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인간에 대한 겁을 상실한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의 빅5 동물들
푸에르토 나탈레스의 북부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에 매번 따라붙는 수식어는 “<내셔널지오그래픽 트래블러>가 뽑은 죽기 전에 가 보아야 할 50곳” 중 하나라는 것이다. 흔치 않은 한국인 여행자의 홈페이지에도, 푸에르토 나탈레스의 호스텔 관리인의 입에서도 같은 자랑이 새어나왔다.
토레스 델 파이네의 매력은 시각적 경관에 지배받는다. 순백의 빙하와 누런 바위봉우리, 옥빛 호수와 푸른 초원이 어우러졌다. 비포장 길을 따라 국립공원을 한 바퀴 돌면 호수와 암봉의 색깔과 모습이 시시각각 바뀐다. 이런 경관에 빠져들면서 사람들이 지나치는 것이 있는데, 바로 토레스 델 파이네를 뛰어다니는 이국적인 야생동물들이다. 아프리카 사파리에서 보아야 할 ‘5대 동물’(버펄로·코끼리·사자·표범·코뿔소)이 있듯이 토레스 델 파이네에도 ‘5대 동물’이 있다. 하룻만에 쉽게 볼 수 있는 동물들로 사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는다.
황새를 닮은 호숫가의 홍학
⊙과나코=처음 마중 나온 이는 과나코였다. 국립공원에 들어선 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과나코는 30~50마리 떼를 지어 다닌다. 사람이 접근하면 어미가 앞에 나와 보초를 선다.
과나코는 남아메리카 라마의 사촌뻘 되는 동물이다. 갈색과 하얀색 털이 섞였고, 목이 길어 언뜻 보면 호리호리한 낙타 같다. 뿔은 달려 있지 않고, 다리가 길어 껑충껑충 뛰어다닌다. 일년에 한 번씩, 11월에서 이듬해 2월까지 새끼를 낳는다. 이즈음이면 꽃사슴만한 새끼가 어미를 졸졸 따라다닌다. 토레스 델 파이네에서는 아마가 호수와 아줄 호수의 초원 지대에서 주로 발견된다. 겨울에는 페호 호수에 400여 마리가 모여 있는 장관을 연출한다.
⊙쿨페오 여우=이번에는 여우까지 나타났다. 커다란 관광버스는 노르덴 호수 옆 전망대에서 사람들을 내려놓았고, 이내 사람들은 원형을 치고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이솝우화의 여우처럼, 여우는 사람들 앞에서 두리번거렸다. 셔터를 누르던 사람들은 쉽게 질렸고 버스에 우르르 올랐다. 혼자 남은 여우는 다시 두리번거리더니 노르덴 호수의 절벽 아래로 사라졌다.
⊙난두=남아메리카 동물의 특성은 아프리카의 사자·표범처럼 최상위 포식자가 적기 때문에 대부분의 동물이 ‘겁이 없다’는 점이다. 난두 또한 그러하다. ‘레아’라고도 하는 아메리카 타조인 난두는 사람이 다가가도 주의만 할 뿐 퍼뜩 도망가지 않는다. 난두의 암컷과 수컷은 똑같이 생겼다. 암컷은 둥지 하나에 알을 여럿 낳고, 수컷은 알 위에 앉아 무리를 지켜본다. 사람을 주시하던 난두는 사람과의 거리가 ‘위험 거리’ 안으로 좁혀졌을 때 지그재그로 도망갔다. 난두는 콘도르와 함께 칠레를 대표하는 동물이다. 난두는 토레스 델 파이네 공원 매표소에서 베르데 호수까지 발견된다. 파타고니아 전역에서도 운이 좋으면 만난다. ⊙홍학(플라밍고)=아마가 호수에 이르니 핑크빛 새떼가 나타났다. 플라밍고라고도 하는 홍학이다. 호수를 붉게 물들인 홍학은 색깔을 빼면 황새를 닮았다. 홍학은 황샛과의 조류다. 칠레 북부에서 남부 토레스 델 파이네까지 산다. 특히 안데스 고산지대의 호수가 홍학이 좋아하는 곳. 안데스홍학과 칠레홍학 그리고 희귀종인 제임스홍학 등 세 종이 칠레에 산다. 사슴 휴물은 천운이 따라야 만나 ⊙마라=‘파타고니아 토끼’라고도 하는 설치류. 해질 녘 비포장 길을 달리다 보면, 과나코는 사라지고 마라가 후다닥 도로를 건너간다. 마치 오락실의 게임기에서 적의 비행기가 출몰하듯 다반사로 출몰하는데, 순식간에 사라져 자세히 볼 길이 없다. 마라는 과나코에 비해 겁이 많다. 사람이 다가가면 깡충깡충 줄행랑친다. 이 동물들은 눈 밝은 사람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동물들이다. 하지만 토레스 델 파이네의 최상위 포식자인 퓨마와 멸종위기종 남아메리카 사슴 휴물은 천운이 따라야 한다. 퓨마의 유일한 천적은 인간이다. 법정 보호종이나 아직까지도 밀렵이 성행한다고 한다.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칠레)=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사진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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