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1.09 18:08
수정 : 2008.01.09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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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정키의 아이템 - 노트북, 식사대용 메뉴, 무엇보다 맛있는 커피. 사진·이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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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이명석의 카페정키
바람 찬 날, 여의도 광장에서 스윙댄스 파티 홍보용 동영상(UCC)을 찍었다. 다음 일정까지 두 시간 정도 시간이 비네. 뭘 할까? 대학 초년생인 에스가 말한다. “우리 된장녀 놀이나 할까요?” 피식 웃었다. 처음 들어본 말이지만, 단번에 알아먹었다. 별 다방이나 콩 다방에 가서 커피 시켜놓고 시간이나 죽이자는 거지. “너는 그게 ‘놀이’구나. 나는 그게 거의 ‘생업’이랄까!”
호텔 정키(hotel junkie)라는 말이 있다. 영화 <다즐링 주식회사> 속 단편 ‘호텔 슈발리에’의 잭은 호텔 밖으로 한 발도 내딛지 않는다. 몇 주 동안 침대에서 비비적거리고, 룸서비스로 음식을 시켜먹고, 필요한 물건은 배달로 받는다. 실제 여행지에서도 종종 이런 인간들을 만나는데, 단순한 게으름뱅이가 아니라 호텔 자체에 탐닉하는 숭배자들도 적지 않다. 호텔의 브런치, 화장실의 변기 뚜껑, 종업원의 교대 시간까지 그들에겐 품평의 대상이다. 여기에서 호텔을 카페로 바꾸어놓는다면 대체로 내게 들어맞는다.
처음 ‘된장녀’ 이야기가 나왔을 때 깜짝 놀랐다. 틈만 나면 커피 전문점에 간다. 그거 난데. 밥은 굶어도 밥값보다 비싼 커피를 마신다. 그거 나잖아. 커피 한 잔 시켜놓고 하루종일 카페에서 죽치고 있다. 그것도 나네. 심지어 나는 이런 생각도 했다. ‘그래, 나 된장녀야’라는 제목으로, 매일 스타벅스에 앉아 있는 긴 머리의 내 뒷모습 사진을 디시인사이드에 연재하는 거야. 한 달 정도 악플을 즐긴 뒤에, 턱수염 난 앞모습을 공개하는 거지.
나는 거의 매일 카페에 간다. 에스프레소 한 잔에 기댄채 일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택배도 받고 게임도 한다.
예전 어르신들도, 파리와 빈의 문학 카페 단골들도 비슷하게 다방과 카페를 즐겼을지 모른다. 다만 결정적 차이는 있다. 나는 한번 카페에 들어가면 오래도록 머물지만, 다음날은 될수록 다른 카페를 찾는다. 새로 카페가 생겼다면 부리나케 달려가 본다. 탐닉하는 정키의 눈으로 카페의 분위기, 주인의 말투, 무엇보다 커피의 맛을 감별한다.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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