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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현민의 말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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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탁현민의 말달리자
살다보면 느닷없이 고백해야 할 순간이 찾아온다. 대부분 준비가 안 되었을 때, 대부분 시기가 좋지 않을 때, 대부분 그 결과에 대한 서늘한 예감이 들 때. 공교롭게도 주로 그러한 시기에 우리는 고백을 하게 된다. 짝사랑하던 여자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사랑을 고백했을 때 그 여자가 바로 얼마 전부터 연애를 시작했던 경우가 있었고, 심각하게 부부싸움 중이던 엄마 아빠에게 떨어진 성적을 고백해버린 어처구니없는 순간도 있었다. 군대시절 대대장 순시 참에 뭐 어려운 거 없냐는 질문에, 괜찮다며 솔직히 고백해 보라는 말에, 살벌한 내무반 분위기를 고백(?)하여 여름내 겨울 같은 내무생활을 했던 그때도 사실은 그 결과가 좋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을 하긴 했었드랬다. 여하튼, 그렇게 살면서 하는 대부분의 고백은 대략 성공적이지 못한 경우가 더 많은 법이고 또 때로는 고백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거라는 후회가 깊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썩 좋지 않은 순간순간 잊지도 않고, 쉬지도 않고 계속해서 고백을 하고 후회를 하면서들 살고 있다. 후회로 남을 고백을 하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고백)하지 않으면 후회 할 것 같아서’이다. 그러니 고백은 결국 상대를 어떻게 해보려는, 상대에게 나의 의사를 전달하는 대화의 기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고백은 ‘너’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나’에게 하는 ‘말’이다. 그래서 고백의 대상은 그대가 아니라 내 자신이 되며 그 결과에 아쉬움은 남더라도 아니 하고는 못 배기는, 꼭 해야만 내 속이 후련해지는 그런 것이다. 비록 엄마 아빠에게 또 한번 두들겨 맞더라도 비록 군대생활 내내 고문관 소리를 듣더라도 그렇게 해 버려야 내가 살 것 같은 것이 바로 고백이라는 말이다. 12월, 일이든, 연애든, 무엇이든 고백할 말씀들이 많은 계절이다. 어쩌겠나, 비록 안 하는 것보다 못한 결과가 닥친다 해도, 그렇게 고백하고 털고 가는 편이 속 시원하게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는 현명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탁현민 한양대 문화콘텐츠 전공 겸임교수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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