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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의자에 앉은 아가씨는 조금 축축한 방을 가진 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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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이명석의 반려식물 사귀기
어느 번잡한 모임이 끝날 무렵, 낯선 여자가 초록빛 스팽글 스커트를 찰랑거리며 내게 달려온다. “저도 사귀어볼 수 있을까요?” 가슴이 두근거릴 이유는 없다. 나랑 사귀자는 게 아니니까. 때가 때인가 보다. 적잖은 사람들로부터 작심하는 말을 듣게 된다. “나도 새해에는 예쁜 화초 좀 사귀어볼까 하는데 …” “저같이 까칠한 여자도 룸메이트를 구할 수 있을까요?” 나는 커플 매니저가 되어, 수첩을 꺼내든다.하루 저녁 데이트 상대라면 쉽겠다. 적당히 취향을 맞춰주면 될 테니. 발랄한 쪽, 아니면 고고한 쪽? 계속 쳐다보고 어루만져줘야 하는 쪽?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가, 잊을 만하면 은은한 꽃을 피우는 쪽?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말한다. “안 죽는 화초요.” 그렇다. 내 쪽에서 먼저 이 질문을 던졌어야 한다. 당신의 방은 어떤 기후대인가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인 케이(K)는 반지하를 전전하고 있다. 햇볕은 주차장과 연결된 화장실 창문으로만 들어오고, 장마철이 아니라도 벽은 습기로 눅눅하다. 다만 얼어 죽어도 치워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아 보일러는 후끈하게 틀어둔다. <개구리 중사 케로로> 소대원들의 피부가 매끈매끈해질 정도의 이런 기후는 아열대의 습지다. 아스플레늄이나 아디안텀 같은 고사리의 친구들이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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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석의 반려식물 사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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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식물을 소개하고자 가정을 방문하면, 다짜고짜 창을 열어보곤 한다. 화분을 걸칠 만한 약간의 틈만 있다면, 햇볕과 바람을 있는 대로 받고 살 우리 기후대의 친구를 권한다. 사계절을 함께 즐긴 뒤, 겨울엔 그 친구가 땅속에서 무슨 꿍꿍이를 할지 궁금해하는 것도 행복한 순간이다.
이명석/ 저술업자
*** ‘반려식물사귀기’ 연재를 이번호로 마칩니다. 필자 이명석 님은 다음호부터 요리면에 ‘커피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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