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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현민의 말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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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탁현민의 말달리자
곧 태어날 (내) 아이의 태명은 ‘탁복만’이다. 세말에 여기저기서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할 때마다, 태명이긴 하지만 이름 잘 지었다는 생각에 스스로 기특해했다. 사람들 모두가 복만이 잘 받으라고 인사들을 건네니 감사하다. 다들 바쁘실 텐데 생판 모르는 분들까지도 이렇게 복만이를 챙겨주시니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모쪼록 잘 키우겠다는 말씀 이 자리를 빌려 전한다. 그러고 보니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태명과 본명·별명·관등성명에 이르기까지 각각으로 서로를 부르고 또 불린다. 결국 삶이란 누군가에게 무엇으로 불렸는지에 대한 기록일지 모르겠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실제의 성취나 정체성과는 (다소) 상관없이 기대와 이상으로 불리는 호칭이 그 불리는 방향으로 그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딸아이에게 ‘공주야’ 하고 부르면 어느 순간 아이는 공주처럼 행동하고 또 그렇게 부르는 아빠도 자기 딸아이를 진짜 공주처럼 대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나에게로 다가와 꽃이 되었다’는 시어는 다만 문학적 표현이 아닌 엄연한 사실이다. 시인이 그를 꽃이라 부를 때 비로소 그가 꽃 같은 존재가 되듯이 우리가 이 말 많은 세상에서 무엇으로 불리는지는 무척이나 중요하며 쉽지 않은 문제다. 무엇으로 불리는지에 따라 양아치나 삼마이가 될 수도 있고 꽃이나 햇살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보아주고 생각해주고 또 불러주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되고 싶다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했다. 결국 그런 소중한 존재가 되길 원한다면, 그런 말을 듣고 싶다면 먼저 그를 꽃이라 부르고 햇살이라 부르기를 주저 말자. 결국 말 중에 가장 훌륭한 말, 가장 최고의 말은 상대를 꽃이나 햇살, 희망이라 부르는 것이다. 올 한해는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듣는 사람이 되길 소망한다. 새해 복만이…. 탁현민 한양대 문화콘텐츠 전공 겸임교수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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