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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2.27 16:13 수정 : 2007.12.28 15:29

전설의 기술자 마리오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명물 피자집 ‘라 콘데아’ 이야기

[매거진 Esc] 박찬일의 ‘시칠리아 태양의 요리’

전설의 기술자 마리오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명물 피자집 ‘라 콘데아’ 이야기

피자집 ‘라 콘테아’는 살바토레 콰지모도의 생가로 가는 길 골목에 있다. 콰지모도가 누구냐고? 1959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이자 작가다. 그는 1901년에 수도 로마보다 북아프리카의 튀니지가 훨씬 가까운 시칠리아 남단의 이 시골 도시에서 태어났다. 과문한 탓에 그의 글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그는 청년기에 잔혹한 파시즘 시대를 겪으면서 공산주의자로 단련되었다고 한다. 그는 생가에 걸린 사진 속에서 멋진 콧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방문객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낮에 먹는 냉동조각과는 비교가 안 돼


‘라 콘테아’는 아마 콰지모도도 자주 들렀을 게 틀림없다. 지금엔 피자집이 두엇 더 생겼지만, 오래 전에는 유일한 피자집이었던 까닭이다. 어쨌든 라 콘테아의 피자는 공산당이든, 자본가든 홀딱 반하게 만들만큼 기막히다. 돼지기름과 천일염을 넣고 만든 피자 반죽은 짭짤한 간이 절묘하고, 둘레는 바삭하고 치즈가 올라앉은 안쪽은 촉촉하기 그지없다. 종일 주방에서 시달리다가 밤 12시가 되어야 숙소로 돌아갈 때면 나는 이 피자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피자와 찰떡궁합인 생맥주 한잔에 피자 한 판을 먹는 맛이란!

이탈리아에서는 아무 때나 둥그런 피자를 먹을 수는 없다. 장작을 때는 화덕을 갖춘 전통 피자집은 저녁에야 문을 열기 때문이다. 관광객이 우글거리는 대도시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피자 아 타볼라. 해석하면 ‘식탁에서 먹는 피자’는 오직 저녁을 위한 외식이다. 낮에 먹을 수 있는 피자는 잘라서 파는 조각 피자뿐이다. 맛은 비교가 안 된다. 모쪼록 이탈리아 여행을 할 때는 반드시 저녁시간에 피자집에 들르시길. 피자의 진면목은 어둠이 내려야 시작된다. 시칠리아처럼 낮이 대책 없이 긴 남쪽이라면 밤 9시가 넘어야 피자집이 바글거리기 시작한다.

라 콘테아의 명물은 돼지기름을 듬뿍 친 피자반죽도 아니고, 해물과 루콜라를 얹은 특제 피자도 아닌 피자 기술자 마리오다. 그가 반죽을 펴는 모습을 보느라면 ‘신기’(神技)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그는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직 손으로만 하루 수백 장의 피자를 편다. 이탈리아의 명물 동네 피자집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가 피자를 펴는 동작을 찍어 손수제작물(UCC)로 올리지 못한 게 통탄할 일이지만, 어쨌든 필설을 동원하면 이렇다. 먼저 하얀 공처럼 발효된 반죽을 왼손으로 재빨리 집는다. 그 반죽을 오른손으로 휙 던지듯 밀면 오른손은 다시 가볍게 토스하듯 왼손으로 반죽을 보낸다. 그 순간! 반죽은 마술처럼 널따란 원반 모양으로 펴지기 시작한다. 이 동작을 마치 어린애 따귀를 때리듯 서너 번 반복하는데 정말 손이 보이지 않게 빠르다. 어느새 반죽은 한 움큼의 치즈와 한 국자의 토마토소스, 토핑을 얹을 만큼 넓게 펴졌다. 스톱워치를 동원하면 아마도 5, 6초 만에 이루어지는 작업이다.

남과 같은 걸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들

마리오는 그렇게 20여 년을 그 자리에 서서 반죽을 폈다. 팔뚝의 털이 허옇게 보이는 것은 밀가루 때문인지 원래 그 색인지 모르게 그도 나이가 들었다. “이제 이 짓도 할 사람이 없어. 요리를 하겠다는 애들은 많지만 피자하겠다는 애들은 없어. 쟤들? 다 아르바이트야. 직업이 아니라고. 고급요리 한답시고 접시에 그림이나 그리려고 들지.”


피자 기술자는 요리사로 대접받지 못하지만, 노력해야 다다를 수 있는 장인이다.
그가 씁쓸하게 웃는다. 하긴, 피자 기술자는 요리사 대접을 못 받는다. 평생 피자를 빚어봐야 <미슐랭가이드>에서 별을 주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식당업계의 ‘삼디 업종’이다. 어느덧 그 신기한 기술을 ‘롤러’라고 부르는 기계가 대신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만두 기술자가 사라지고, 자동 만두 포장기계가 등장하듯 말이다. 마리오의 팔뚝이 늙고 쇠락해 더는 재빨리 반죽을 펼 수 없게 되면 유서 깊은 피자집 라 콘테아도 문을 닫을지 모른다.

한동안 이 집에서 기술을 배우겠다고 마리오의 조수 노릇을 하다 때려치운 바 있는 알레산드로가 멋진 흰색 수병 제복을 입고 나타났다. 첫 휴가를 받아 고향에 온 것이다. 까맣게 탄 얼굴이 고생깨나 하고 있어 보였는데, 이탈리아 남자들이 제일 끔찍하게 생각하는 군대생활이 어디 만만할쏘냐. 이탈리아 사람들은 남과 같은 걸 도저히 용납하지 못한다. 당신이 이탈리아 도시를 여행하다가 맘에 드는 물건을 발견했다면 얼른 사야 한다. 한국에서처럼 ‘다른 가게에서 사지 뭐’ 했다가는 영영 그 물건을 발견하지 못한다. 심지어 베네통 같은 슈퍼 브랜드조차도 가게마다 구색이 많이 다르다. ‘남과 같은 옷을 입지 않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취향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다품종 소량 생산을 기본으로 하는 명품산업이 발달한 것도 이런 이탈리아적 태도와 관련이 있다. 그러니, 똑같아야 사는 군대생활을 어떻게 견디겠냐고.

알레산드로가 그 끔찍한 군대생활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고 있자-그는 일요일 저녁 특식으로 냉동 피자가 나오는 것을 성토하고 있었다-마리오가 킬킬 웃는다. “어이, 슬리퍼! 피자 조수도 하기 싫다면서 냉동 피자나 먹어야지 별 수 있어?” 슬리퍼란 알레산드로의 별명인데, 피자 반죽을 슬리퍼처럼 축축 늘어지고 볼품없이 만들어놓는다고 마리오가 붙였다. 둘의 수작을 보며 나는 일없이 히죽거렸다. 딱 열 달짜리 군대생활을 하며 고생합네 하는 알레산드로가 웃겼고, 맛이 있든 없든 피자에 스파게티, 스테이크와 티라미수까지 주는 군대생활 할 만한 거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던 탓이었다.

사람 대신 모기 잡는 시칠리아 전갈

생맥주 한 잔에 얼큰해져서 집에 가는 길은 일부러 걸음이 늦었다. 땀이 덜 차야 받아놓은 빗물로 찔끔거리며 하는 샤워가 조금이라도 수월하기 때문이다. 안경을 벗고 샤워기에서 졸졸거리는 물에 몸을 맡기고 있는데, 수도꼭지 근처에 뭔가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안경을 쓰고 그 ‘꿈틀이’를 확인한 나는 잠시 혼란에 빠졌다. 아니, 집에 웬 바닷가재가 있지? 그 놈이 전갈이라는 걸 깨닫게 된 건 오래지 않아서였다. 집 구석구석을 뒤지니 이건 동물원이 따로 없었다. 전갈이 두어 마리 더 있었고, 도마뱀도 뭐 먹을 게 있다고 서너 마리가 돌아다녔다. 다음 날, 주방장에게 전날의 소동을 얘기했더니 그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시칠리아 전갈은 사람은 안 건드리니까 걱정 마. 모기 잡아먹으려고 있는 거야. 좀 물더라도 참고 모기를 너무 잡지 말라고.”

박찬일 뚜또베네 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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