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8.01.09 21:01 수정 : 2008.01.09 21:01

탁현민의 말달리자

[매거진 Esc] 탁현민의 말달리자

그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 아버지는 중학교 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대처로 나간 형과 누나와는 소식이 끊어졌고 늙으신 할머니와 어린 여동생뿐. 돈벌이에 나선 것은 그때부터다. 어떤 일을 했는지 묻자, 하지 않은 일이 없다 했다. 어려웠지만 여동생을 대학 공부까지 시키고 장가도 가야 했기에 군대에 자원입대해 월남에도 두 번이나 갔다 왔다. 다녀와서 사랑하는 여자를 만났고 결혼했다. 그리고 돈 많이 벌어 주겠노라 다짐했다. 세월이 흘러 자식들을 낳고, 쉬지 않고 열심히 살았지만 여전히 형편은 그만그만했다. 진급이 안 돼 제대를 하면서부터는 좀더 어려워져 결국 중동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빌어먹을 열사의 사막. 산업 역군으로 몇 년을 보내다 돌아왔지만 다녀와서는 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닥치는 대로 배관공, 아파트 경비, 택시 운전까지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다. 올해 예순넷. 아파트 경비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 정년이 되어 더 일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 평생 동안 외국이라곤 딱 세 번. 두 번은 월남에, 한 번은 중동에 간 것이 전부였다. 언젠가 자식들이 제주도라도 가시라고 몇 푼 쥐여드렸더니 돈만 받고 “난 집이 좋다”며 새벽에 일 나가버린 적도 있다. 완전한 은퇴를 기념하려 식구들이 모여, 다들 잘되었다고 이제부터는 좀 여행도 다니고 놀며 지내시라 말하자. 그가 슬픈 표정으로 식구들에게 말했다. “그동안 돈 많이 못 벌어 줘서 미안허다.”

꼬박 50년을 일만 했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어 많은 돈은 못 벌었지만 일하는 것만큼은 정말 열심히 했다. 일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처음 해보는 일도 다 잘한다고, 해보았다고 거짓말을 해서라도 일자리를 얻었다. 그런 그가 그동안 돈 많이 못 벌어 줘서 미안하단다. 그의 말씀. 가족을 위한 끝없는 헌신의 말씀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 아버지 눈물 나게 왜 그러세요 정말.

탁현민 한양대 문화콘텐츠 전공 겸임교수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