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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09 19:38 수정 : 2008.01.09 19:38

〈대성당〉

[매거진 Esc] 이다혜의 재밌게 읽자

〈대성당〉
레이먼드 커버 지음, 김연수 옮김, 문학동네 펴냄

시간이 가도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누구나 가지고 있을 ‘첫번째’의 기억도 있고(볼 발그레), 나에게만 특이해서 남는 기억도 있다. 나에게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 첫 순간의 하나는 레이먼드 커버의 <대성당> 마지막 문장을 읽던 때였다. 12년쯤 전의 일이었다. 지금처럼 그때도 다들 영어 공부에 목을 매고 살았다. 영어를 잘할 수 있는 비법 하나가 재미있는 영어 소설 많이 읽기였다. 그때 추천받은 책이 <대성당>이었는데, 쉬운 영어로 쓰였고 단편집이라서 한 작품 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교복을 갓 벗은 내게 커버는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에 가까운 인상이었는데, 단편 <대성당>을 읽으면서 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일까 종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니 투덜거림이 심해졌다. 몇 장 되지도 않는 소설에 이렇게 쓸데없는 이야기나 늘어놓다니. 볼멘 얼굴로 책장을 넘기다가 마지막 문장을 읽고 울었는지 한숨을 쉬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온몸에 소름이 돋고 뒷목이 뻣뻣해지면서 그저 할말을 잃었다는 정도. 몰라몰라, 무서워, 이게 뭐야! 내용은 간단하다.

어느 부부의 집에 맹인인 손님이 찾아온다. 밥을 먹고 술을 마시다 늦은 밤이 되었다. 아내의 맹인 친구와 화자는 텔레비전에 나왔던 대성당 그림을 그린다.


이다혜의 재밌게 읽자
소설가 김연수가 번역한 <대성당>을 다시 읽었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 같던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에서 대성당을 ‘보여주는’ 커버의 마법은 여전하지만 처음 읽던 그때의 감동을 다시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알베르 카뮈가 <섬> 서문에 쓴 것처럼, 나는 오늘 처음으로 이 <대성당>을 열어 보게 되는 저 낯모르는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단편이라고 후루룩 쩝쩝 읽어 버리지 마시라. 독자를 홀리는 연금술은 별것 아닌 듯해 보이는 쉼표에도 숨어 있기 마련이다. 이 단편집에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마지막 빵집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명단편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도 수록되어 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된다. 그래서 소설을 끊을 수 없다.

이다혜 좌충우돌 독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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