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이상엽의 중국 서남 기행 마지막 회
차마고도 따라 시솽반나 푸얼에서 이우현까지
이제 나의 서남 기행은 남쪽 끝을 향한다. 그곳은 미얀마·베트남·라오스가 국경을 맞대는 윈난성 시솽반나 지역이다. 일찌감치 모험을 좋아하는 여행자들이 중국을 통해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들어가던 곳이다. 요즘은 중국과 세 나라가 경제협의체를 모색할 정도로 활발해진 곳이다. 가장 먼저 구체화된 것이 중국-아세안 철도로 윈난의 쿤밍에서 출발한 기차가 베트남 하노이와 호찌민, 캄보디아 프놈펜, 타이 방콕,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거쳐 싱가포르에 도착하는 총 5500㎞의 철도망 건설이다.사실 서남 지역이 외국과 문물을 교류한 역사는 깊다. 기원전부터 고촉인들에 의해 청두에서 인도까지 개발된 ‘서남 실크로드’와 시솽반나 지역의 푸얼차(보이차)를 이용해 티베트·인도·베트남을 연결했던 ‘차마고도’가 바로 그런 역사적인 길이었다.
수요 폭등, 상인들 몰려와 입도선매
중국에 자장면이 없다고 했던가? 차마고도를 따라 찾아간 푸얼시는 푸얼차의 고장이 아니었다. 작년까지 스마오시라 했는데 푸얼차의 가치를 파악한 중앙정부 사람들이 푸얼이라는 이름으로 바꿔줬단다. 그럼 원래 푸얼은? 졸지에 이름을 내주고 닝얼이 되고 말았다. 둔황이 뜨니 유원역이 둔황역이 되고, 소설 속의 샹그릴라가 뜨니 중뎬이 샹그릴라가 되는 중국이니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나, 스마오시에 이름과 함께 1천억원 투자금을 빼앗긴 푸얼 사람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루아침에, 주민들 의사도 묻지 않고 이럴 수 있는 겁니까!” 그럼 시위라도 벌인 것일까? “그럴 수야 없죠. 정부가 하는 일인데. 참고 있습니다.” 이런! 역시 중국답다. 그래도 닝얼 사람들은 푸얼시와 지역적으로도 가깝고 아직은 차에 관한 한 더 큰 유통망을 갖고 있었다. 그럼 이곳에서는 푸얼차의 참모습을 볼 수 있을까? 이 또한 아니다. 옛 푸얼은 시솽반나 란창강 서쪽 육대차산에서 나오는 차가 일차로 집결하는 곳이었다. 이렇게 푸얼에 모인 차는 서쪽으로 다리를 향했고, 동쪽으로 쿤밍을 향했다. 우리로 치면 천안삼거리쯤 되는 것 같다.
푸얼을 떠나 간신히 도착한 곳은 윈난성 가장 아래쪽, 라오스와 접경지대인 시솽반나타이족 자치주의 이우현(易武縣). 이곳이야말로 청나라 시절 최고의 푸얼차가 생산되는 육대차산의 중심이다. 시솽반나의 만월계통 민족인 타이족과 부랑족이 최초로 차를 재배했고 강저인의 후예들이 말에 차를 싣고 멀리 티베트나 하노이까지 날랐다. 과연 이곳의 풍광은 차나무의 원향인 듯 원시 밀림으로 우거져 있고 수백 년 된 고차수(古茶樹·오래된 차나무)들이 즐비하다. 지금 유통되는 대부분의 푸얼차는 사람 키 높이에 농약으로 재배되는 관목차로 만들지만, 이곳에서 생산되는 진정한 푸얼차는 원주민들이 순화 재배한 야생 교목 찻잎에 있다. 높이가 10미터에서 20미터에 이르는 자연 상태의 교목차는 관목차에서 느낄 수 없는 깊고 진한 맛이 배어 있다.
하지만 이처럼 최고급의 찻잎도 수년 전에는 1㎏에 1만원 정도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10만원에도 구할 수가 없다. 그래서 대도시의 차 상인들이 차를 따는 철에 몰려와 입도선매를 한다. 게다가 관목차 잎을 섞을까봐 찻잎을 따는 것을 내내 감시할 정도가 되었다. 결국 넘치는 수요에 턱없이 모자라는 찻잎으로 푸얼차는 천정부지로 값이 오르고 있다. 이곳에 온 9월은 가을차가 출하되는 시기였는데 벌써 차 농가에는 팔 물건이 없었다.
차나무 오를 길 없어 고차수를 베다니…
문밖 열대우림으로 서늘하게 스콜이 쏟아진다. 노인이 타 온 푸얼차가 담긴 허름한 찻잔에서 따듯한 온기가 전해온다. 값싼 낭만처럼 들릴지 몰라도 서울에서 마시는 값비싼 푸얼차보다 이 주름진 노인이 내준 소박한 푸얼차가 천배 만배 값지다. 이제 3년 동안 이어 온 나의 서남 여행이 끝나 간다. 그리고 그 끝자리에 서남의 자연과 인간이 만든 값진 푸얼차 향기와 함께한 인연에 감사한다. 참으로, 오랫동안 잊을 못할 것이다.
이우(중국 시솽반나)=글·사진 이상엽/사진가
무엇이 좋은 푸얼차인가
중급품 정도로 맛을 느낀 후 다양하게 평가해보는 게 지름길
고가에 팔려 나가는 오래된 푸얼차는 가짜가 많다. 주로 광둥성과 홍콩의 도매업자들이 축축한 지하실에서 ‘습창발효법’을 이용해 골동 푸얼차를 만들어 고가에 판매했는데, 우리나라 수입업자들이 많이 속았다. 그 때문에 한국 언론으로부터 푸얼차는 믿을 수 없는 차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사실 푸얼차는 우리가 알고 있는 룽징차나 우롱차와 같은 고급차라 할 수 없다. 5~6등급의 중급 찻잎을 사용하며 그보다 못한 찻잎도 흔히 사용한다. 다만 후발효차라는 특징으로 그 맛의 깊이가 녹차와 다를 뿐이다.
푸얼차는 중세까지도 중국의 10대 명차에 끼지 못했다. 당시는 운남성에서 만들어져 차마고도를 통해 티베트로 가서 말과 바꾸는 국가전략상품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티베트 사람과 만주 사람의 입맛이 통했는지 청나라 때부터 황실에 진상되는 특급차로 대접받기 시작했다. 이때 만들어진 것이 둥근 모양의 병차(餠茶)로 요즘 흔한 푸얼차의 모습이다. 푸얼차는 여러 모습이 있지만 대엽종 찻잎 말린 것으로 발효를 거쳐 만들어지는 산차(散茶)나 긴압차(緊壓茶·눌러서 덩어리로 만든 차)를 말한다. 모양 외에도 생차와 숙차를 들 수 있다. 생차는 그냥 자연 발효하도록 만든 차이고 숙차는 악퇴기법을 사용해 인공적으로 숙성시킨 차다. 흔히 푸얼차 하면 숙차를 말한다. 하지만 우리 입맛에는 녹차 같은 생차도 좋다.
무엇이 좋은 푸얼차인가 묻는다면, 당신의 몸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은 것이다. 곰팡내가 난다거나 거북한 흙내가 나는 것은 푸얼차의 특징이 아니다. 고가품이나 하급품 보다는 중급 정도의 푸얼차로 맛을 느낀 후 다양하게 평가해 보는 것이 지름길이다. 국내에도 많은 푸얼차 인터넷 동호회가 활동 중이다. 차는 혼자 마시는 것보다 여럿이 어울리며 음미하는 것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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