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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푸엔테 거리는 아마추어들의 거리공연으로 활력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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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안데스 설원의 빛으로 빨래를 한 듯한 산티아고 시내에 들어간다면…
맑은 여름날 오후, 한 차례 비가 지나가면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는 광이 난다. 한눈에 봐도 산티아고 시내는 위대한 안데스 설원이 반사하는 하얀 빛에 세탁을 갓 마친 보송보송한 빨래 같다.
칠레 파타고니아를 가려면 산티아고를 들를 수밖에 없다. 아마도 대부분의 여행자는 파타고니아를 오고 갈 때 비행 일정상 산티아고에서 하루이틀 묵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산티아고는 파타고니아의 먼 입구다. 한해 내내 스모그로 빛바랜 산티아고의 대기가 청명하다면, 주저 말고 산티아고 시내로 들어가라. 시내 한 바퀴는 반나절 도보코스로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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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마스 광장 앞의 메트로폴리타나 성당. 광장이 밝음과 축제의 공간이라면 성당은 어두움과 묵상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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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크리스마스, 아르마스 광장
도보여행은
아르마스 광장에서 시작한다. 칠레 어느 도시에나 있는 ‘아르마스’ 광장은, 역시 어느 도시에나 그렇듯 도시 생활의 중심이다. 12월 중순 아르마스 광장은 크리스마스 준비로 흥겹다. 성탄 트리가 광장 한가운데를 가르고, 그 옆에 야자수가 따라 솟았다.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를 즐기러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성탄 트리와 야자수 아래에서 맥주를 마신다.
성탄 트리보다 조금 높은 게
메트로폴리타나 성당의 첨탑이다. 광장이 밝음과 축제의 공간이라면, 성당은 어둠과 묵상·휴식의 공간이다. 두꺼운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둠이 지배한다. 어둠은 반대로 메트로폴리타나를 빛의 성당으로 만든다. 높은 벽에 붙어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로 새어나오는 빛으로 성당은 활력을 찾는다.
메트로폴리타나 성당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다. 성당 중앙에는 예배를 위해 배치된 긴 의자들이 놓여 있다. 청바지를 펑퍼짐하게 늘여 입은 남자, 짧은 가죽치마를 입은 여자는 기도를 하지 않는다. 시내를 걷다 지친 사람들은 이렇게 성당에 들어와 쉰다.
성당 들머리 왼편에는 별도의 좁은 예배당이 있다. 검둥이 한 마리가 예배당 입구를 막고 거드름을 피운다. 검둥이는 예배당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에게 자꾸 거치적대는데, 마침내 한 소년의 발에 꼬리를 밟혔다. 꽹꽹. 작은 소란이 벌어진 뒤, 한 아저씨는 검둥이를 쫓으려고 하고 검둥이는 끝까지 버틴다. 검둥이는 예배당 앞으로 나가 주인인 듯한 사람 옆으로 들어가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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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북쪽 메트로폴리타노 공원. 궤도열차 ‘퍼니쿨라’를 타고 산에 올라가면, 산티아고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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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엔테(Paseo Puente) 거리는 시끄럽고 활력이 넘친다. 레코드 가게 앞마다 두서넛 춤추는 사람들이 있다. 알고 보니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이다. 인기 있는 곳과 없는 곳이 갈리는데, 60대 할아버지 할머니 커플 앞에는 수십 명의 사람이 몰려 있다. 할아버지는 말끔한 정장을 입고, 할머니는 각설이 같은 옷을 입었다.
휘어파노스(Paseo Huerfanos) 거리에선 꼭두각시 공연이 이어진다. 엄마 아빠는 뒤에 서고 아이들은 맨 앞줄에 앉아 시끄럽게 소리를 지른다.
주말 산티아고 시내에는 이런 거리 공연이 많다. 신기한 점은, 공연이 끝난 뒤 공연자는 모자를 땅바닥에 올려놓는데 돈을 내고 가는 사람이 제법 많다는 것이다. 칠레 사람들의 여유가 느껴진다.
시내에는 박물관도 많다. 국립역사박물관, 콜로니얼 박물관, 산티아고 박물관, 현대미술관 등 10여 곳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면
프리콜롬비안 박물관을 선택한다. 프리콜롬비안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롬비아 이전 시대, 지금은 각국으로 분열된 중남미를 아우르는 인디오 문명이다. 박물관은 마야와 아스텍이 전부인 우리에게 찬란하고 심미적인 인디오 문화를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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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크리스마스를 맞은 산티아고. 여기저기서 성탄 선물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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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타노 공원의 성모상. 산티아고를 굽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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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미라보다 수천년전의 미라
7천년 전 칠레 북부 해안에는 친코로 문명이 살아 숨쉬었다. 친코로 인디언은 사람이 죽으면 망자의 유연한 살을 도려내고 거기에 나뭇가지와 풀, 과나코(낙타과의 남아메리카 동물)의 털을 채웠다. 그리고 얼굴에는 얇은 도기를 입혔다. 이렇게 친코로 인디언들은 죽은 것에 산 것을 개입시켰다. 이집트 문명의 미라보다 수천 년 전의 미라가 프리콜롬비안 박물관에 있다.
저녁 6시 박물관을 나섰는데 아직 환하다. 온도계는 30도를 가리킨다. 하지만 건조한 날씨 덕분에 덥지는 않다. 친코로 인디언들이 살던 7천년 전에도 12월의 칠레는 따사로웠을 것이다. 아르마스 광장의 크리스마스 트리가 늙은 햇살에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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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마스 광장은 도시 생활의 중심이다. 두 소녀가 바이올린을 켜니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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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칠레)=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사진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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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모토의 강력한 힘은 라 피오제라의 분위기에서 나온다. 라 피오제라에서 사람들은 소리치고 노래 부르고 어깨동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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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지진 나는 ‘테레모토’
와인+맥주+아이스크림, 달콤한 칠레 폭탄주는 한잔만 마실 것
산티아고 사람들에게 ‘테레모토(terremoto)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열이면 열 사람 손가락을 자기 머리에 갖다대고 빙글빙글 돌린다.(사실 산티아고에서는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테레모토는 ‘지진’이라는 뜻. 쉽게 말해 머리에 지진난다는 것이다. 칠레산 와인에 맥주를 섞은 뒤 아이스크림을 얹은 달콤한 ‘폭탄주’다.
산타아고 사람들은 테레모토를 절대 두 잔 이상 마시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정신을 잃을지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시내 중심가 어시장인 메르카도 센트럴 옆의 ‘라 피오제라’(La Piojera·전화 56-2-698-1682)는 두 잔 이상 마시고 지진 난 술고래들로 시끌벅적했다.
테레모토의 강력한 힘은 라 피오제라의 분위기에서 나온다. 라 피오제라에서 사람들은 소리치고 노래 부르고 어깨동무한다. 낯선 외국인에게도 다가와 악수하고 건배를 청한다. 칠레판 선술집 분위기로, 한국으로 치자면 왁자지껄한 순댓국집 정도. 산티아고 시내 재개발 열풍에서도 살아남은, 대통령에서부터 시인이 찾은 역사적인 선술집이다.
첫 잔은 테레모토로 시작하되 두 번째 잔부터는 맥주로 이어가야 부드럽다. 테레모토 한 잔 1500페소. 칠레 사이다인 ‘치카’(chicha)도 시음해 볼 것.
글 남종영 기자, 사진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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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여행쪽지
지구 반바퀴, 대략 26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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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스 설원의 빛으로 빨래를 한 듯한 산티아고 시내에 들어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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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오전 9시일 때, 칠레 산티아고는 밤 9시다. 칠레가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의미다. 만약 한국에서 땅을 뚫고 간다면 가깝겠지만, 비행기로는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거리다. 왕복항공료는 180만~240만 원선.(세금 제외)
산티아고에 가는 일반적인 경로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갈아타는 것이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11시간, 로스앤젤레스에서 산티아고까지 다시 11시간, 환승시간까지 포함하면 대략 26시간이 걸린다. 보통 로스앤젤레스까지 대한항공을, 로스앤젤레스에서 산티아고까지 란칠레항공을 이용한다.
유럽의 허브공항인 프랑크푸르트나 취리히를 거쳐 가는 방법도 있다. 스위스항공이나 루프트한자항공을 탄다. 유럽에서 산티아고까지 16시간 안팎이 걸리긴 하지만, 미국 비자가 필요없다는 점이 편하다. 이 밖에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뉴질랜드를 거쳐 가는 방법도 있다. 어떻게든 가는 데만 이틀을 잡아야 한다.
⊙산티아고의 아투로 메리노 베니테츠 국제공항에서 산티아고 시내까지 택시를 타면 좋다. 미터기에 따라 요금을 주면 1만페소(1천페소=1900원) 안팎이 나온다. 택시들이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가 많으니, 출국장에 있는 택시 창구에서 1만1천페소짜리 티켓을 구입하면 걱정이 없다. 시내까지 20~30분 걸린다. 시내버스도 수시로 다닌다. ‘메트로’라고 적힌 버스를 타면 시내 버스정류장까지 갈 수 있다.
⊙산티아고 시내는 걸어서 둘러볼 수 있는 크기다. 여름 한낮 온도는 섭씨 30도를 웃돌므로 반팔과 얇은 재킷 그리고 물통을 들고 다닐 것. 여름은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다. 시내에는 소매치기가 많다. 특히 경찰들은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카메라를 조심하라”고 수시로 경고한다.
⊙기념품을 사고 싶다면 시내 북쪽 메트로폴리타노 공원 앞의 ‘페티오 벨라비스타’에 들른다. 한국의 인사동 쌈지길 같은 공간이다. 갤러리와 카페, 바 그리고 각종 기념품 가게가 어우러졌다. 수공예품, 포크송 전문점, 보석 가게, 여행서점 등이 입점했다. 값도 싸고 품질도 좋다. 이 부근은 또 식도락가와 애주가들의 단골 방문처다. 노천카페와 클럽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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