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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양현 신제진 둬이춘의 다랑논. 인간이 만든 압도적인 풍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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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이상엽의 중국 서남 기행5
아름답지만 가슴시린 농촌을 찾아 위안양에서 구이저우까지
아직 해도 뜨지 않은 5시. 나는 위안양현(元陽縣) 신제진(新街鎭)에서 마을 버스인 빵차(面包車, 식빵처럼 생겼다 해서 붙은 이름)를 타고 둬이춘(多依村)마을로 향한다. 비포장 도로를 타고 이 작은 미니밴은 끊임없이 헐떡이며 가파른 고개를 넘어간다. 지금 이 차가 가는 곳은 중국 윈난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랑논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마침 논농사를 위해 물을 대놓았기에 환상(!)적인 풍경을 볼 수 있다나? 하여간 한번 믿어보기로 하고 흔들리는 차 안에서 단잠에 빠졌다. 한참 뒤 차가 멈추고 내리라 한다. 오전 6시. 아직도 밖은 깜깜하지만 주변을 둘러보고는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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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성귀를 따서 집으로 돌아가는 소녀. 중국 농촌은 모두가 생산자이다. 농촌은 여전히 자식 많은 것이 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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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둘러메고 벼랑가에 위태하게 섰다. 그리고는 이윽고 숨이 멎을 뻔했다. 와! 인간이 만든 거대한 풍경에 압도됐다. 아직 일출 전인데도 어렴풋하게나마 왜 이곳 다랑논이 세계 자연문화유산으로 등록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언뜻 보면 잠자리의 날개 같기도 한 이 거대한 논은 사실 자연유산이 아니라 세계 문화유산이라야 맞다. 자연이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과 투쟁하며 인간이 만들어 놓은 기념비적인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들이 몇 해만 농사를 멈춘다면 이 풍경은 사라질 것이다.
7시가 다가오자 산 위로 태양이 솟아오른다. 그리고 천천히 논은 붉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고산지대의 협곡에 있는 다랑논은 빛과 구름이 어우러져 기가 막힌 풍경을 연출한다. 그러길 30분. 일출의 드라마가 사라지자마자 마을은 조용한 평소 농촌으로 돌아왔다. 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들에게 간식용 달걀을 파는 동네 여자애들이 주변을 서성인다. 달걀 한 꾸러미를 샀다. 나무통에서 꺼낸 달걀은 아직도 따듯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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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저우 윈샨툰에서 만난 불교신자들. 모두 청의를 입고 있는 이사람들은 사원의 잡일을 보는 보살같은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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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저우의 척박한 땅에서 흐드러지게 유채꽃이 피었다. 꿀과 기름 채소를 주는 귀한 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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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양에서 구이저우(貴州)로 향하는 내 앞에 나타나는 풍광은 절묘하기 그지없다. 윈난 동부에서 구이저우까지 이어지는 윈구이고원. 해발고도 1000∼2000m로 기복이 매우 심하고 험한 산과 깊은 계곡이 이어져 있다. 산간에는 비옥한 평야가 펼쳐지고 아열대 몬순 기후에 속하기 때문에 벼 이모작을 비롯해 중국 최고의 잎담배와 사탕수수 농업이 활발하다. 석회암 지대가 많아 기기묘묘한 카르스트 지형이 나타난다. 이곳 마을들은 흔히 소계림이라는 애칭이 붙었다. 산과 구릉 사이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유채꽃도 이곳의 절경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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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로 떠나는 사내의 양복이 반듯하다. 그는 도시 건축현장 어딘가에서 민공으로 살다가 춘절이면 다시 깔끔한 양복을 꺼내 입고 돌아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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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화창한 윈난을 벗어나 구이저우 경내로 들어서는 순간 “3일 해 보기 힘들고, 3평 땅이 귀하고, 지나는 사람 호주머니에 3원도 없다”는 옛말이 실감난다. 영화 <귀주 이야기>로 유명해진 구이저우. 하지만 이 영화의 원제는 <추국타관사>(秋菊打官司, 추국이 소송을 걸다)로, 사실 주인공의 이름도 지역도 모두 ‘귀주’가 아니다. ‘치우쥐’로 발음되는 추국의 영문 표기(Qiu Ju)를 ‘귀주’로 잘못 음역한 것이다. 그런데 나부터 모두들 이 영화에서 구이저우를 떠올린다. 영화 속 지지리도 궁상맞은 농촌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이리라.
혁명 전처럼 그들은 이제 땅으로부터 소외되지 않았으나, 잉여로부터 여전히 소외되어 있었다. 과연 그들이 여전히 중국공산당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농산물 가격제한으로 불만이 가득한 농민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곳도 이곳 서남 지역이다. 중국을 여행하며 자금성을 보고, 상하이의 와이탄을 봐야만 중국을 안다고 할 수 없다. ‘날아오르는 중국’의 발판은 서남 지역의 ‘저 낮은 중국’이다. 그리고 그곳에 수억의 농민들이 웅성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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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일 나가는 여성들. 물을 댔으니 조만간 모내기가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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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누를 탈까, 전기택시를 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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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느낌 주는 ‘윈난의 소계림’ 푸저헤이 돌아보기
윈난의 소계림이라 불리는 푸저헤이(普者黑). 자연이 준 혜택과 주민들의 적극성 덕택에 성공적으로 마을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 마을에서 소매점과 관광객용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황씨(62)는 “우리 마을에는 소학교만 둘이 있어요. 그만큼 젊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죠”라고 한다. 이곳에 젊은이가 많은 것은 일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관광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빼어난 풍광과 전통적인 농촌 가옥들 자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마침 이곳에 묵을 때 결혼식이 있다기에 들렀다가 전통 화주 3컵을 마시는 화끈한 신고식을 거쳐야 했다. 널찍한 마당에는 수백명의 하객들이 들어찼고 흥겨운 이족(彛族)들의 음악이 넘쳐났다. 가난하지만 행복함이 넘치는 마을이다.
푸저헤이는 이곳 주민인 이족의 표현으로 ‘물고기와 새우가 많은 호수’라는 뜻이다. 맑은 호수와 계림과 같은 기묘한 산봉우리, 다양한 종유동굴, 호수 위 연꽃 등이 아름다운 곳이다. 푸저헤이를 돌아보는 최적의 시기는 7~8월로 연꽃이 만발한 시절이다. 하지만 언제라도 이곳은 여행자들을 편안하게 하는 자연스러움이 있다. 마을 주민들도 친절하며 치안문제도 없어 우리네 농촌 같은 느낌이다. 푸저헤이를 돌아보는 방법은 카누처럼 생긴 배를 타고 호수를 일주하는 방법과 작은 전기택시를 타고 다니는 방법이 있다. 사람들은 호수의 낭만을 즐기기 위해 주로 배를 타고 일주를 한다. 주요 경관이 약 15㎞의 범위 안에 있어 3~5시간이면 족하다. 배 한 대에는 세 명에서 다섯 명이 탈 수 있다. 이곳에는 이족뿐 아니라 좡족, 묘족, 요족 등 6개 소수민족이 각기 독특한 문화와 전통을 지니며 살아가고 있다.
이상엽/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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