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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2.19 21:42 수정 : 2007.12.20 10:06

구룡포 과메기 덕장에서.

[매거진 Esc] 허시명의 알코올 트래블
과메기·영덕 대게에서 고래고기까지 포항과 영덕에서의 푸짐한 안주 여행

세밑새해는 어디서 보낼까? 그런 구상을 하다가 포항 영덕을 여행하게 되었고, 그 길에서 술꾼 한 사람을 만났다. 술을 어찌나 마셔대는지, 그의 부인이 술 끊는 굿을 하자고 인근에 소문난 사과보살을 찾아간 적이 있다고 했다. 사과보살은 시장에서 사과 장사를 하다가 손님들에게 툭툭 던진 말이 신통하게 들어맞아, 아예 자리를 편 인물이었다.

영덕 풍력발전단지에서.
칠보산 칠보주와 양미리찜과 제피김치.


육고기와 생선 맛을 머금은 묘한 맛

사과보살은 굿을 하려면, 돈 300만원에 됫병소주 다섯 병을 가져오라고 했다. 굿은 경을 읽고 목탁을 치고 다섯 시간이나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에 술꾼(박아무개씨, 답답하다, 이름을 만천하에 밝혀 그의 술버릇을 고쳐놓아야 하는데, 자신을 두 번 죽인다고 제발 이름만은 밝히지 말라 한다)에게 꿇어앉으라 하더니, 벌컥벌컥 됫병짜리 다섯 병을 입에 들이붓더라는 것이다. 어찌나 놀랍고 황망하고 숨차던지, 엉겁결에 소주 서너 잔 정도를 넘기긴 했지만 다시는 술을 마시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집에 도착하여 차문을 열자마자 술생각이 다시 났고, 양심이 있어 차마 그날은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300만원이 술병으로 환산되어 폭음한 뒤끝처럼 속이 쓰렸다고 했다.

술꾼이 있어서였는지 안주가 넘쳐나서였는지, 포항 영덕을 여행하면서 자꾸 술생각이 났다. 내게는 밥 없이 나오는 반찬이나 요리가 죄다 안주로 보이는데, 이틀 동안 맛본 안주는 구룡포 덕장의 과메기, 포항 죽도시장의 고래고기, 강구항의 영덕 대게, 그리고 통통한 양미리였다.


쪄낸 영덕대게.
이 안주들을 맛본 여정의 첫 출발지는 새해맞이 행사가 성대하게 열리는 영일만 호미곶 해맞이 광장이었다. 호미곶에서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구룡포가 나온다. 구룡포 겨울바다에는 과메기 덕장이 줄지어 있다. 과메기는 청어를 잡아 통째로 얼렸다 녹였다하여, 창자의 기름이 생선살 안으로 스며들도록 말려서 만든다. 그런데 요즘은 청어 어획량이 줄어들어 대부분 꽁치를 재료로 쓰는데, 내장을 걷어내고 물에 씻은 뒤에 바닷바람에 사흘을 말려서 상품화한다. 잘 말린 과메기는 꾸들꾸들하여, 씹으면 인절미처럼 차지게 이빨이 박히는데, 오래 씹으면 고소한 맛이 입안에 가득 괸다. 갯내음 속에서 과메기를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니, 엷은 비린 맛도 즐길 만했다. 기름진 고단백의 과메기에 어울리는 것은 역시 술이다. 소주 한 잔을 마시니, 입안에서 비릿한 맛이 자취를 감췄다. 과메기에는 소주가 제격이라지만, 포항에 오니 포항명주가 맛보고 싶어진다. 경북 청송에서 불로주를 빚던 이가 포항에 터를 잡고 포항명주를 빚고 있다는데, 구룡포 바닷가에서는 수소문하기가 어려웠다.

과메기 안주에 술 한 잔.
포항 죽도시장은 동해안을 대표할 만한 큰 어시장이다. 죽도시장에는 고래고깃집이 두 군데 있는데 이곳에서는 동해안에서 사고사를 당한 밍크고래가 주로 거래된다. 고깃집 주인에게 물으니 빨래판처럼 생긴 고래턱밑살이 맛있다고 추천한다. 여러 부위를 섞어 한 접시에 3만원 하는데, 고래고기는 육고기와 생선 맛을 다 머금은 묘한 맛이다. 바다에 사는 고래가 술을 맛본 적이 있을 리 없건만, 술고래라는 말이 있으니 어떻든지 고래와 술 또한 잘 어울리는 짝이다.

영덕대게는 우리네 바닷가에서 맛보는 가장 비싼 안주일 것이다. 완장 차듯 발찌가 붙은 대게는 선주협회에서 공인하는 품종으로 한 마리에 싼 것은 5만원, 비싼 것은 20만원 정도 한다. 하지만 한 마리에 1만원하는 영덕대게도 있으니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대게 살을 파먹고 또 술 한 잔을 마시니 안주와 술의 역할이 바뀌어, 술이 생선살로 가득 찬 뱃속을 다스려준다.

비릿한 맛 날려버려준 ‘제피김치’

허시명의 알코올 트래블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인 안주는 영덕 풍력발전소 바람개비 밑에서 동동주와 양미리찜과 함께 맛본 제피김치였다. 추어탕에 들어가는 향신료인 제피를 넣어서 김치를 담그는 풍습이 영덕 지방에 있다고 했다. 제피의 강렬한 맛이 고추와 어우러져 얼얼했지만, 제피김치는 과메기·고래고기·대게·양미리로 이어진 비릿하고 기름진 맛을 한방에 날리는 멋진 안주였다. 너무 잘 먹고 다니는 것도 잘못이건만, 길 떠나면서 영덕의 술꾼 박아무개와 나는 이런 약속을 하고 말았다. “내년 4월, 영덕대게 축제가 열리고 복사꽃 축제도 열린다면서요, 우리 그때 복사꽃 그늘 아래서 술 한 잔 합시다!”

허시명 여행작가·술품평가 twojobs@empal.com

고래고기 한 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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