁이에 올망졸망 앉은 선인장 흉내를 내곤 했다. 하지만 서울 성곽을 복원한다며 사라져 버렸다. 동네에 있는 생물 연구소는 집밖 주차장 옆에 간이 온실을 세워 두었다. 온도계가 만들어내는 실험실 분위기가 그럭저럭 마음에 들지만, 아무래도 너무 소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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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석의 반려식물 사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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