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1.09 18:38
수정 : 2008.01.13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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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 소만 빙하 옆 ‘포인트’ 봉우리에서 바라본 빙하. 지구온난화로 크레바스가 점점 넓어져 2005년엔 아르헨티나 기지 대원 두 명이 빠져 숨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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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여름 맞은 남극 세종기지 대원들과 함께 펭귄 마을을 따라 바턴반도의 정상을 오르다
남극에서 산책이 가능하단 말인가. ‘남극’과 ‘산책’은 좀처럼 합성어로 결합하기 힘든 낱말들이다. 극단적인 것과 일상적인 것, 순백과 초록은 어울리지 않는다. 최저기온이 영하 89.2도까지 떨어지는(1983년 7월21일 러시아 보스토크 기지 측정) 남극에서 하릴없이 산책이라니!
한반도에서 제주도만치 떨어진 남극반도의 킹조지 섬. 여기 사는 세종기지 대원들은 그래도 걷는다. 산책한다. 남극이라지만 킹조지 섬은 ‘남극의 아열대’인 셈이어서 한여름 기온은 영상을 웃돈다. 그때만은 늘 하얗던 능선이 벗겨지고 대원들은 눈이 내어 준 길을 따라 걷는다.
파란 하늘 본 뒤 5시간 거리 트레킹 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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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조지 섬 필데스 반도의 벨링스하우젠 기지. 러시아어로 쓰인 표지판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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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기 있는 산책길은 세종기지에서 펭귄마을까지예요. 주로 사진을 취미로 하는 대원들이 주말마다 가볍게 다녀오지요.”(최문용 대원)
젠투펭귄과 턱끈펭귄이 찾아오는 9월부터 발길이 잦아진다. 세종기지가 자리 잡은 세종곶에서 펭귄마을까지는 약 2㎞다. 전형적인 바닷가 산책길로, 어른 걸음으로 40∼50분 거리다. 맞은편으로 만년설을 뒤덮어 쓰고 좀체 말 없이 선 넬슨 섬이 따라온다.
지난 12월8일에는 세종기지 대원들 넷이 모여 장기 트레킹을 모의했다. 겨우내 안개를 먹고 살았던 그들은 여름 들어 처음으로 파란 하늘을 봤고 이참에 바턴반도의 정상에 오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해안가를 쭉 따라가는 거예요. 그래서 마리안 소만 빙하에 닿기 직전 오른쪽 능선으로 올라붙은 뒤 바턴반도를 횡단하는 거죠. 그렇게 가도 펭귄마을이 나와요.”(심지훈 대원)
이 길은 일년에 서너 번 정도밖에 시도되지 않는 산책 고수들의 코스. 탐험이라기에는 멋쩍고 산책이라기엔 자존심 상하는 5시간 길이다.
그런데 마리안 소만 빙하를 앞두고 발걸음을 떼기 힘들어졌다. 예년보다 많이 내린 눈이 해안가를 덮어 버린 탓이다. 눈 절벽 아래로 조심스레 걸어도 되겠지만, 이 따사로운 햇살에 눈이라도 덜컥 무너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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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끈펭귄(앞)과 아델리펭귄(뒤). 방해를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펭귄들은 도망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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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이 아닌가 봐!”
선두 대원의 소리에 고개를 저으며 뒷걸음질. 무작정 능선으로 치고 올랐다. 그러길 30분. 마리안 소만 빙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봉우리에 올랐다. 대원들이 이르길 ‘포인트’라는 곳. 사진을 찍은 대원들은 손수 싸온 김밥으로 허기를 채웠다.
이제부터는 길 없는 길이다.(원래 인공적인 길이 없긴 했다). 사람이 지나가면 길이고 그렇지 않으면 야생이다. 눈이 녹은 맨땅에는 생명체가 없다. 빛바랜 마른 잎처럼 까칠하게 얽힌 지의류가 그나마 생명체다. 한때 남극은 동식물의 천국이었다. 파충류와 양서류는 물론 포유류도 살았다. 남극 대륙과 주변 섬들에서 발견되는 화석이 이를 말해준다. 하지만 신생대 중기 거대한 눈과 빙상이 남극을 뒤덮으면서 이들은 사라졌다.
세종기지 대원들의 ‘눈썰매장’인 설악봉 북쪽 사면을 횡단했다. 파란 하늘을 제외하곤 온통 하얗다. 빙원에 반사돼 눈을 찌르는 햇빛에 머리가 어지럽다. 거리 감각이 무뎌지고 얼굴은 시커멓게 탔다. 남극권은 오존 구멍이 뚫려 있어서 자외선의 영향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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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련 시절 러시아 벨링스하우젠 기지는 번성했던 기지 중 하나였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난 뒤, 기지 관리 인원이 대폭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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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엉~컹, 낮잠 자러 온 코끼리 해표들
바턴반도 동쪽 절벽인 한라봉에 섰다. 한라봉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저 바다 멀리 혹등고래가 뛰어오른다고 했다. 아래에서 ‘까악∼깍’ 펭귄 소리가 들린다. 눈밭을 미끄럼을 타고 내려갔다.
펭귄마을은 킹조지 섬의 흔치 않은 생태계의 보고다. 지난해 1월 환경부의 생태조사 결과 젠투펭귄 1719쌍과 턱끈펭귄 2961쌍, 그리고 갈색도둑갈매기, 남극도둑갈매기 등이 서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침 해표들이 펭귄마을에 놀러왔다. 낮잠을 자러 온 코끼리해표 암컷과 새끼들이다. 해표들이 낯선 산책자를 보고 ‘커엉∼컹’ 성을 냈다.
킹조지 섬(남극)=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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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눈으로 덮인 남극에서는 방위와 거리 감각이 무뎌지는 ‘화이트 아웃’을 조심해야 한다. 한낮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에 화상을 입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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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델해표가 세종기지 앞으로 놀러왔다. 웨델해표와 코끼리해표가 자주 관찰된다. 보통 한나절 낮잠을 자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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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건 다 있는 ’기지촌’
남극의 ‘비공식 수도’ 킹조지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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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트리니티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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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조지 섬은 남극의 ‘비공식적’ 수도라 한다. 칠레·아르헨티나·중국·폴란드·브라질·러시아·우루과이·한국 등 모두 8개국 9개 기지가 모여 있다. 특히 섬의 서쪽 필데스 반도는 남극에서 가장 붐비는 ‘국제 기지촌’이다. 칠레 에두아르도 프레이 기지와 러시아 벨링스하우젠 기지를 중심으로 중국의 장성 기지, 우루과이 아르티가스 기지가 20㎞에 이르는 도로로 연결됐다. 이와 함께 공항·호텔·우체국·병원·성당·교회 심지어 기념품점이 있을 정도다.
대부분의 시설을 운영하는 나라는 칠레다. 칠레는 킹조지 섬을 포함한 남극의 일부는 자국 영토로 주장한다. 필데스 반도 정상에 자리 잡은 공항도 칠레 공군이 관리하는데, 칠레뿐만 아니라 우루과이·아르헨티나 공군기와 칠레 푼타아레나스를 기점으로 하는 디에이피(DAP) 항공사의 민간 항공기도 이 공항을 이용한다.
칠레는 자국 영토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예전부터 거주민 정책을 폈다. 1984년 프레이 기지에서 첫 아이가 태어났고, 기지 관리 인력의 대부분인 군인과 군속들은 ‘별들의 마을’이라는 빌라에서 산다. 현재 프레이 기지에는 110명 정도가 산다. 이 가운데 민간인은 25% 정도. 기지 지원 인력과 공항 직원, 교사 등이다.
국제 기지촌을 전망하는 언덕에 세인트 트리니티 성당이 있다. 2004년 남극 최초로 러시아 벨링스하우젠 기지가 세운 그리스 정교 성당이다. 남극의 깨끗한 대기로 인해 목조 건축물인데도 세월의 풍파가 끼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삼나무의 은은한 냄새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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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여행쪽지
크루즈 가격은 천차만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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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 가격은 천차만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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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의 여름은 한국의 겨울이다. 남극대륙 안쪽은 우리가 ‘상상하던 대로의 남극’이지만, 한여름 남극반도와 킹조지 섬에 혹한은 없다. 세종기지의 경우 가장 따뜻한 1∼2월에는 영상 3도인 날도 많다. 세종기지의 위치는 남위 62도13분. 남극권(66도30분)보다 4도 낮기 때문에 위도로 볼 땐 남극은 아니다. 남극광(오로라)도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겨울 해빙(바다얼음)의 형성 △남극 순환해류를 기준으로 할 때 일반적으로 킹조지 섬을 남극으로 포함시키기도 한다.
⊙남극의 입구는 칠레의 푼타레나스, 아르헨티나의 우수아이아다. 푼타레나스에선 비행기가 출발하고, 우수아이아에서는 크루즈가 출발한다. 푼타레나스를 가자면 일단 칠레 산티아고까지 간 뒤, 국내선으로 환승한다. 일반적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거치지만 유럽,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경유편도 있다. 왕복 항공권 250만∼310만원선.(세금 제외)
⊙배편이나 항공편으로 킹조지 섬으로 들어간다. 남극 크루즈 중 상당수는 킹조지 섬의 포터만에서 빙하를 둘러본다. 남극 전문 여행사 99곳이 가입한 세계남극여행사협회(iaato.org)의 리스트를 참고할 것. 여기서 연결된 각 여행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일정과 가격을 비교한다. 우수아이아에서 출발하는 크루즈는 남극반도 일대를 둘러보는 데 최소 7일 이상 걸린다. 크루즈 시설과 일정에 따라 최소 400만원 안팎에서 1천만∼2천만원까지 다양하다.
⊙극지연구소에서 해마다 한 차례 모집하는 ‘극지 체험단’도 두드려볼 만하다. 푼타레나스에서 세 시간 남짓 군용기를 타고 킹조지 섬에 들어간 뒤, 세종기지에서 닷새 안팎을 머문다. 올해는 세종기지 대수선 공사 때문에 모집하지 않았으나, 관례대로라면 내년 초 진행된다. 극지사랑모임 눈사람클럽(cafe.naver.com/poletopole2.cafe)과 극지연구소(www.kopri.re.kr) 홈페이지를 눈여겨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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