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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기술자 마리오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명물 피자집 ‘라 콘데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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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박찬일의 ‘시칠리아 태양의 요리’
전설의 기술자 마리오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명물 피자집 ‘라 콘데아’ 이야기 피자집 ‘라 콘테아’는 살바토레 콰지모도의 생가로 가는 길 골목에 있다. 콰지모도가 누구냐고? 1959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이자 작가다. 그는 1901년에 수도 로마보다 북아프리카의 튀니지가 훨씬 가까운 시칠리아 남단의 이 시골 도시에서 태어났다. 과문한 탓에 그의 글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그는 청년기에 잔혹한 파시즘 시대를 겪으면서 공산주의자로 단련되었다고 한다. 그는 생가에 걸린 사진 속에서 멋진 콧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방문객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낮에 먹는 냉동조각과는 비교가 안 돼‘라 콘테아’는 아마 콰지모도도 자주 들렀을 게 틀림없다. 지금엔 피자집이 두엇 더 생겼지만, 오래 전에는 유일한 피자집이었던 까닭이다. 어쨌든 라 콘테아의 피자는 공산당이든, 자본가든 홀딱 반하게 만들만큼 기막히다. 돼지기름과 천일염을 넣고 만든 피자 반죽은 짭짤한 간이 절묘하고, 둘레는 바삭하고 치즈가 올라앉은 안쪽은 촉촉하기 그지없다. 종일 주방에서 시달리다가 밤 12시가 되어야 숙소로 돌아갈 때면 나는 이 피자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피자와 찰떡궁합인 생맥주 한잔에 피자 한 판을 먹는 맛이란! 이탈리아에서는 아무 때나 둥그런 피자를 먹을 수는 없다. 장작을 때는 화덕을 갖춘 전통 피자집은 저녁에야 문을 열기 때문이다. 관광객이 우글거리는 대도시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피자 아 타볼라. 해석하면 ‘식탁에서 먹는 피자’는 오직 저녁을 위한 외식이다. 낮에 먹을 수 있는 피자는 잘라서 파는 조각 피자뿐이다. 맛은 비교가 안 된다. 모쪼록 이탈리아 여행을 할 때는 반드시 저녁시간에 피자집에 들르시길. 피자의 진면목은 어둠이 내려야 시작된다. 시칠리아처럼 낮이 대책 없이 긴 남쪽이라면 밤 9시가 넘어야 피자집이 바글거리기 시작한다. 라 콘테아의 명물은 돼지기름을 듬뿍 친 피자반죽도 아니고, 해물과 루콜라를 얹은 특제 피자도 아닌 피자 기술자 마리오다. 그가 반죽을 펴는 모습을 보느라면 ‘신기’(神技)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그는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직 손으로만 하루 수백 장의 피자를 편다. 이탈리아의 명물 동네 피자집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가 피자를 펴는 동작을 찍어 손수제작물(UCC)로 올리지 못한 게 통탄할 일이지만, 어쨌든 필설을 동원하면 이렇다. 먼저 하얀 공처럼 발효된 반죽을 왼손으로 재빨리 집는다. 그 반죽을 오른손으로 휙 던지듯 밀면 오른손은 다시 가볍게 토스하듯 왼손으로 반죽을 보낸다. 그 순간! 반죽은 마술처럼 널따란 원반 모양으로 펴지기 시작한다. 이 동작을 마치 어린애 따귀를 때리듯 서너 번 반복하는데 정말 손이 보이지 않게 빠르다. 어느새 반죽은 한 움큼의 치즈와 한 국자의 토마토소스, 토핑을 얹을 만큼 넓게 펴졌다. 스톱워치를 동원하면 아마도 5, 6초 만에 이루어지는 작업이다. 남과 같은 걸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들 마리오는 그렇게 20여 년을 그 자리에 서서 반죽을 폈다. 팔뚝의 털이 허옇게 보이는 것은 밀가루 때문인지 원래 그 색인지 모르게 그도 나이가 들었다. “이제 이 짓도 할 사람이 없어. 요리를 하겠다는 애들은 많지만 피자하겠다는 애들은 없어. 쟤들? 다 아르바이트야. 직업이 아니라고. 고급요리 한답시고 접시에 그림이나 그리려고 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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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 기술자는 요리사로 대접받지 못하지만, 노력해야 다다를 수 있는 장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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