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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02 22:04 수정 : 2008.01.02 22:04

저 의자에 앉은 아가씨는 조금 축축한 방을 가진 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매거진 Esc] 이명석의 반려식물 사귀기

어느 번잡한 모임이 끝날 무렵, 낯선 여자가 초록빛 스팽글 스커트를 찰랑거리며 내게 달려온다. “저도 사귀어볼 수 있을까요?” 가슴이 두근거릴 이유는 없다. 나랑 사귀자는 게 아니니까. 때가 때인가 보다. 적잖은 사람들로부터 작심하는 말을 듣게 된다. “나도 새해에는 예쁜 화초 좀 사귀어볼까 하는데 …” “저같이 까칠한 여자도 룸메이트를 구할 수 있을까요?” 나는 커플 매니저가 되어, 수첩을 꺼내든다.

하루 저녁 데이트 상대라면 쉽겠다. 적당히 취향을 맞춰주면 될 테니. 발랄한 쪽, 아니면 고고한 쪽? 계속 쳐다보고 어루만져줘야 하는 쪽?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가, 잊을 만하면 은은한 꽃을 피우는 쪽?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말한다. “안 죽는 화초요.” 그렇다. 내 쪽에서 먼저 이 질문을 던졌어야 한다. 당신의 방은 어떤 기후대인가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인 케이(K)는 반지하를 전전하고 있다. 햇볕은 주차장과 연결된 화장실 창문으로만 들어오고, 장마철이 아니라도 벽은 습기로 눅눅하다. 다만 얼어 죽어도 치워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아 보일러는 후끈하게 틀어둔다. <개구리 중사 케로로> 소대원들의 피부가 매끈매끈해질 정도의 이런 기후는 아열대의 습지다. 아스플레늄이나 아디안텀 같은 고사리의 친구들이 좋아한다.


이명석의 반려식물 사귀기
아이티(IT) 기업에서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에스(S)는 사막 같은 사무실에서 같이 밤을 보낼 친구를 원한다. 통유리의 채광은 확실하지만 공기는 항상 건조하고, 정신없이 바빠 제때 비를 내려줄 자신이 없다. “그렇다면 역시 선인장이겠죠?” 글쎄올시다. 온실에서 속성 재배한 미니 선인장은 몸이 부실해, 발악도 없이 죽어버리곤 한다. 조금은 보챌 줄 아는 다육 식물 쪽이 정 붙이기에도 낫다.

사실 나는 식물을 소개하고자 가정을 방문하면, 다짜고짜 창을 열어보곤 한다. 화분을 걸칠 만한 약간의 틈만 있다면, 햇볕과 바람을 있는 대로 받고 살 우리 기후대의 친구를 권한다. 사계절을 함께 즐긴 뒤, 겨울엔 그 친구가 땅속에서 무슨 꿍꿍이를 할지 궁금해하는 것도 행복한 순간이다.

이명석/ 저술업자

*** ‘반려식물사귀기’ 연재를 이번호로 마칩니다. 필자 이명석 님은 다음호부터 요리면에 ‘커피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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